LA를 출발한 지 7시간, 지평선을 향해 끝없이 치닫는 아스팔트가 사막과 언덕, 산을 넘는다. 이제 막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직선을 내달리는 철마는 곡선이 존재하지 않는 길 위에 있다. 종착지가 없을 것만 같았던 길도 샌프란시스코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며 주춤한다. 길을 달리는 동안 김제평야를 떠올렸다. 그리고 김제의 뜰이 바둑판에 그려진 정사각형들 중 한 조각같이작게 오버랩 되었다. 소떼들로 가득한, 오렌지나무들로 빼곡한, 당근으로 채워진, 옥수수들로 풍성한 정사각형들, 무수히 많은 목장과 농장들이 모여 커다란 바둑판을 구성하고 있었다. Cubic들이 만들어 놓은 바둑판은 풍요롭고 커다란 땅이었다. ‘이 많은 것들이 어디로 없어지고, 해마다 다시 생겨나는 것일까?’
우스운 속말이 꼬리를 감출때쯤‘BAY BRIDGE’가 눈앞에 들어온다. 샌프란시스코의 해풍이 제법 싱그럽게 코끝을 자극한다. 오이를 깎아 입에 문 것 같은 향긋한 냄새가 차 안을 맴돈다. 핸들 위에 놓인 손가락들도 건반 위에 놓인 듯 흥겹다. 샌프란시스코 만에 놓인 이 다리의 길이는 13킬로미터에 이르며, 1936년에 만들어졌다 한다. 바다를 가르며 공중에 놓인 길은 음악 없이 달려도 지루하지 않다. 순하고 붉은 햇살이 2층 교각에 걸려 기울어가는 오후, 시내로 접어든다. 바다의 단순하던 풍광과는 전혀 다르게 이리저리 교차하는 도로들 사이로 전차들이 오간다. 따개
비같이밀집된쇼윈도들과바삐움직이는사람들.
‘ 도심의풍경은어디나비슷한것일까?’
미국인들이 선망하는 주거지역으로 매번 선정된다는 샌프란시스코는 청명한공기와 바람이 일품이다. 해안선을 따라 피어오르는 안개와 세차게 부서진 파도의 알갱이들이 도심으로 밀려들어 언제나 신선함을 전해주는듯하다. 아침 산책의 가벼운 걸음이 이어진 곳은‘GRACECATHEDRAL’.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석조 건물의 첨탑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하고 있다. 무겁고 짙은 어둠은 조용한 걸음을 만들게 한다.
“이곳은 수행 공간이니, 조용히지나시오”
라는작은메아리가들리는듯하다.
성당의 벽면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성서를 펼쳐놓은 모양을 하고 있다. 마치 법당에 그려진 불화佛畵들처럼… . 정오의 햇살이 유리벽을 통과하며 성당 내부에 무지개를 들여놓았다. 형형색색의 빛은 어두운 곳일수록더욱 밝게 머물러 있다. 소녀의 색동저고리보다 곱고 맑은 빛은 성당 바닥에도 떨어져 무지개를 밟으며 걷는 착각을 일으킨다. 부활을 상징한다는 미로 위를 걷는 이들.걸음을 옮기는 이들의 어깨에도 무지개가 내려앉는다.
입구와 출구가 하나인 길을 따라 미로의 끝을 향해 걷는사람들.
‘ 그 길에 들어선 후엔 뒤돌아보지 마세요. 길을잃고 싶지 않다면요.’
어디선가 들릴 것만 같은 소리. 들고 나는 곳은 같으나, 다시 나오기 전까진 알 수 없는 길.
다들 그런 이유로 뒤돌아보려는 마음이 고개를 드나보다. 그렇다고 무지개를 쫓아 걸음을 옮길 필요는 없다.
무지개는 사라지고 말 것이며, 길은 제자리에 있을 테니말이다. 양치기를 따라 양들이 모여드는 것이 아니라 양이 있으므로 양치기가 존재하는 것처럼, 중생들이 있어법당이 생겨난 것 이리라.
세상 모든 이들의 업과 죄가 애초에 없었거나, 이후 모든 이들의 것이 일시에 소멸될 수 있다면 무엇이 하늘 아래 세워질 필요가 있었겠는가? 길을 가는 동안 죄를 짓고, 그 위에 다시 업을 쌓는 일이 반복되니 마음 씻을 곳을 만들어 찾는 것이다. 이후라도 길을 걷는 동안 씻어야 할것들이더이상생겨나지않기를…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