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 악도 버리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한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그 생각도 쉬어야 참말로 살길이나온다.”
언제나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해 있었는데 그 생각도 쉬어야 살 길이 나온다는 그 말을 듣고 그야말로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 아! 다른 세계가있구나’하는 것을 느꼈다. 착하게 사는 것만 궁극적인 것이라여겼는데그것이강박관념이었음을알게되었다.
신심을 내는 나에게 법문을 했던 스님은 다섯 권의 책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했다.《 육조단경》,《 금강경》과《반야심경》강의, 그리고《법구경》과《보조법어》였다. 하던공부를 치우고 그것만 읽었다. 《육조단경》을 읽는데 계합이 되어 마치 내 경지 같았다. 그렇게 좋으면서도 성격
이 소심해서 출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책을 주었던 스님이 어느 날 와서 출가를 권유했다. 기분이 얼마나좋았는지모른다. 사십여년전인1966년이었다.
계행이 청정하고 성품이 대쪽 같았던 은사 혜암 스님밑에서 행자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없어진 해인사중봉암에서였다. 삼칸 집의 작은 암자에서 은사스님과단 둘이 생활했다. 스님은 아랫목에, 나는 윗목에 앉아서참선을했으니복된출발이었다.
참선하는 사이사이 스님께서 법문을 해주셨다. 당시는때로 지루할 때도 있었으나 지내놓고 생각해보니 공부에 대해안가르쳐주신게없었다.
죽비를‘딱딱’치고 나서‘나, 법문한다’하시곤 이야기를 시작하면 항상 밥을 할 때까지 계속되어‘스님, 저밥지으러가야합니다’하고일어나야했다.공부에 대한 것은 물론 일상생활 모든 것에 대해 철저히 배웠다. 당시 총림을 시작했던 큰절에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으니 암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석유를 넣어 불을켰던기억이새롭다.
‘무엇이든때가있다. 시기를놓치면안된다.’
‘언제든이치에맞게일을해라’
이렇게 가르쳤던 은사스님은 밥물을 넘치지 않게 밥을짓는 법에서부터 음식 만드는 법, 걸레질하는 법, 나무패는 것까지 두루두루 세밀하게 가르치셨다. 심지어 뚫어진 창호 바르는 법까지 가르쳐주셨다. 스님과 둘이 있었지만 언제나 바루공양을 했는데, 이에 대한 법도도 물론 스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국그릇을 들어서 입에 가져다 먹으면 안 된다, 후루룩 소리를 내어서도 안된다, 밥도 입에 쏙 넣어서 소리나지 않게 씹어라, 그렇게 세세히 가르치셨다. 연장도 다 쓰고 나면 깨끗이 씻어서 제자리에 놓았다가 찾으시면 곧바로 가져가야지 우물쭈물찾아다니면안되었다.
여름국화가 막 올라올 무렵 위를 잘라내서 간장, 식초,고춧가루를 조금 넣고 생절이를 해드리면 잘 드셨던 기억을잊을수없다.
배울 땐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히 배웠는데 수십 년이흐른 지금 돌아보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칼날처럼 정확하게 반듯하게 정리 정돈하시던 스님을 따라갈 수가 없다. 일을 많이 하시고 깔끔하신 성품 탓에 스님이계신 선도 악도 버리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도량은 언제나훤했다.
큰절 선방 유나로 계셨던 스님께선 자주 큰절에 다녀오셨는데, 두루마기에 육환장까지 짚고 내려가셨다가 올라오실 때면 때로, 윗옷을 벗어 어깨에 걸치고 올라오시던 모습이 지금도선연하다.
행자 때, 스님께〈초발심자경문〉을 배웠다.‘ 강원에 가지 말고 참선공부하라’고 하셨던 스님께 유일하게 배운경전인데, 스님 앞에서 내 식대로〈초발심자경문〉을 새기면,‘ 네가 깊이 새기는구나, 오래 공부한 수좌보다 낫다’고 칭찬을 하셨다. 잘 못하면 호령을 내리고 잘 하는
일엔칭찬을하셨던따뜻한분이다.
나이 들어, 사십대의 스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모든 일에 완벽하셨을 수 있었는가 하고 가끔 생각해보는데, 본성품에서나온지혜때문이었을것이다.
