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란 본질적으로 Peep-Show 머신을 통해 본 타인의 삶이다. 에디슨이 만든 이 요지경
기계가 상업화의 날개를 단 지 100년이 훌쩍 흘러갔건만 이 본질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연기자는 남의 인생을 연기하고 작가는 남의 인생을 그린다. 감독은 남의 이야기를 찍고 관
객은남의이야기를보며웃고운다. 그런데나이가들수록점점드라마가남의이야기가아니라내이야기가되어다가온다.
“춘향이는 늙은 작부의 딸이고 혼전순결도 지키지 못한 품행이 나쁜 여자야. 이몽룡의 아
버지는 성격도 좋지, 내가 그 입장이라면 몽룡이 이 녀석, 다리몽댕일 분질러서라도 결혼을
못하게막을거야.”
배 나오고 얼굴에 기름 낀 50대가 되면서 나는 이런 거지 같은 농담을 다소 진지한 얼굴로
대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부쩍 커서 저마다 짝이 생기면서부터 춘향전이 더 이상 남의 이야
기가아니게된것이다.
돌이켜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가에 투신한 지 어언 25년… 다른 장르를 기웃거리던 몇
년을빼면드라마만꼬박20년이다. 내인생의황금기를드라마에온통바친셈이다.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하나를 꼽으라면 뭘까? 두말할 것도 없이‘갈등’이다. 인간
의 삶이란 거의 대부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영위되는 것이고 타인과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부딪침을 초래한다. 그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희로애락을 겪는다. 그리고 바로 이
런 인간의 모습이 드라마가 된다. 작가나 감독은 갈등을 거의 화두처럼 물고 늘어져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드라마는 그 존재성을 잃게 된다. 내가 드라마를 만든 지 20년이 흘렀다
는것은이를테면갈등을물고늘어진지20년이지났다는뜻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스스로 친 덧에 걸린 것일까? 요즘 내 직업과 관련해 나 스스로 심
각한갈등상황에처해있다. 그중하나가시청률과관련한갈등이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아마 잠 안 오는 밤, 늦은 시간에TV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본의 아
니게 사인 오프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인 오프(sign off)란 정규방송의 맨 마지막에 나가
는 채널고지와 애국가다. 편성책임자와 광고책임자 이름이 밝혀지고 곧이어 애국가가 나간다. 을숙도를 나르는 새떼부터 낙산사 소나무에 걸친 일출까지 전국의 달력그림은 다 모아서
낸다. 약 2분 30초 가량 되는 이 독립적인 스팟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약 3% 가량 된다. 만일
내가 만든 드라마가 시청률이 3% 미만이라면 내 드라마는‘애국가에 진’드라마가 되고 나
는‘애국가도못이긴’형편없는연출자가된다.
3개 공중파 TV에서 매주 쏟아내는 드라마는 줄잡아 30여 개. 애국가에 진 드라마가 없으
란 법 없다. 나도 한때 애국가에 져본 경험이 있다. 아! 그때의 그 무한한 모멸감과 자괴감이
란… 그 참담한 심정은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모 작가는 자기가 쓴 드라마가 애국가에 진
날, 방송국옥상에서뛰어내리고싶은충동을느꼈다고한다.
저조한 시청률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감독은 선정성과 폭력의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만일 이 모욕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깡패들의 피 튀기는 패싸움 장면은 물론, 여
배우의 속옷이라도 벗겨 보여주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가끔 경쟁사 드
라마의 전력을 봉쇄하기 위해 스토리와 별로 관계없는 폭력신이나 노골적인 성애장면을 끼
워넣는경우가있는데이럴때그연출자는시청률몇프로에목을매고있다는뜻이다.
높은 시청률이 성공한 드라마의 유일한 잣대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방송인들은 일종의 아
노미 현상을 겪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드라마를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버린
지는 오래 되었다. 요즘 같은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그런 낡은 가치관을 가지고는 살아남지
못한다. 다만 낡은 가치관은 버렸는데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가치관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이다.
와중에 필자는 몇몇 방송작가와 배우 등 방송인들과 함께‘길벗’이라는 수행단체를 조직했
다. 불교의 가르침 속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다. 벌써 2년째 매일아침 108
배와 명상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경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좋은 방송, 보다 나은 세상
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시청률과 광고 판매량
을 놓고 매일같이 처절한 전쟁이 벌어지는 여의도 방송가에서 자본의 논리로부터 자유롭기
는쉽지않을것같은예감이든다.
또하나의갈등은나의직업자체에관한것이다.
‘왜이일을하는가?’
아주 단순한 질문 같지만 사실은 지난 25년을 고민해 왔고 헛갈려 왔던 문제다. 그것은 이
를테면 TV연출이라는, 어찌 보면 단순 기능인으로 전락해 버릴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내 직업에 대한 위기의식이다. 기능과 창작의 사이에서 한계에 봉착해 있는 나 자신을 발견
할때마다더늦기전에무슨일이라도저질러야할것같은절박함을느낀다. 그저남이써준
시시콜콜한,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이야기를 기능적으로 연출하며 시간을 때운다는 것이 너무
나도억울하게느껴지는것이다.
“감독이 되려면 어딘가 무관심한 구석이 있어야 한다. 너무 예민하게 살지 말고 필요한 것
외엔 좀 무관심해지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고 감독이라는 직업의 하중을 견디는 길이다. 힘들
다고자학하지말고어떤부분은포기하고있어야견딘다.”
홍상수 감독의 말이다. 이를테면 작품 이외의 나머지 것들에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말일 것이다. 예술이냐 흥행이냐? 이 해묵은 논란의 한복판에서 갈등
하고있는나로서는요즘이말의의미를너무나도절실히공감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