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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에 담은 호국 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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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재필 2007년 04월 302호
나는 가을이면 산사 찾기를 좋아한다. 취미가 사진촬영이라서 산사를 둘러싼 풍경을 렌즈에 담기 위함도있지만, 삶이 힘들어 고달프면 일주문 안자갈길을 걸어 두눈을 커다랗게 뜨고 계신 동남서북 사천왕님을 올려다보세요 라고읊은 어느시인처럼 속세의 근심을 일주문 앞에서 벗어 던져버리고 내 자신을 돌아다보며 흩어진마음의 매무새를여미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해인사 장
경각처럼 세월을 이고 서 있는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질그릇 같은 정이좋아서이기도하다.
불보사찰佛寶寺刹인 통도사, 승보사찰僧寶寺刹인 송광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 중의 하나인 법보종찰法寶宗刹해인사를 내가 처음찾은것은 큰애가 3살 때였으니 24년 전이었다. 그때는 단순히 역사책에서 배웠던 팔만대장경을 보러 갔었는데 해인사 들어가는 길옆 계곡에 드러누운 널찍한 바위에 앉아 싸 가지고 간 도시락을 먹고 일주문을 지나108계단을 오르면서 계단 위에 앉은장경각을 올려다보니 가히 그 위용이 하늘에 닿을듯했다.

운오雲塢조성숙은이곳에와서장경각을보고이렇게읊었다던가?

쟁영판각접중천 嶸板閣接中天
세우마풍열기년洗雨磨風閱幾年
백법능전경팔만百法能傳經八萬
현담독천계삼천玄談獨擅界三千
드높은 장판각 중천에 닿아풍우에 견딘지 몇 년이던가.
일체의 선한 법 팔만경에 전하고 현묘한 말씀 홀로 삼천계에 떨치네.
- <운호집>‘장판각藏板閣’중에서-

그 후로도 나는 시간적 여유가 있을때 서너번이곳을찾았었다.
그러던 작년 10월이었다.

“600여년 전 팔만대장경을 강화도에서 합천 해인사까지 운반했던 과정을 재현한 행사가 오늘 서울 인사동 일대에서 열렸습니다.”

단풍이 절정인가을비가 내리는 2006년 10월 23일저녁 9시 뉴스 화면에서 앵커맨의말에 귀가 번쩍 뜨일 소식을 접하게된다. 그 뉴스를 보는 순간 우비를입고 이운행렬에 참가한 그 모습이 사진의 좋은 소재가 되겠다는 욕심에 앞서 경건해진 마음이 먼저 일었다. 나는 뉴스 보고 난 후 즉시 인터넷으로 해인사를 검색해봤다. 합천해인사에서의 축제가 10월 29일에 있다고쓰여있다.
그날, 이운행렬이 거행된다는 그날 아침 일찍 서둘러 88고속도로를탔다.
마지막으로 해인사를 찾았던 때가 성철 스님 사리 친견할 때였던12년 전이었으니 길이 좀 생소할거라 생각했으나 해인사IC 출구에서부터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길을 안내해주어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해인사 입구에 들어서니 축제를 보러 왔는지 많은 대중들이 북적거렸다. 도착시간이일러박물관아래쉼터에서 목을 축이고 있는데 옆에 앉은 서양인 부부가 군고구마를 맛나게먹으며웃는다.
프랑스에서 서양인 스님을 만났던기억이나서몇마디대화를나눠봤다. 그들부부는 뉴욕에서사는데
해인사에서 템플 스테이를 체험하고 오늘 축제를 기다리고 있단다. 한국의 사찰이 좋아 이번방문이 세번째라는데 마침 축제가 열려 신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불교문화가 서양인들에게 어필되기 시작한다는 최근의 트렌드를 여기서보는듯했다.
매점 주인에게 물으니 해인초등학교에서 1시경에 출발한다는 말을듣고 그 곳 으로 올라가봤다.
교정엔 특별한 체험을 하기 위해 600년 전의 복장을 한 대중들과 스님들이 삼삼오오 기다리면서 점심을 먹거나 얘기들을 나누면서 축제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외국인들도 제법 눈에 뜨이고 티베트의 라마승들도 긴 나팔을 매만지며 카메라를 들이댄 나에게 눈웃음으로 대해준다. 축제는 항상 즐겁다. 볼거리 먹을거리가 그렇고, 전과는 달리 요즘은 축제의 주제에 참여할 수 있어
서그런가보다.
나도 덩달아 즐거운 마음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으러뛰어다녔더니 배가 고프다. 행사장안이라서 마땅히 사먹을 곳도 없어두리번거리다 보니 스탠드 앞에서도시락을 나눠주고 있었다. 점심을먹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참가자에게만 주는 것이란다. 이 기회를 놓치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촬영하러 다닐 것은 뻔한 일, 에라 모르겠다. 슬금슬금 스탠드쪽으로 다가갔다.

