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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사지고려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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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성보 - 임종효 2007년 02월 300호
윤용진 교수(경북대학교 명예교수)로부터 기증 받은 법수사지 고려현판 - 사진 이영숙 현재 모TV프로그램에서 진행 중인 국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에 대한 환수운동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때에 해인사 성보박물관(관장 본해)은 지난 1월 2일 윤용진 교수(경북대학교 명예교수)로부터 법수사지 고려현판을 수증했다. 법수사지 고려현판은 윤용진 교수가 1962년 가을 법수사지를 답사하던 중 금당지 앞 축대 아래쪽 밭에서 우연히 발견한 목조현판으로 현판은 앞뒤면을 대패로 밀어서 두께가 0.7cm밖에 되지 않는 송판이었으며, 세로 29.3cm, 가로 14cm 정도만이 남아 있어 완전한 상태에서의 길이와기문의전문은알수없었다. 하지만현재남아있는현판의기문내용중주목할만한점이있어소개하고자한다.
서체는 고려시대의 금석문에 잘 쓰였던 구양순체로서 숙달된 필력으로 해서했다. 현판에남아있는기문은끝부분의5행에59자가선명하게남아있으며, 원문의내용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有天····之瑞
諸王公三重命餘作記而不獲牢讓
略記此事之本末示於將來者也時大
宋建炎二年己酉十二月三日伽倻山新
興寺住持重大師慧觀記

내용은‘諸王公의 3차에 걸친 명에 사양할 수 없어서 차사지본말此事之本末을 약기略記하여 장래자將來者에 알린다’라는 내용이며, 가야산 신흥사 주지 대중사 혜관이 고려 인종 7년(1129)에 적었음을 부기해 두었다. 위 내용에서 주목할 부분은

“대송건염이년 기유십이월삼일 가야산 신흥사 주지 중대사 혜관 기大宋建炎二年己酉十二月三日伽倻山新興寺住持重大師慧觀記”

로이중건염建炎이라는 연호는 송宋나라 고종이제위에 오른1127년부터 사용한 것으로고려에서는 인종5년에서 8년까지 사용되었다. 하지만 연대와 간지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 이는 다른 금석문의 예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며 당시 송왕조의 혼란했던 정세로 인해 고려와의 국교가 정상적이지 못했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있다. 다음으로 주목되는 것은 가야산 신흥사 주지 대중사 혜관이라는 작기명이다. 기문을 작기한 혜관에 대해서는고려사를 위시한 사서에는 전연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다. 다만 본 현판의 기문에 의해 인종 7년에 가야산 신흥사의 주지로서 대중사라는 높은 승계僧階를 받은 고승이고 고려목판본 대각국사문집을 조조雕造한 혜관과 동명이란 데에서 주목되는 인물이다.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영통사대각국사비와 묘향산보현사비에도 혜관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며 대각국사의 문도로서 대각국사 문집 조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기문의 내용에서 나타나는 가야산 신흥사에 대한 관련 기록은 현재 전해지는 바가 없으며 단지 가야산 일대에 존재했던 수많은 사찰 중한 곳이라는것밖에알수없으므로안타까울따름이다. 이러한상황에서이번유물기증의의의는아주크다고할수있다. 가야산 일대의 폐사지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유물 기증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문화재들의 기증 행렬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박물관에서는 앞으로 이 같은 유물 기증사례를 적극적으로 홍보해 개인소장자들의 유물기증을 적극적으로 유도해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