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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사 일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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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07년 03월 301호
부처님은 법을 전하러 떠나는 제자들에게‘두 사람이 한 길을 함께 가지 말라’고 했다. 끊임없이 홀로 수행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전하라는 뜻일 것이다. 일관 스님은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그 길을 가고 있다.
깊디깊은 산사의 울울한 나무숲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휘황찬란하게 북적대는 사람 숲 한가운데에서 법의를입고오도카니앉아법을전하고있다. 도심한복판에서몸소대중불교운동을실천하고있는것이다. 산사의바람이밀고지나가는풍경소리가아닌차들이어깨를들이밀며붕붕대는소리속에서, 밥짓는굴뚝연기가 아닌 자동차 시커먼 매연 속에서 큰 보폭으로 바삐 걸어가고 있다. 그러다가 가만히 고개 들어 한 덩이흰 구름 같은 법문을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들어야 할 부처님의 말씀이다. 곧 흩어지고 말 흰 구름인 우리는, 그렇게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임을안다.
스님은현재남양주불암사의주지로있으면서서울상계동보현사와목동향림사에서도포교활동중이다.
종단의 종회의원으로 있으면서 줄곧 포교에 뜻을 두고 걸음을 옮긴다. 그렇다고 스님이 처음부터 포교에 원력을세웠던것은아니다. 출가이후줄곧선방에만앉아있었던이가바로일관스님이다.

“나는 참선이 내게 참 잘 맞다고 생각했어요. 행자 때부터 혜암 스님을 모셨는데 스님도 내게 그러셨어요. 중은좌복에서죽는게수지맞는장사라고.”

혜암 스님을 모시면서 수행자는 수행에 목숨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침에 죽 공양을 하면 한두 시간씩 법문을 해주곤 하셨는데 수행자로 사시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그런데 스님은 좌복에서 내려앉았다. 그것 또한 뜻이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내려앉혀졌고 그러다가 도심으로흘러흘러내려왔다. 88년에은사스님인일면스님이한철만와있어달라고해서왔다가마침내제둥지를찾은동물처럼앉게된것이다.

“상계동에서 살게 됐는데, 난 그땐 염불도 못했어요. 그렇게 집을 지키고 있다 보니 신도가 점점 몰려들어팔백세대가됐으니어쩌겠어요, 밤에도망갈수도없고….”

그러나 스님은 수행 가운데 포교가 있고 포교 가운데 수행이 있다는 말씀을 항시 마음에 품고 산다. 수행이곧 포교이며 포교가 곧 수행인 것, 그것을 후학들 또한 사무치게 가슴에 품어야 할 것이란다. 그러니 스님이 도심에서 포교를 한다고 하여 수행자가 아닌 것은 아니란 말이다. 진심이란 것은 어떠한 방법을 통과해도 뒤틀리거나 상하지 않고 오롯하게 제 모습을 지키지 않는가. 그토록 까탈하고 엄하다는 혜암 스님이 일관 스님을 예뻐한것도 다그진심때문이다.

“나한테는 할아버지 같아서 하고 싶은 얘기도 다 했죠. 혼이 나더라도 정직하게 해야겠다 싶었어요. 다리도 주물러 드리고 같이 뒹굴뒹굴 하고 싶으면 뒹굴고…. 빵을 먹어도 어른이니 격식에 맞춰 그릇에 받쳐 드려야하는 것이지만 한쪽 떼서 드셔보시라고 드리면 맛있다고 즐겁게 드시고. 그렇게 편하게, 스님 사는 방식으로 살았어요. 빨래를이렇게빨라면이렇게빨고저렇게빨라면저렇게빨고….”

혜암스님이법문을가시면스님은가사장삼을챙겨서메고따라나섰다. 그러나쇠약해진혜암스님은걷다
가 곧잘 멈춰 섰다. 그러곤 한 쪽 손을 슬며시 들었다. 그건 그때부터는 스님이 혜암 스님을 밀고 가라는 신호였다. 그렇게몇해동안혜암스님을밀고다녔다. 그시절이그리워졌는지스님이말끝을얼른감춰버린다.

“돌아가시면 얼마나 쓸쓸할까 싶었어요. 그래서 은사 스님은 젊은 스님으로 해야겠다 싶었죠. 동시대 사람으로 같이 고민하면서 살면 좋겠다 싶어서 일면 스님을 만나게 됐어요. 해인사에서 공양주 하고 계실 때 내가다가가서상좌하고싶다고했지요.”

세속 나이 스물넷에 출가했다. 처음엔 오대산 월정사로 갔다. 좀 살아보니 생각해왔던 승가의 모습이 아니었다. 계율에 어긋나는 음식들을 가까이 하는 모습에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 절집에 든 자신이 혼란스러웠다. 출가를한게잘못한일은아닌가싶었다.

“내가 율사는 아니지만 출가해서 스무해넘게 그런 고집은 두고살았어요.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이제나는 가치관이 정립되었는데, 안타까운 건 어린 스님들이 내부에서 그런 절차 없이 계율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것이죠.”

우리는 곧잘 겉모습에 마음을 뺏기곤 한다. 사람의 진심은 들여다보지 않고 언변에 녹아나는 격인데, 계율을 지키는 사람을 옹졸하게 보고 되레 계율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자유주의자처럼 여기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계율을 꿋꿋이 지키는 자들이 진정한 자유주의자라는 것을 우리는 나중에야 알게 된다. 고기와술과 담배에 끄달려 다니는 것이 자유주의자는 아닐 것이며 알콜중독자를 자유주의자라고 할 수 없는 것과같지않을까.
스님은 스무 해 넘게 시내에 살면서도 예불과 기도 시간만큼은 한번도 어긴 적이 없다. 보는 눈 하나 없어도 자기가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예불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알고있는것이다.