“이 중생에게도 점심공양 좀 보시해주시겠는지요?”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다가서며 점잖으나 코믹하게 요청하니 아니나 다를까 참가자에게만 주는 공양이라면서 난색을 표시했으나 내가불쌍해 보였는지 아니면 하는 짓이이뻐(?)보였는지 웃음으로 답하면서 도시락 2개를 건네준다. 부양가족 몫까지 챙겨 들고 자리에 오니옆에 앉은 아내가

‘염치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며 핀잔을 주면서도 얻어온 도시락을 풀어 젓가락을 챙겨준다.
이운행렬에 앞서 거창 둥기둥 어린이 사물패들의 고사리 손으로 연주되는 흥겨운 풍장 한마당이 끝나고 해인사주지이신 현응스님의 인사말에 이어 취타대를 앞세운 행렬이 법보전을 향해 출발한다. 600년전 우리 조상들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불법을 새긴 장경판을 수호하기 위해 이렇게 강화도를 출발했으리라. 그때를 생각하니 나는 비디오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못
한 채 부처님의 영원한 진리인 불법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당시의 백성들의 불심이 수미산에 달할 정도라는 생각에 잠시 숙연해져 촬영할생각도 잊어버린 채 어깨에 멘 카메라를 의식조차도 못하고 한동안 스님들과 대중들의 행렬에서 눈을 떼지못했다.
이운행렬은 운문사, 청암사 학인스님들과 대중 스님들, 이운행사 체험을 위해 사전에 전국에서 행사참여를 신청한불자들, 외국인들, 기관단체장 등 남녀노소 약 600여명 정도의 많은 대중들이 경판을 머리에이고, 등에 둘러메고, 목에 걸고, 지게에 지고, 달구지에 싣고 출발지점을 나서고있다.
행렬에 참가한 사람들은 3킬로미터의거리를 자부심과즐거움, 불심등으로 가득 찬 행복한 심경을 아우르면서 한발짝한발짝 내딛고있으며, 양쪽에늘어선 관광객들도환호를 지르며, 혹은합장을 하며행렬을 맞이하는데 그들 역시 행렬의 대열엔 끼지 못했어도 마음은 참가자와 하나였으리라.
박물관 앞에 다다른 행렬은 앞마당에서 잠시 쉬고 티베트 라마승의 나팔연주와 둥기둥 사물패들의 풍장과, 어디서 합류했는지 모를 또다른 풍장패들이 흥겨운 한마당을 연출하고다시출발한다.
고대 인도에서는 많은 숫자를 일컬어‘팔만오천’이라고 하며 가장많은 인간의 번뇌 또한‘팔만사천’이라 하였던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하여 부처가 되는 길을 대중에게 설법하신 것을‘팔만사천법문’이라고 하였으니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이야말로 부처님의 말씀을 집대성한것이라 할수있겠다.
일주문을 통과한 행렬은 인간의 번뇌를 상징하는 108계단을 오르기시작한다. 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는법보전과수다라장, 동사간고, 서사간고의 기둥도 모두 합해 108개가 세워졌으니 건축 당시에도 인간의 번뇌를 가장 중하게 여겨 번뇌에서 벗어나 불법의 세계인‘해탈의세계’로 인도하는 길을 암시하고 지은것이아닐까? 일주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는 대중들. 이때쯤 되면 다소 지쳐 있을법도 한데 이운대중들은 봉황루, 해탈문, 구광루九光樓를 순차적으로 통과하고부처님을모신대적광전大寂光殿을 지나‘팔만대장경’이라고쓰인 현판이 걸린 장경각으로 오르는 계단에 이른다. 이 계단은 다른곳에 비해 좀 가파르다. 허나 나는 촬영을 위해 장경각 계단을 단숨에 뛰어올랐다. 렌즈를통해 내려다보니 흰무명저고리에 검정치마를 두른 아낙들이 장경판을 머리에 이고
오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위를 비추는 빛 또한 내가 촬영할때 선호하는 역광이어서 부감촬영(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촬영하는것)을 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바로 이 장면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캠코더 촬영을 즉시 멈추고목에 걸려 있는 카메라로 일반사진2컷을촬영했다.
취미로 사진을 시작하였고 역시취미를 즐기기 위해 여기까지 오게되었지만 나는 렌즈를 들여다보면서 600년 전의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둬야겠다는 강한 욕망이 솟아올라 캠코더촬영을 멈추고 일반사진을 찍은 것이다. (여기서 찍은 사진 한 장이‘전국 문화유산사진공모전’에서 우수상을수상하게됐음)허나 얼굴에 흐르는 땀을 한 손으로 훔쳐내면서 숨가쁘게 오르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들어 카메라를 등뒤로 하는데 한 분이 웃으며 포즈를 취해주시는 바람에 마음이한결가벼워졌다. 계단을 오른 행렬은 대장경판을 보관하고있는 법보전앞마당에도착한다.
라마승들의 축하 나팔이 연주되는 동안 스님들이 이운된 장경판을 임시로 마련된 서가에 한판씩꽂고, 이운대중들은 이 행사에 참여하고 해냈다는 성취감과 더욱 깊어진 불심으로 피곤함도 잊은 듯 모두 환한 얼굴이 되었다. 이어 홍로스님의발원문 낭독에 이어 반야심경이 봉독되고 행사는 마무리지어졌으나 대중들은 한참이나 자리를 뜨지 않는 아쉬움을보였다.
나도2시간 넘게 뛰어다니며 촬영하느라 몸은 피곤하였으나 마음에스미는 불심이 더하여 이번의 촬영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웠으며보람되었던것같다.
끝으로 이러한 행사를 주최하여 참여한 대중들에게 불심을 깊게 심어주시고, 국민들에겐 우리 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셨을 뿐 아니라 나 개인에게도 촬영의 귀한 소재를 주신 해인사측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부산우복자 30,000원
김희진 10,000원
변이숙 30,000원
천보향 100,000원
백종하 50,000원
임찬섭 10,000원
익명 3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