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신 후 제자들의 증거 운동을 기록한 문서를‘사도행전’이라 한
다. 예수의 얼굴도 본 적 없던 많은 사람들이 제자들로부터 가르침을 전해 듣고 회심하였는
데, 가진 것을 모두 제자들 앞에 내어놓고 서로 필요한 만큼 나눔으로써 아무도 가난하지 않
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성서의 가르침이 진정 회개와 축복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2천년
전 사도행전 공동체가 세기를 넘어 우리 시대에도 가능한 은사임을 확신하며 시작한 운동이
필자가가담하고있는‘예수살이공동체’이다.
우리도 무소유의 공동체로 살아보자고 수년에 걸쳐 필요한 공부와 준비를 했다. 우선 토지
도 필요했는데 척박해도 좋으니 부동산 바람이나 개발 전망이 거의 없는 땅을 찾다 지금의
‘산위의 마을’을 세웠다. 척박해도 좋은 이유는 무엇보다 돈이 없었고 또한 공동체 생활과 유
기농업을위한환경보호가가능한독립공간을원했기때문이다.
척박한 땅의 사람들
하루 5회 단양버스가 들어오니 교통은 괜찮은 편이지만 20분 이상 산비탈을 걸어 올라야
하고 눈이 내리면 재빨리 치워야 한다. 밭이 비탈져 소나 사람 쟁기로 갈아야 하는데 그마저
멧돼지 고라니 등살에 골치 아프다. 전력은 공급받지만 전화는 아랫마을에다 놓고 사설로 끌
어 왔다. 신문이 2~3일에 한번 우편으로 들어온다. 그래도 우리는 이토록 척박한 땅에 살게
하심을감사하고있다. 진정한소명의삶이무엇인지를깨우쳐주셨기때문이다.
우리 마을에는 물이 귀하다. 해발 930m의 뒷산이 있는데도 이곳저곳에 광산을 뚫었고 폐
광한 후에 원상복구를 시켜놓지 않았기 때문에 물이 고이지 못하는 거라고 했다. 뒷산 골짜
기 옹달샘에 약 1km의 파이프를 연결해서 물을 받는데 그나마 연중 4개월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빨랫감과 식수 탱크를 끌고 아랫마을로 간다. 옛날 이곳에 살던 화전민들도 물지게
로길러먹고살았다한다.
봄 4월이 되면 뒷산 물이 나온다. 그런데 금년에는 한 달 빠른 3월 초 봄비에 물이 내려왔
다. 작년 늦여름부터 물을 길러먹던 우리에게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그 기분이란 마치 오랜
좌선 후 방선의 평화랄까, 아니면 온종일 꼼짝 않던 찌가 월척을 올리는 순간 같은 그런 환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리라
우리는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울증과 자살과 범죄가
늘어만 간다는 것은 행복이 물질의 풍요로 얻어질 수 없음을 자백하는 것이다. 그래
서 예수님께서는“하느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더라도 쫓아가지 말라. 하느
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셨다. 행복은 상품처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
라내마음으로발견하는것이다.
희였다. 탱크에 가득 넘치는 물을 보면서 어떤 부자도 부럽지 않은 풍요로움과 무상無償의
충만감으로 가득했다. 가족들도 괜히 싱글벙글 밝아졌고 지상에서 천국이 열린 듯이 느껴졌
다. 척박한 땅‘산위의 마을’은 일상의 은총을 발견하는 기술을 배우는 깨달음의 땅이기도
함을 감사한다.
깨달음의 땅 산위의 마을
세상에 흔한 것이 물인데 우리는 빗물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마을 환경의 척박함이
그것을 깨우쳐주었다. 행복이란 일상의 사물을 선물로 보는 데 있는 것 같다. 어찌 보면 내가
지금 숨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내가 숨쉬고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인데, 내가 있어 숨을 쉬는가? 공기가 있어 숨을 쉬는가? 공기도 숨쉼도 당연한 것으로 보
는이는중환자실에들어가기전까지는선물을알지못할것이다.
사업에 성공하고 재산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잘 나가는 것을 축복이라 말한다면 실패
하고 돈 없고 이루지 못하고 고난의 멍에만 무거운 것도 모두 축복의 징조임을 믿을 필요가
있다. 심지어‘탐진치貪嗔痴’로 인해 빚은 번뇌와 고통까지도 축복의 조건이 될 수 있다. 그래
서성아오스딩은“오, 복된죄여!”하고고백했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울증과 자살과 범죄가 늘어만
간다는 것은 행복이 물질의 풍요로 얻어질 수 없음을 자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더라도 쫓아가지 말라.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
데있다”고하셨다. 행복은상품처럼살수있는것이아니라내마음으로발견하는것이다.
산위의 마을로 인도하신 하느님
사실 우리 공동체는‘산위의 마을’건립을 앞두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두신, 젖
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달라고 1,000일 기도를 바치며 준비했다. 그런데 결국
이토록 식수조차 귀한 땅을 얻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리가 헛짚었거나 기도가 부족해서
가 아니라 부르심이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종이다. 본래 그리스도의 법통은‘고
난 받는 야훼의 종’이다.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진 십자가의 희생양으로 구원의 제물이 된 것
이다.
현대인들이 움직이길 싫어하고 스위치 버튼 하나로 해결해버리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우
리로 하여금 그들을 속죄하여 척박한 땅에서 힘쓰며 살아가게 하셨다. 먹기 위해 살듯 하면
서도 생명의 농업을 우습게 알기 때문에 우리더러 농사를 짓게 하셨다. 안락을 쫓아 무한정
한 소비 중독으로 사는 까닭에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식수마저 귀한 땅으로 보내시어 세상을
용서하는속죄제물의희생양으로삼으셨음을우리는눈물로고백한다.
본래 희생 제물은 가장 사랑하고 좋은 것 가운데 고르는 것이었으니, 그래서 우리는‘산위
의마을’의목마름속에서도항상‘사막에샘이넘쳐흐르리라’를노래할것이다.
“산위의마을은드러나게마련이다.너희의빛을세상에비추어세상사람들이너희를보고 하느님을찬양케하여라(마태5,14).”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가난하고 어리석은 삶이‘마케팅’이란 악령
을 추방하고 향락과 소비문화에 병든 불구를 치유하는 십자가가 될 수 있기를 자처한다. 그
것이스승예수의부르심에응답하는시대의소명이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