“해인사에서는 대중의 눈이 나를 지켜줘요.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서 예불하고 공부하게 되죠. 그런데 여기는 혼자있으니자유롭죠. 그렇지만나는정확한시간에자고일어나요. 그렇지않으면내가무너져요.”

포교부장을 지내기도 한 스님은 대중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불교를 생활화할 것인가에 대해 그동안 많은 고민을 했다. 신앙이 생활과 떨어져 있으면 신앙은 생명이 없는 것이며 사치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기도를생활화해야한다는것이스님의생각이다. 언제어디서든매일기도를하라는것이다. 제일중요한것은지속적인마음, 신심이기때문이다.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삶이 변화해 가는 것을 스스로 체험해야 해요. 자기 신앙적인 체험이 있어야 진정한 불자가되는것이죠. 그래서일과기도를해야하는거예요.”

평소에는 부처님 생각도 않다가 절에 와서만 신심을 살려 복을 달라고만 하는 종교는 피상적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내 가정을 수행도량으로 만들자’라는 말을 늘 한다. 우습게 들릴지 몰라도 자신의 가정을 수행도량으로여기는것이한국불교의힘이될것이란다.
또 하나는 법요집을 한글로 바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못 알아듣는 말을 써서 어렵게만 여길필요는없는것이다. 그래서스님이있는절에서는예불할때도모두우리말로한다.

“학력이 높은 불자일수록 자기가 이해 못하면 안 와요. 자기가 이해를 할 수 있어야 마음을 품고 다가오게 되는거죠.”
어린이나 청소년이 읽을 때 쉽게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불교는 그저 어렵다는 생각으로 쉽게 접근하지 못할 종교로 여기게 할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포교원에서는 불자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자료들을 끊임없이 만들어서 점점 한글화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현대인들이 불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만들어야할것이다. 공감할수있어야할것이다.

“한글로 된 천수경과 한문으로 된 천수경이 있으면 사람들이 어느 쪽을 더 선호하겠어요. 사람들이 손 내밀어 잡는 책쪽으로종단에서도주의를기울여야해요.”

한글 법요집을 만들 때, 큰 절에서 사용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기도하는 스님들이 한글로 하려면 다시 공부를 해야 하고 지도자를 양성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보니, 멀리 내다 봤을 때 발전적이고 좋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필요성은 알지만 당장 불편하고 밥 먹고 사는데지장없으니다시원래있던자리로돌아가버렸던것이다. 쉬운일이아니었다.

“불교는불교적인요소로승부를봐야해요. 가장불교답게포교하는것이불교를가장탄탄하게만들거예요.”

불교적인 것이 무엇이냐고 여쭸다. 그러자 스님은 불교적이지 않은 것을 내 앞에 늘어놓았다. 그러면 불교적인것이무엇인지단박에알수있을거라는듯이.
제사, 바라문들이 사람들에게 제사를 지내게 해 욕망에 사로잡혔던 것처럼 지금 한국 불교에는 49재 열풍이 불었다. 그렇게제사를지내는것이부처님의말씀과맞닿는가, 완전히극과극에있지는않은가생각해볼일인 것이다. 사주팔자를 보고 부적을 만드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것인가 곱씹어 볼 일인 것이다. 그만큼한국불교는불교적인요소가아닌것으로포교를하고있지않은가, 거울앞에서서뚫어지게들여다 볼일이다.

“승려는 자기 수행을 열심히 하고 신자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고 그들이 부처님 말씀을 믿고수행하면서자기체험을통해서자비를실천할수있도록해야지요.”

스님은 98년부터 장학사업과 노인복지사업을 꾸준히 해왔다. 그러다가 작년부터는‘아름다운동행
(cafe.daum.net/armdong)’이라는 것을 만들어 신도들과 자비를 실천하는 일들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어려운 이웃들을 지원하는 나눔 운동, 친환경용품을 쓰고 자연보호 활동을 하는 살림 운동, 나와 사회를 바르게 하는 대안생활을 제시하는 바룸 운동이 그것이다. 그것이 또 하나의 포교가 되기에 스님은‘아름다운 동행’의걸음 에힘껏탄력을붙이고있다.

“기독교에서는 마음을 나누고 봉사하고 지원하는 일에 큰 관심을 갖고 상당히 많은 일들을 하고 있어요. 불교에서야말로자비를실천하는일들이필요합니다.”

스님은이렇게점점포교의저변을확대시킬생각이다. 서두르지않고저변부터탄탄하게다지며천천히쌓
아올릴생각이다.

“금생에는 이렇게 도심에서 살다가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포교하면서 어린 스님들 교육 잘시켜서 지금의 길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죠.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해주고. 내가 그런 역할을해야하지않을까합니다.”

스님이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따라 많은 스님들이 걸어오기를 바란다. 더 많은 스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운을 합쳐서 탄탄대로를 만들어 가기를 스님은 바란다. 열심히 부처님께 기도하면서 걸어간다면 그 바람이이뤄질거라고확신한다.
도시의저녁바람은유난히서늘하다. 산중의명징한바람이아니니마음까지서늘해져버린다. 그러나스님
은 이 둔탁한 적막에 환하게 불을 밝힌다. 옷깃을 여미고 더듬더듬 휘청대는 우리의 걸음에 앞서 불빛을 환히 밝히고 걸어간다. 이 도시의 골목골목을 파고들던 앙칼진 바람도 조금씩 온화해진다. 머지않아 모두들 부처님의 법을 전하러 떠나야 할 시간이올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