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들떠서 잠을 설치곤한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기다릴 때나,무언지 모르는 선물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기분이든다.
이처럼 가슴이 콩콩 뛰고 그 가운데서 살짝 느껴지는 달콤함 같은 그것이바로설렘이다.
그런데 지지난해 나는 이와는 조금 다른경우에 설렘을 느꼈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언니와 가야산에위치한해인사에가게되었다.
천주교를 믿고 있던 나로서는 어떤 종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소설‘하늘이여, 땅이여’의 소재가 되었던, 우리 민족 스스로도 잊어버리려 하는 우리의 옛 문화 그 소중한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직접 보고싶어서간것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처음 본 가야산은 짙은 초록색 포스터물감을 쏟아 부은 듯 푸르름으로 가득 찼고, 돌을 던지면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져버릴 듯한 홍류동 계곡은 그야말로 그림그자체였다.
시원한 계곡 숲을 지나 들어선 경내는 늦더위가 한창인 팔월 말이라 너무더웠다.
흐르는 땀 닦는 데 정신이 팔려 팔만대장경도 보는 듯 마는 듯 쓸데없는 농담이나 하면서 절 안을 그냥한번쑥훑고말았다.
몇 번을 벼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뭐 하나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장난만 치다 돌아 내려가는 나를 부처님께서 꾸짖기라도 하시듯 돌계단앞에서난꼼짝할수가없었다.
거짓말처럼 목뒷덜미 쪽이 순간적으로 마비돼버린것이다.
꼼짝도 못하고 뙤약볕 아래 서 있는 몇 분 동안 언니는 내가 벌을 받은거라며 농담 삼아 웃었지만 난 이상하게한기를느꼈다.
뭔가가 가슴에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기도한….
한참 후 마비된 근육도 풀리고 또 조금은 정신이 들기도 한 나는 서툰 솜씨로나마 부처님께 합장을 하고(절하는 법을 몰랐다) 경내에 있는 서점에 가서 몇 권의 책을 구입하고는 해인사를나왔다.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이상했다.
괜한 일에 크나큰 의미를 부여하는것 같기도 했지만 사실 그때 나는뭔가 계시를 받은 듯한 기분이었고 불교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 도 그때였던것같다.그날 이후 불교에 대한 책을 시간날때마다읽기시작했다.
무심히 돌려 버리던 불교 방송도보고 절에도 다니면서 불교에 대해 조금씩 알아 갈수록 내가 그동안 보지못했던 부분들이 보였다.
조금 본 사람은 그 경계밖에 모른다고한다.
강을 본 사람은 강만 알고 냇물을본 사람은 냇물만 알지 바다를 못봤으니까 바다를 말할 수 없다고.그러나 바다를 본 사람은 냇물도 강물도 바다도 다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천주교만 알고 불교를 접하지 못했던 때의 내가 생각할 수 있던 의식의 폭과 지금 내가 볼 수 있는 부분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남을 인정하지않을수없다.
그 예로 비슷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입장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자한다. 예전에 신부님 강론 중‘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세 친구가 있었다. 첫 번째 친구를 위해 그 사람은 온 정열을 다 바쳐 잘 해주었다.
두 번째 친구를 위해서도 첫 번째 친구에게만큼은 아니지만 잘 해주려고 애쓰고노력했다.
세 번째 친구는 그냥 마지못해 만나는 사이로 잘 해주지도 않았고 신경도제대로쓰지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폭군인 왕이 그사람을불렀다.
악명이 높았던 왕인지라 그는 겁이 나서 첫 번째 친구에게 같이 가줄 것을 부탁했으나 그 친구는 바쁜일이 있다며 거절했고, 두 번째 친구는 왕이 사는 궁전 앞까지만 같이가주겠다고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듣던 세 번째 친구가 자신이 함께 왕한테 가줄 것이며 왕이 뭐라 그러시면 자네를 위해변호를 해주고 큰 벌을 받게 되면자신이 그 벌을 대신 받아주겠다고말했다.
여기서첫번째친구는재산이다.사람은 재산을 모으기 위해 한평생 아등바등 몸부림치지만 죽을 때
그것을 가져 갈 수 있는 이는 아무도없다.
두번째친구는자기자신이다.항상 남보다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며 살기 마련이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힘들어졌을 때는 자기 혼자밖에없는것이다.
세 번째 친구는 이웃에게 베푸는사랑이다.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사랑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서로사랑하라’는말씀이었다.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지난해 칠월 해인지에 실린 월호 스님 글에서는 세 명의 친구가 네 명의 부인으로, 왕의 부름이 죽음으로 바뀌었을 뿐기본내용은같았다.
그러나 같은 글을 해석함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첫째로 애지중지하던 부인이란 몸뚱이를 말하는 것으로 살아생전 온갖 애정을 쏟아 부어어찌하면 좀더 잘 먹이고 입힐까 전전 긍긍하지만 죽음에 임박해서는 아무런소용이없다.
둘째는 재물, 셋째는 친지 등으로 역시 죽음에 동참할 수 없고, 마지막 넷째만이 살아서는 물론 죽음 이후에도 뗄 수 없는 것으로 우리의 업장, 즉 닦거나 닦지 못한 마음이라고하고있다.
이처럼 같은 내용의 글도 알고 보면 더 많은 걸 볼 수 있게 되는 것같다.
아! 불교를 통해서 나의 생각이조금씩커져가고있음을느낀다.좀더 깊이 있게 공부하다 보면 평
범한 사실들 속에서 진실을 찾을 수도있겠구나하는생각도들고….
세상을 살면서 무엇 하나 공으로얻어지는 것이 있겠냐만은 앎은 결코 공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에더 값지고 배워가는 내내 설레는 것같다.
참된 앎이란 타인에게서 빌려온지식이 아니라 내 자신이 몸소 부딪쳐체험한것이어야한다고했다.
다른 무엇을 거쳐 아는 것은 기억이지앎이아니라고….
지금의 나는 완벽한 불교 신자도 아니거니와 불교에 대해 첫걸음을 내딛은 설렘뿐 아는 것이 많
지 않다.하지만 순간순간 내가 호흡하는일과 마찬가지로 항상 불교에 관한내 관심을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는진정한 깨달음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