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진風塵에구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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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설세설山說世說 - 영덕
2007년 04월 302호

삶은 수행이며 수행은 삶이다. 꼭 수행자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이 별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은 그대로 고행苦行이며 수도修道이다.
단 육근의 감각을 살필 줄 알고 삶에 대한 깨어 있는 성찰이 있는 사람에게만. 명석한 두뇌 있음에 감사합니다. 사물을 분명히 구별하고 아름다운 자연 볼 수 있는 두 눈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바람소리 빗소리 파도소리, 서로의 내밀한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두 귀에 감사합니다. 싱그러운 사월의 향기 맡을 수 있음에 코에 감사합니다. 바른 말 사랑스런 말 할 수 있는 그리고 맛있는 음식 먹을 수 있는 입에 감사합니다. 사대 강건 육근 청정 어디든 갈 수 있는 몸에 감사합니다. 남을 배려하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격려할 줄 알고, 여기에서 받아 저기로 회향하며 남 모르는 선행으로 자신을 충만하게 만들 줄 아는 뜻에 감사합니다. 너무나 당연하여 인사조차 잊고 살았지만 어느 날 문득 불협화음 속에서 십팔계十八界* 소우주의 질서와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밥 먹는 줄 알고 밥을 먹으며 똥누는 줄 알고 똥을 누고, 숨쉬는 줄 알고 숨을 쉬며 내가 온전히 나이어야 함을 안다면 그는 수행자인 것이다. 사람이라면 고귀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이, 수행의 문에 들어서야 하며그 길을 가지 못하는 자들은 힘 따라 공덕을 쌓고 지계를 지켜 생천生天의 길을 도모해야 한다. 수도 없이 많은 생. 오랜 시간 도를 떠나 흘러 왔으니 역류逆流의 길이 쉽지는 않으리. 비질을 하다 돌아보면 먼지 하나일지 않는 뒤뜰. 아무도 밟지 않은 마당을 일없이 또 쓸듯. 싱그럽게 반복하며 준비된 일상 속에 부처가 있는것. 그리워하는 것은 속 깊이 두어야지 꺼내 보면 모래성같이 부서지는 순간순간들. 무상하기 때문에 꽃이지고, 꽃이 져야 열매가 자라며, 늙고 죽음이 있기에 다시 소년이 있는 그 도리를 사무쳐 보아야 한다. 우리는 변하기 위해 태어났다. 풍대風大의 작용은 늘 새로운 순간을 맞이하며 우리 생에 똑같은 순간은 없다. 생사를 밟고야 생사를 초월하듯 이렇듯 모든 것이 변화하여도‘변한다’는 변치 않는 명제를 뛰어 넘을 때 무상이란 새 모습, 새 마음, 새로운 만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겸손한 마음. 평정한 마음. 비어 있는 마음. 항하모래알보다 많은 중생의 마음들. 악을 버리듯 선도 버려야 하고 필경에는 마음과 부처조차 버려야 하리. 인생이란 수없이 밀려오는 파도 앞에 서 있는 존재.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망망대해에 표류하지 않고 애써 해안에 닿으려는 노력과 같은 것. 지금 이 순간 보고 듣는 대상 떠나 담마를 구하는 것은 귀모토각龜毛兎角. 순간순간 깨어 있는 알아차림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 닦음에 집중해야 한다. 하루를 살아도 생명의 실상을 보고 싶다. 꼬박 열 시간씩 앉아보니 반은 졸음이고 반은 망상이다. 말할 줄 알고, 들을 줄 알고, 가죽밑에 피가 흐르는 놈은 다 깨달을 분이 있다는데 용을 쓰다보면… 참 슬프다. 여산연우절강조廬山煙雨浙江潮! 한번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조수 보고 돌아오면 그 자리 그대로 여산의 안개비 절강의 조수라는데. 풍진風塵에 구르며 헛되이 세월만 보내던 동산양개의 통한痛恨이 이제사 아프게 전해져온다. 어느 날 물 건너가다 제 그림자 보고 웃을 날이 내게도 있을까. 걷다보면 목적지에 도달하려니 온종일 봄을 찾아 헤맨다. 빗발이 점점 굵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