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를 가는 길에 해남 대둔사에 들르게 되었다. 마침 대웅전에는 원교 이광사가쓴 대웅보전 현판이 걸려 있었다. 이것을 본 추사는 글씨가 너무 속되고, 교巧하다 하여 그 현판을 떼어내고 자신이 쓴 현판을 붙여 놓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유배에서 풀려나서 상경하는 길에 다시 대둔사에 들러 자신이 쓴 현판을 보고는 이전 것(이광사의 것)이 낫다고 하며 원래대로 하였다. 세한의 송백의 푸르름과 난세의 군자의 지조를 알고 난 후의 추사의 이와 같은 처사가 어떤관계가있을까싶어한참을웃었다.겨울 하늘이 맑고 높을수록 바람은 차다. 겨울 찬바람은 차다고 탓할 일이 아니고 차라리 맑아서 좋다. 창을 열고 하늘을 보니 맑고 높은 것이 산책하기는 제격이겠다 싶어 눈이 온 어느 오후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나선산책길이기도하지만이미앙상해진숲에눈이쌓이니앞선경치가무척낯설다. 햇살은이미뉘엿하게누였으나흰눈위에반사된빛은아직도눈이부셨다.
어느날마조스님(마조도일馬祖道一; 706~786)께어떤이가물었다.
“무엇이불법의요지입니까?”
“바로그대가몸과목숨을놓아버릴곳이다.”
“4구백비四句百非를 떠나 서쪽으로부터 오신 뜻을 바로 보여주십시오. 번거로운 여러 말씀은 필요 없습니다.”
“내가오늘은아무생각도없어서그대에게말해줄수없으니서당西堂에게가서묻거라.”
그스님이서당스님에게가서앞의일을자세히고하니, 서당스님이말했다.
“그대는어찌하여큰스님께묻지않았는가.”
“큰스님께서저더러스님께물으라하십니다.”
이에서당스님이얼른손으로머리를짚으면서말했다.
“내가오늘몹시도머리가아파서말해줄수없으니, 해(海;백장百丈스님) 사형께가서묻거라.”
그스님이백장스님에게가서앞의일을자세히이야기하고물으니, 백장스님이말했다.
“나는그경지에대해전혀알지못한다.”
그스님이다시와서아뢰니, 마조스님께서말씀하셨다.
“장(藏; 서당)의머리는희고, 해海의머리는검도다.”
참으로 강물은 흐를 수 있는 곳에서 달려 나가고, 새매는 오직 창공에 있을 때 아름답구나싶다. 강물로 달려가는 시냇물도말이 없고, 창공에날개를 편 새매도 말이 없는데, 중생은 어느 틈에서나말이 필요 없는 자유로움에처할까하며마음만저편으로달려간다.
내가 그 자리에서 마조스님께 다시묻고 크게 한방망이 얻어맞지나않았다면 그 나마 참으로 다행이다 싶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를 가는 길에 해남 대둔사에 들르게 되었다. 마침 대웅전에는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 현판이 걸려 있었다. 이것을 본 추사는 글씨가 너무 속되고, 교巧하다 하여 그 현판을 떼어내고 자신이 쓴 현판을 붙여 놓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유배에서 풀려나서 상경하는 길에 다시 대둔사에 들러 자신이 쓴 현판을 보고는 이전 것(이광사의 것)이 낫다고 하며 원래대로 하였다. 세한의 송백의 푸르름과 난세의 군자의 지조를 알고 난 후의 추사의 이와 같은 처사가 어떤관계가있을까싶어한참을웃었다.
누군들가르쳐줄수있으랴 어한참을허허거리며웃었다. 하지만하얀눈길에발자국내는일을주저주저하여자꾸만앞선스승을향해 묻고싶어지고그위로무심히쏟아지는함박눈은앞선발자국을속절없이지운다.
세한도는추사김정희가제주도에서귀양살이를할때그린그림이다.
세한도라고 하는 화제를 앞에 달고 고목古木이 된 소나무 한 그루와 작은 모옥 주변에 곧고 푸른 소나무셋이 이 그림 구성의 전부이다. 먹과 붓을 이용하는 데 있어서조차 일체의 윤택함을 멀리하고 오직 붓은 거칠고, 먹은 마르게 했을 뿐이다. 유배 생활이라는 것이 이렇게 거칠고 메말랐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림에서는 까칠한 붓질이지만 그 안에는 담백함만 있고, 군더더기는 없다. 무릇 선비의 생활은 유배지에서나 벼슬에 나아가서나 간결하고 담백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오히려 세상에서 물러났을때 담백함을즐기기란쉬운일은아니다.
송백松柏이야말로 겨울 숲을 위해 있는 나무들이 아닐까 싶다. 여름의 무성한 주변의 녹음으로 이들의 자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오히려 차가운 숲에서 눈을 지고 있는 이들은 이때를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닌가 싶다. 공자는《논어論語》에서“날씨가 추워야 송백이 늦게 시드는 것을 알고, 난세가 된 후라야 군자의 지조를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亂世然後知君子之不改)”라고 하였고, 추사는 이 글에서 뜻을 얻어 이 그림을 그렸다. 그가 귀양살이하던 59세때(1844) 당시 청나라에 가있던 역관譯官인 이상적(李尙迪;1804-1865)에게 그가 남의눈을 개의치 않고 사제간의 의리를 지킨 것에 감탄하여 그려준 것으로 그림 뒤쪽에는 당시의 심정을 그린 장문長文의 자
제自題가 붙어 있다. 이보다 먼저 제자가 보내 준 책을 받아들고 반가운 마음으로 추사는“우선藕船! 이것을 감상하게나(藕船是賞)”하며그림제일앞머리에문득적어넣었다.
그의유배와관련해서재미있는일화가전해진다.
추사가제주도로유배를가는길에해남대둔사에들르게되었다. 마침대웅전에는원교이광사가쓴대웅
보전 현판이 걸려 있었다. 이것을 본 추사는 글씨가 너무 속되고, 교巧하다 하여 그 현판을 떼어내고 자신이쓴 현판을 붙여 놓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유배에서 풀려나서 상경하는 길에 다시 대둔사에 들러 자신이 쓴 현판을 보고는 이전 것(이광사의 것)이 낫다고 하며 원래대로 하였다. 세한의 송백의 푸르름과 난세의 군자의 지조를 알고 난 후의 추사의 이와같은 처사가어떤관계가있을까싶어한참을웃었다.
화사畵師는 그림으로 뜻을 전하기도 하지만, 조사께선 그저 행을 보이셨을 뿐이다. 강물은 흐르는 곳에서서로 모여 달린다 하였고 새매는 오직 창공에서 자유로울 뿐인데, 해인海印의 숲에는 이미 300그루의 송백이 푸르게 자랐다. 송백은 가지를 들어 어디를 가리키진 않으나 그가 내뿜는 숨결로 이미 그 숲은 청정도량 그 자체가 된다. 청명한 숲길을 걸을 때 그 발걸음이 나아가서 좋고, 또 물러나도 좋을 것이다. 그 안에 뜻을 두어도 즐겁고 또 뜻을 두지 않아도 한가하니 그것이 도심道心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일 것이다. 그 발걸음을 두고 많이 왔다 해도 맞지 않는 것이요, 불법의 장구함을 비교하여 아직 멀었다 해도 그렇다. 다만 흰눈쌓인겨울숲에나섰으니볼을빨갛게물들여가며걷는것이또즐겁지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