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 아침의 알싸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한국의 겨울 공기를 상상하며 차창에 기대 보지만,뺨을 스치는 바람은 여기가 한국이 아님을 단박에 알려준다. 초가을 정도의 기온이 지금 로스엔젤레스의 날씨다.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고드름같이 차고 투명한 바람을그리워하며, 차를몰아북쪽으로향한다.로스엔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가 속해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태평양과 붙어 있는 풍요로운 곳으로 뉴욕 다음으로인구가많은곳이다. 얼마전까지만해도이땅은멕시코의 영토였으나, 1948년 미국과의 전쟁이 있은 후 땅주인이 바뀌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사람 살기 좋은 곳들
엔 인구가 밀집되어 있으나, 그 외 지역들은 아직도 사막지대로 남아 있다. 태고사가 들어선 곳 또한 모하브 사막지대이다. 아스팔트가 깔린 프리웨이를 타고LA에서 약3시간정도북쪽으로올라가면테하차피(TEHACHAPI)라는 시골 동네가 나오는데, 이곳에 태고사가 있다. 큰도로에서 내려 절집으로 들어가는 작은 산길은 비포장도로. 바퀴가 구를 때마다 마른 먼지가 일어 사방으로날린다. 사막의 마른 풀들과 선인장들이 사방으로 뒹군다. 돌무더기와 푸석한 흙이 섞인 민둥산들이 이어지는길. 어렸을 적 보았던 서부영화의 장면들처럼 황량한 풍경이다.
태고사의 입구임을 알리는 입석을 지나, 말라버린 계곡 상류를 따라 좁은 길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나무들의숫자가 늘어나면서 숲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막 골짜기에 이런 곳이 숨어 있었다니? 멀리 보이는 기와지붕이반갑게 다가온다. 여러 채의 전각들이 눈에 들어올 무렵,동시에 드는 생각은 한국의 산세와 매우 흡사하게 닮아 LA 도봉산태고사 있다는 것이었다. 대웅전이 들어선 자리는 큰 봉우리를 뒤로 하고, 양 옆으로 여러 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절 옆으론 마른 계곡도 보여서인지, 한국의 산사 풍경을 그대로옮겨놓은듯했다.
대웅전 처마 밑에 오르니 아늑하면서도 탁 트인 시야가 펼쳐졌다. 마치 한국의 산처럼 엄마의 자궁 안에 들어온 듯 편했다. 태고사 주지인 무량 스님은 화계사 조실숭산 스님에게 출가해 10여 년간 한국에서 수행하며 한국 사찰에서 비구계를 받은 승려다. 예일 대학교 3학년때, 숭산 스님이 세운 젠 센터에 들어갔고, 졸업 후 1983년 출가를 했고, 화계사에서 숭산 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예산 수덕사와 군산 태고사에서도 수행을 쌓았다. 무량 스님은 1990년 LA 달마선원의 주지를 맡기도 했었다. 스님의 부친인‘스튜어트 베럴’또한 한국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는데, 그는 10개월 동안 한국전에 참전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웅전은 한국에
있는 전각보다 더 한국적이어서, 주춧돌 위에 올린 굵은나무 기둥들과 벽뿐 아니라, 지붕에 이은 기와와 단청 모두가 한국의 사찰 건축 양식을 그대로 옮기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일행과 함께 대웅전에 들어 절을 한다.
후불탱화에는‘오래 전 인디언 성지였던 시에라네바다산맥 골짜기에 도량을 정하였다. 1995년 9월 이곳에 수행을 위한 법당을 마련하고자 요사채 불사를 시작하였다.
그후5년만인2000년3월에이르러석가모니후불탱화와 지장탱화 그리고 신중탱화를 조성하여 봉안하였다’는기록이 적혀 있어 절집의 내력을 알 수 있게 한다. 새소리가 이따금씩 들릴 뿐 정적과 찬 기운이 감도는 법당,윤기 나는 나무가 깔린 바닥에 앉는다. 동행한 이들은 친분이 각별하긴 하나, 종교는 모두 달라서 천주교와 기독교 신자들이다. 우리 셋은 각자의 종교에 바탕을 두고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는 편이어서, 법당에 들어서도 각자명상에 들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이가 경전을 넘기며,독송을 하기 시작했다. 독송이 끝난 후 우리는 반야심경을 소리 내어 함께 읽어내려 갔다. 독경소리가 대웅전에울리고, 벽을 통과한 마음은 테하차피의 마른 계곡으로흘러 내려갔다.
“참 좋다! 어쩜 이렇게 좋은 뜻이 있을까?”
라고 한 이가 말하자,
“종교는 달라도 궁극적으론다 같은 것 아닐까? 등산 코스가 다 달라도 모두 정상에서 만나니 말이야!”
다른 이가 이어받는다. 쉽고 서툴게표현이 됐지만, 나 또한 이네들의 마음에 동의한다. 종교
란 인간을 얽매는 것이 아니다. 무엇으로 실체 없는 마음을 묶어 둘 수 있겠는가? 마음은 절집 처마의 선처럼 절제되고 자유로운 상태로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것이다.
아름답고 귀한 것이다. 법당을 나와 대웅전 뒷산을 오르니, 태양열 집열판과 풍차의 모습이 눈에 든다. 에너지에 대한무량스님의 생각은 이렇다.
“태고사 터는 전기선도 전화선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느낌을더해 주어 한편으로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동력원을 찾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나는 화석 연료와 핵연료를 사용하여 공기를 오염시켜 가며 발전을 하고 싶진 않았다. 또한 기름을 공급받기 위해 군대에 의존하는 중앙집중식 전기를 쓰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중략- 내가 다음에 발전연료로 시도해 보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바이오디젤이다.”-‘ 왜사는가?’
중에서 한국 선불교 도량인 태고사 마당엔 종각이 있는데, 종신에는 윗부분에‘도봉산 태고사太古寺’와 하대에‘MOUNTAIN SPIRIT CENTER’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하대에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그림이 부조되어 있는데, 여러 민족의 의상을 입은 이들이 강강술래를 하듯 손을 잡고 빙 둘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요사채에서 내려가는 계단 위에 걸린 족자에는 숭산 스님의 글이 남아 있는데,‘ 무근수無根樹’라는 글과 평화의 종에새겨진‘강강술래의 모습’이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스팔트가 나오기 전까지 나 있는 좁은 산길을 내려가며 먼지를 내지 않으려 시도해 보지만 마른 먼지는 어김없이 떠오른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려는 마음은욕심이다. 그저 내가 일으킨 먼지를 마시며, 퍼져나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