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에서는 봄에 해인도에 팔만대장경 경판을 머리에 이고 법성게를 외우면서 도량을 도는 정대불사라는 커다란 대작불사를 한다.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는 우리들의 자랑 팔만대장경은 세계문화유산 제463호로지정되어있을정도로세계인의 보배가 되었다. 이러한 팔만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해인사 도량을도는행사이다.“국왕은 태자와 공과 후와 재상들과 문무백관들과 함께 목욕재계하옵고 허공에 가득 찬 시방의 한량없는 불보살님과 제석천왕과 삼십삼천과 모든 호법영관께 비옵나이다.몽고병의 환란은 몹시 가혹하여이다. 그들의 잔인하고 흉포한 본성은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어리석음과어두움이 짐승보다 더 심하오니 천하에 가장 소중한 불법이 있는 줄을어떻게 아오리까. 그리하여 그 더러운 발이 지나가는 곳에 불상과 경전을 불살라 버리오며 부인사에 모셔두었던 대장경판도 마침내 불살라버리고 말았나이다. 수십 년 공덕이하루아침에 재가 되어 나라의 큰 보배가 없어졌사오니 모든 불보살님과 여러 천왕의 대자대비하신 마음이온들이일이야어떻게참을수있겠나이까. 생각건대 제자들이 어둡고 무지하여 오랑캐를 방비할 계책을 미리 세우지 못하였사옵고 불법의 큰 보배를 지킬 능력마저 없었사오니 대장경판을 잃게 된 변고는 실로 저희들의 잘못한 소치인지라 후회한들 무엇 하오리까. 그러하오나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법은 본래부터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있을 것이 아니옵고 경법이 담겨져 있는 것은 물질적 기계이오니 기계가 이룩되고 망가지는 것은 자연한 이치로써 망가지면 다시 만드는 것도 당연한 사실이옵니다. 하물며 나라를 지니고 집을 가진 이로서 불법을 받드는 것은 본래 미적미적할 것이 아니온데, 이미 큰 보배가 없어졌사온즉공사가 거창할 것을 염려하여 다시만듦을 등한히 하오리까. 그리하여대·소·재상과 문무백관들로 더불어 큰 원을 세우고 주관하는 관청을두어 한편으로 공사를 시작하였나이다. 처음 대장경을 새기던 연유를상고하온즉 현종2년에 거란병이 침입하매 현종께서 남으로 피난하셨으나 거란병이 물러가지 않고 머물러 있으므로 그때에 임금과 신하가 큰 원을 세워서 대장경을 판에 새기기를 서원하였사옵더니 그 뒤에 거란병은 곧 스스로 물러갔나이다. 그리하온즉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대
장경이요, 판각하는것도 다를바 없으며 군·신이 함께 발원함도 또한마찬가지오니 그때의 거란병은 물러갔사온데 오늘의 몽고병인들 어찌물러가지아니하오리까. 다만모든 부처님과 여러 하늘이 살핌에 달렸으리라 하나이다. 저희들의 오늘날 정성이 그때 군신들의 정성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사오니, 바라옵건대 모든 부처님과 성현과 삼십삼천께서 저희들의 지극한 소원을 살피시고 신통의 묘력을 내리시사 저 모진 오랑캐로 하여금 더러운 발꿈치를 돌려 멀리 달아나게 하고 다시는
우리의 국경을 침범치 못하게 하여지이다. 그리하여전쟁이쉬어온나라가 화평하고 모후와 태자의 목숨이길어나라의운이길이만세에태평케 하시오면 저희들이 마땅히 정성을 다하여 불법을 밖으로 두호하오며 부처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하려 하나이다. 저희들의 간곡한 소원을 굽어살피옵소서.”
이러하듯이 국가의 안위를 보존하기 위해 고려인들은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신앙의 힘이 바로 팔만대장경판 성립으로회향될수있었던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신앙적 연원에 의거해서 해인사 정대불사를 처음으로 일으키신 분은1961년당시해인사 주지이던 영암 큰스님으로 알려진다. 율장에따라살며, 좌선하면서도, 행정에 밝으신 스님은 해인사의주지 소임을 맡아 비구 대처의 분쟁으로 어수선한 해인사 도량과 망실재산을 일거에 찾고 정리시켰으며그리고 현몽을 받아 판전에 모셔진대장경의 가르침과 가피력을 중생들에게 회향하고, 자손 만대 영원히보존할 것을 서원하는 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 수호 정대불사를 시작
했다.
역사적인 법보신앙의 연원에 의거하여 해마다 봄에 실시되는 이 정대불사는 아침 일찍 괘불을 봉안하여불공한뒤산중어른스님을따라 불사에 동참한 사부대중은 대장경판전을 돌아 구광루 앞에 그려진 법계도 위에서 대장경을 머리에 이고법고와 목탁 소리와 함께 법성게를독송하며 요잡하여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 해인사 정대불사는가장 웅장하고 신심이 절로 나는 한국최대의불교신앙행사로자리잡아 왔다. 정대불사에서 행하는 설법과 의식 하나하나마다 옛 선조들의진리를 사랑하는 마음과 법보를 수호하려는 정신이 면면히 이어지고,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인 지혜(수행)
와자비(교화)가상징화되어있다.
재앙을 없애고 만복을 기원하는인간의 본능적이며 원초적인 갈망을 고려인은 그것이 개인적이든 사회 국가적인 문제이든 부처님의 가르침에 호소하고 의지하여 작복作福하였듯이, 해인사 정대불사에 동참하는 모든 불자도 이와 같은 부처님을 향한 간절한 신앙으로 발원하면안심安心으로 한없는 복덕과 지혜를일구어 사회 국가적으로 화합과 평화의도약을닦는불사가될것이다.
개인적인 신행이나, 사회적인 불교 행사에서 형식(자비-교화)과 본질(지혜-수행)은 수레의 양 바퀴처럼, 새의 양 날개처럼 매우 중요하다. 의례 의식 등 신앙의 행위(형식)가 없이는 대승으로 중생을 구제할길이 없고, 본질을 담지 못하거나,사욕私慾으로 왜곡되는 수행과 종교의식은 미신으로 강매되거나, 종교문화적으로 전승傳承의 가치를 잃게된다.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금의 우리에게 귀중한 거울이된다. 고려시대의 각종 불교 행사가 후에 본질을 담지 못하거나 전도顚倒되어국민에게서 멀어지고 사라져간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이제거의 40년 동안 똑같이 행해지고 있는 해인사 정대불사가 경판수호 의지와 법보신앙 - 부처님의 가르침(경전)을 높이 받들어 모시고 배워 부처님 법대로 살겠다는 서원 - 을 고양하고 안심과 국태민안이라는 원대한뜻을잘담고있는지검토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다른
사찰에서도 해인사 정대불사와 유사한 불교 행사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차별화를 시도하는 뜻에서도 역사성과 교리에 근거한 더욱 신명나고 신심나는 의식을 도입하고 다양한계층에게긴여운이남을수있는신행의식으로 발전되도록 연구해야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