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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람 물결소리 - 장나영
2007년 03월 301호
평소 듣지 못한 특이한 새소리가 들린다. 하던 일을 멈추고 나는 한참 동안 그치지 않는 매혹적인 소리에 이끌려 마당으로 나오게 되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햇살이 눈부시다. 옆집 화단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에 연초록 새잎들이 한들거린다. 그 가지에 처음 보는 새가 앉아있었다. 새는 나에게 화사한 바깥 공기를 쐬게 해주더니나뭇가지를내딛고포르르어디론가날아간다.
주중공휴일을모처럼그냥보내는가싶었는데친구의전화가 왔다. 퇴근 후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자고 하여집을나섰다.
친구들은 가벼워진 날개로 날아들 듯이 역에 모였다.우리들은 그간 있었던 일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흔쾌한기분이되었다. 기차는밤2시에서울역에도착했다.비행기속도만큼빠른고속철도의개통으로역사도새롭게 꾸며져 있었다. 신역사는 철제빔으로 높게 천정이만들어져 있고 벽면은 온통 유리로 되어 있었다. 유리벽은 바깥의 어두움 때문에 거울처럼 실내를 반사시켜 보여주고 있었다. 깔끔한 실내디자인과 광이 나는 바닥으로발걸음이경쾌했다.
화장실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통로를 따라 화장실에들어서자 세면대가 보였다. 세면대 옆에 약간 들어간 여유 부분의 바닥에 이불이 둘둘 감긴 형체가 보였다. 그한 부분에서 검은 머리카락이 삐죽이 보였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사람이었다. 종이상자를 펴고 그 위에 자리를 깐 듯하고 이불을 감아 덮고 있었다. 이런 생활에익숙한지 사람의 발자국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깊은잠에 빠진 듯하다. 방송이나 신문 보도를 통해 알고 있던일들이눈앞에사실적으로펼쳐지자마음이아득해졌다.
나는 동화 속의 인물처럼 옷을 벗어 덮어줄 만큼 따스한 마음을 내지 못하고 우선 놀란 가슴을 가라앉혀야만했다. 그 충격적인 모습을 어쩔 수 없이 외면하며 황망하게 화장실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로비에서 기다리던친구들도서서히역의첫인상과는다른주변의상황들이다가온 것 같았다. 대합실 구석에는 자리를 잡고 누워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의자에는 헝클어진 머리와 느슨한
매무새를 한 사람들이 서너 명씩 모여 있었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서글퍼지고 측은해졌다.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그들이 시민이 아니라고 할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온 사람들의 생명은 바람 앞의 촛불이기에 역에서 그들을 차마 내몰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차에서 내린 승객들은 그새 역을 빠져나가고 깔끔한매무새의 사람들이 기차를 기다리는지 연신 탑승 입구전광판을주시하며서성이고있었다.
대합실에서잠시시간을보내려고했었는데여의치않아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봄밤이라서 공기는 차지 않았다. 서울역이라고 커다랗게 세워져 있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여기가 수도 서울임을 환기해 준다. 길을 건너려고지하도에 내려갔다. 계단 모서리 부분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반들거리며 둥글게 마모되어 있었다. 계단 아래 지하도 통로에는 사람들이 웅크리며 자고 있었다. 숨
한 번 제대로 못 쉬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온 후 친구들은모두안색이찹찹하다.
탁 트인 넓은 거리에 텔레비전에서 보던 유명 고층 건새가전해준햇살 물들이 보였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심장부다. 아침이 되면 우리나라의 최고 엘리트들이 이 거리를 지나 건물 안
으로 모여들어 바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빈부의 격차가밤과낮처럼뚜렷하게느껴졌다.
