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꿈/ 시작하는마음
다음 게시물
산설세설山說世說 - 영덕
2007년 03월 301호

산에서 길을 잃었다. 어둠이 깊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손을 내밀어 더듬거릴 때 어디선가 불빛이 다가왔다. 다급하게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 물길을 따라 가거라.닿는 곳이 있겠지. 어둠 속 목소리는 담박하고 힘이있었다. 산길을 내려와 마지막 한 걸음이 평지에 닿는 것을 확인하고 불빛도 사라졌다. 수류거隨流去,흐름을 따라 흘러가라. 물이 가는 것이 법法이니 법을따라가는길은도道를 닦는 일이다. 나는 지금껏무엇을얼마나닦아왔는가. 이육시二六時에예불모시고자리지키고산문안에몸담고시정市井을잊은일외엔무엇하나제대로한것이없다. 밥때엔밥을먹고 잘 때에는 잠을 자며 도道는 꿈에도 보지 못한 채 일 마친 사람처럼 한가로 왔으니, 게으름으로 진 밥 값은다음 생에나 갚자. 일미칠근一米七斤, 쌀 한 톨에 일곱 근이면 몇 번이라도 다시 죽어 알뜰히 갚으리라. 가루실 농장의 젖소로도 갚고, 돌담 아래 백구白狗로도 갚고, 금당 아래 봄 울음 크렁대는 고양이면 어떠랴. 내가지은 업에서 도망치려 말자. 나를 위한 사십구재는 가난한 이웃에게 보내주고 금강경 독송은 읽는 자들에게 돌려주며 내 업은 내가 지고, 지은대로 받으리라. 무사히 산을 내려 왔지만 물 길 끝나는 곳까지 가서 그곳에 앉아구름피어오르는서정을무심으로바라볼수있을까. 망연히끝간데없는허공을바라본다. 가다가막히면 쉬어 가고 고여서 차면 넘어가고 다시는 부딪히지 말고 돌아가야지. 이제 내게 산은 없다. 때때로 삶은 야누스의 양면이있어 마음같지않게흔들려이쪽저쪽부딪히며상처를낸다. 그러할일도아니건만한번멍이들면 삭여지는 시간내 쓸쓸하고서 글픈것을아파본사람만이안다. 학인들과더불어자비참법慈悲懺法기도 회향을 하던 날, 맑은 봄물에서 목욕을 하였다. 깊이 들어 갈수록 물은 부드러웠다. 단 한 번도 헤엄쳐 본 적이 없는데 나는 물고기처럼 춤추듯 부드럽게 유영游泳하고 있었다. 맑은 물가는 어느새 큰 바다로 변해 산더미 같은 파도가 달려오고. 그러나 두렵지 않았다. 이미 파도를 타며 헤엄칠 줄 알았고 바다는 스스로 잦아들
어 노란 달빛을 받아내며 해조음에 젖어 있었다. 무미無味하거나 무거울 때 자비참법 기도를 한다. 생령生靈과 망령亡靈을 축원하며 구절구절 금성옥진金聲玉振을 뒤로하고 십 권에 이르면 마친다는 안도감도 좋지만 육근六根발원이 절실해진다. 모든 재앙의 근본이며 또한 무량한 복업선근의 근본, 너나없이 이 몸뚱이를 끌고 존재해야 하는 실재성 때문이리라.‘ 원컨대 오늘 이 도량의 동업대중과 사생육도의 일체 중생들이 오늘부터 보리에 이르도록 눈으로는 탐욕의 삿된 대상을 보지 않으며 아첨하고 왜곡되고 망령된 세계를 보지 않으며… 겸손하지 않고 조심성 없는 교만한 것을 보지 않으며… 오늘부터 항상 시방에 상주하는 법신의 담연한 빛을 눈으로 보며 32상80종호의 자금색신을 보며 모든 하늘과 신선이 보배를 받들고 와서 꽃처럼 뿌리는 것을 보며 금일 이 도량의 대중이 환희하여 법을 찬탄하고 정대頂戴하는 광경을 보며 사부대중이 둘러앉아 법문 듣고 우러러보는 광경을 보며 보시 지계 인욕 정진의 경계를 보며 고요하게 생각하고 지혜를 닦는 모습을 보며 모든 이들이 법의 흐름에 목욕하고 물러나지 않는 것을 보아지이다. 이미 안근의 원을 발하였으니 함께 지성으로 오체투지하고 세간의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 귀의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