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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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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현주 / 해인사 승가대학 대교과 2007년 03월 301호
졸업과함께 또다른 시작을 맞는 현주스님 해인사를 떠나며 설렘으로 봄을 기다린다. 설렘은기다림을전제로한다.
무언가 결여되어 있는 충만을 향 한기다림이나를설레게한다.
강당을 졸업하고 구족계를 받으 면 보다 성숙한 수행의 길로 접어들수있을까?
잔설이 남은 2월 녹차 잔에 매화를 띄우고 봄의 설렘에 흠뻑 젖어본다.
강당생활을 마감할 이때 봄비에젖어 질척질척 황토로 변한 흙길을 걸으며 영원히 머무를 곳 정할 수 없지만, 새로운 길에 대한 설렘에 들떠본다.
행자시절부터 시작해 강당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어엿한 비구로서 길 없는길에접어들게되었다.
간절함….행자시절엔 절실한 간절함이 있었다. 하지만 간절함은 설렘의 집착이다.
설렘은 좀더 느슨하고 여유롭고 나른한 감정이다. 무언가 확실하지 않지만 기대되는그런감정.

‘수행자가 어디서 온지는 몰라도갈 곳은 확실히 해야 되지 않겠나?’

라고다짐한다.
하지만 행자 때와 달리 춘곤증과 같은 이러한 설렘의 몽환적인 기분으로는 업식의 풍랑에 휩쓸려 다니기쉽상이다.
그래도 봄이 오면 설레는 건 아직 중생이기때문이다.
봄의 생명에대한 찬미는 끝이없지만 성질 급한 매화가 유독 기다려지는건매화의진한향기가눈의무
기無記적인 향기에 대비돼서인가?
세속을 거슬러 가는 힘겨운 길이지만 진실한 믿음과 매향梅香같은 도반들이있기에즐겁기만하다.
짧은 낮잠을 자는 듯한 이러한 중얼거림은 신내림 받은 무당이 혼백의 언어를 늘어놓듯 봄에 흠뻑 취해두서 없이마음에서쏟아져나온다.
영원하지 않지만 익숙한 괴로움이 계속되기를 갈구하는 것이 중생의습성인가?
부처님처럼 살아가면 된다고 갈길 확실히 정해놓았어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마른 나뭇가지에 붙은 겨우살이처럼 엉켜붙어 떨어지려하지를않는다.
강당 경반의 그 편안함과 게으름 사이의 생활을 접고 이제는 초심으로 돌아갈때이다.
보살의 원력으로 모든 걸 털어내고 정진한다면 마른나무에도 꽃이필까?
애욕에 탐닉하듯 공부를 했다면 오래전에견성했을텐데….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흡사 첫 걸
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불안하기만하다.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어야 한다지만 강당생활의 장판 때는 이제 쉽사리지워지지않을것만같다.
중물 들이러 들어간 해인사 강원.4년여 동안 총림의 생활에 이제는 속때를 벗고 어엿한 대장부가 되어 일주문을나선다.이제는 외로움에 허덕이며‘사랑이 전부다’라고 외치는 치기 어린
아이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을 수 있는공부가되었다.
그래도 그림자처럼 떨어지지 않는 뇌고로운 외로움은 그 추운 삼동처마끝에 주렁주렁 매달리는 고드름처럼 합장하는 손끝에 회한으로 맺힌다.
찬 입김을 입에 물고 홍류동 계곡을 내려오니 크고 작은 바위들이 겨우내 눈속에서 움츠리고 있다가 봄비에 녹아‘나무아미타불’여섯 글자 가슴에 품고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그여섯글자에 회한도녹아버리고 숙업도 녹아버리고 가야산 칼바람에 대나무처럼 떨어대던 모든번민이사라져버린다.
기쁠 때도 웃고, 슬플 때도 웃고,짜증날 때도 웃어보고, 분노가 일어날 때도 웃어버리니, 이제는 벗어놓은 고무신을 보아도 처연한 웃음이 아닌따뜻한미소가배어나온다.
법고소리 파도처럼 말 달리고 쇠북 치는 모타라수에 모든 번뇌 씻겨나가는 해인사.
자운 큰스님 부도앞에서 다시 한번 발원하고 발길을 북으로 서울로 향한다

주룩주룩 내리는 봄비레 젖은 장삼자락 무겁기만 하고 헤아릴 염주일은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 서성이는 먹물옷 입은 스님네와 어울려 하늘마저 먹장구름 옷을 두르고 칠석이는 활톳길로 새봄을 맞이하려 옷버리는 줄 모르고 하염없이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