도로에는 빈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를타고 조계사로 갔다. 조계사는 주위가 빌딩으로 둘러싸여 있는 독특한 사찰이다. 어둠 속에서 마당 가운데 탑이우뚝 솟아 있었다. 그 옆에 마련된 커다란 촛불꽂이 사각함에는 염원을 담은 수많은 불꽃들이 잔잔하게 깔린 물빛에 아롱거리며 주위의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고색창연한 법당 바로 앞에 수령이 꽤 많아 보이는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인상적이었다. 법당 안에는 사람들이 와 있었다. 웅장하고 숙연한 분위기에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새벽예불이 시작되기 전까지좌정하기로했다.
어디선가‘짹 짹’하는 소리가 들린다. 법당 안에 새소리가 들려 이상하다 하고 생각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장이 높은 큰 법당 안을 작은 새들이 유유히 날아다니며 자리를 옮겨 앉는다. 내가 앉아 있는 곳 바로 앞에 새가 날아와 바닥을 콕콕 몇 번 쪼아보더니 저쪽으로날아간다. 사람들은저마다경전을펼쳐놓고독경하거나눈을 감고 염주를 돌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새의 움직임과 소리를 나처럼 의식하고 있지 않는것같다.
새들은신기하게도부처님전에올린공양물에다가가지 않았다. 영리하게 보이는 똘망한 움직임으로‘짹 짹’
작은 소리를 내며 폴짝폴짝 자리를 옮긴다. 불단에 사람들이 올려놓은 작은 생수통들이 있었다. 그 공양물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기에 그곳에 계신 분께 여쭤보았다. 생수통들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후에 노숙자들에게 배급된다고 했다. 공양미의 일부분도 정해진 날에 노숙자들의 배식에 쓰여진다고 한다. 혼자로서는 그들에게다가가기가쉽지않은데십시일반의마음으로대
중의 힘을 빌려 그들에게 온정을 베풀고 있었다. 역에서본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이 짠했는데 이런 사실을 전해듣자 마음이 훈훈해졌다.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기가어렵다고하는데사람으로태어나도살아가는모습들이 제각기 다르다. 중생들은 자신이 지어온 인과에 따라귀한 삶이 되기도 하고 하천한 삶이 되기도 한다지만 어떤생명이라도결코가볍게여겨서는안될것이다.
사람으로서제대로모습을갖추고산다는것이의외로힘이 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묘하게도 이곳 법당 안을 날아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새들이 참으로 평화롭게보였다.
날씨가 더워지면 법당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고 한다.그러면 마당의 오래된 나무에 앉아 있던 새들이 법당으로 더 많이 날아와 자유로이 드나든다고 한다. 스님들께서는 이것이다 저것이다 분별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중생들이라고 생각하시는가 보다. 이곳 새들은 향내음을 맡으며 법음을 들을 수 있어 천상의 가릉빈가迦陵頻伽가아닌가싶다.
다시 눈을 반쯤 내려 감고 좌정을 했다. 주위의 고요함속에 이따금 들려오는 새소리는 맑은 계곡물에 마음을씻어내는듯의식을청아하게했다.
바깥 절 마당에서 스님께서 새벽 도량석을 하는 목탁소리가 들린다. 이어서‘둥둥둥’천지를 깨우는 장엄한법고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층 빌딩 숲 속에서 울려 퍼지는법고소리가이색적이다. 조계사에서는매일법음으로서울의 아침을 깨우고 있었다. 이 소리가 세상 곳곳에 퍼져 천지 만물의 모든 중생들의 어두운 마음을 깨치고 모든이들에게자비광명이있기를기원하고있었다.
정신을일깨워주는맑은소리에나는주위를둘러보게되었다. 세상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고 있다. 새처럼 작은 몸짓이지만 주위의 그늘진 마음에 봄 햇살 같은 포근함을 전해주고 있었다. 나는 세상에 평화와 안락이 가득하기를기원하며손을모은다.
새가남긴미풍으로나뭇가지가가볍게흔들리고햇살속에 작은 잎새들이 재잘거린다. 봄은 연초록빛으로 퍼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