매사 빈틈없이 정확하시고 잘 못하는 일이 있으면‘저리도 어름해서야…’하시면서 호통을 치셨으나 나의 스승은 인간미가 넘치셨던 분이다. 군대에 가 있을 때다.
필요할 때 쓰라고 용돈을 부쳐주셨는데, 쌀 두가마니쯤 되는 큰 돈이었다. 비닐에 꼭꼭 싸서 군대 담장에 끼워두고 두고두고 썼던 기억이 난다. 공부에 대한 것을 편지로 써서 올리면 꼭 답장을 주셨다. 그 정성스레 써서 보내주었던 편지를 잘 모아둘 걸, 스님이 아닌 계신 지금 조금
은후회된다. 불법을 만난 것이 너무 좋아서 신심이 샘물처럼 솟았던 행자시절이었다. 해서 고된 줄 모르고 스님께서 시키는 대로 성심껏 일하고 공부했더니, 스님께서 신도님들에게‘저사람, 예사사람이아니다’라고자랑을하셨다. 여름밤이면 별이 참 많이도 쏟아져 내리곤 했다. 몇 해전, 인도에 달라이라마 스님을 뵈러 갔을 때, 해발 4,200미터에서 바라본 하늘의 별도 잊을 수 없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마을이라고 하는데, 은하수가 큰 강물을 이루어 온하늘이별이었다.
원각原覺이라는 법명을 내 스스로 지었다. 은사스님께서‘네가 한번 지어봐라’하셔서‘근원을 깨달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름을 지었는데, 스님이‘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셨으니, 평생을나와함께한이름이되었다.
‘선도 악도 버리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 법문에 발심하여 출가를 하게되었으니, 나의행자시절은‘근원’을찾아서떠난인생전환점의출발선이었다.
‘참선공부를 제대로 해서 이 공부를 깨우쳐라. 대중처소에서 살아라’하시면서, 꼿꼿하고 철저하셨던 스승과 단둘이 밤이면 별이 쏟아져 내리던 중봉암에서 8개월 동안의 행자생활을 하면서 참선공부와 생활 양쪽 모두를 반듯하게 훈련받고 사미계를 받은 지 40여 년이 흘렀다.
그 세월은‘근원’을 밝히려 노력했던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물었다. 근원을 밝혔느냐고. 또 근원이 무엇이냐고. 나의대답은이랬다.
“근원을‘성품, 마음, 부처’니 이름하지만 말이나 글로표현할 수 없는 자리이다. 그걸 깨달아서 거기에서 생활해야 활발하고 자유스럽다. 그런데 우린 항상 박아무개,김아무개 하는 이름 아래서 생활한다. 그러므로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 하는 분별을 일삼는다. 본래 선도 악도 붙을 수 없는 근본 성품 그 자리에서 생활해야 걸림없이 활발하고 자유스러운 것이다. 그래야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니고, 모든 것이 다 통해있는것이다.우리가 그 자리를 확연히 깨달아서 생활해야 인생의 근본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늘 시달려서 살게 된다. 경계에 미혹되고 사상에 미혹되면서 말이다. 근본을 깨치면 종일 밥을 먹어도 먹은 바가없고, 가도간바가없고, 들어도들은바가없다. 상대에서 벗어난 생활을 해야 경계에 미혹되지 않는다. 내외가 명철하고 확연해버리면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것이며, 그럴 때 설사 칼로 목을 치더라도 두려울 게 없는 것이다. 인생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고매한 철학이나 이념, 사상이 아니다.‘ 쉬어서 본바탕을깨달아야’그것이해결점이고출발점이되는것이다. 너와 나, 절대자 신과 그를 믿는 사람이 있는 주종관계에선 해결이 되지 않는다. 상대가 있는 곳에선 해결이 되지않는것이다.
생사가 본래 없는 것을 깨달아서 쓸 때 죽어도 죽는 게아닌 것이다. 공부해서 경계가 오더라도 조금도 흔들리지않게되면지혜도분명해진다.‘ 진공묘유眞空妙有’를그대로쓰는것이다. 깨달아수용해야활발해지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