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에 살아서 가장 좋은 것 중 하나가 바로 네 개의 계절 아닐까. 사실‘사계절이 있어서 좋은 나라’라는 문구는 초등생 시절부터 교과서에서 읽게 된다.‘ 꽃 피는 봄,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는 여름, 수확의계절 가을 그리고 눈이 내리는 겨울을 두루 느낄 수 있는 나라에서 사는
것은 행복’이라 배워왔지만 그것이정말 축복인지를 안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것은 바로 지난봄에 따둔 쑥때문 이었는데, 애쑥을 팬에 살짝 볶아서 물기를 말려 냉동실에 두었었다. 날이 추워지니까 봄 생각이 나길래 냉동의 쑥을 꺼내어 밥을 지어보았다. 좁은 주방 가득 퍼지는 쑥 냄
새 밥 냄새! 하루 종일 움츠리고 다녔던 온 몸이 쑥밥 온기에 절로 녹아버렸다. 이렇게 얼렸던 쑥 냄새만 맡아도 따뜻한 봄이 떠오를 수 있다는것 자체가 복이다. 사계가 있어서 득을 보는 분야 가운데 영화나 소설과같은 예술 분야를 빼놓을 수 없겠다.
세월이 흐르는 것을 나뭇가지에 싹이 돋고, 소나기가 오고, 낙엽이 지는 장면으로만 표현할 수 있다. 한국영화‘봄날은 간다’를 예로 보자. 여기서‘봄날’은‘가장 화창한 때’, 즉
사랑에 빠져 마냥 행복한 나날들을의미하지만, 남녀 주인공의 모습 뒤로 더운 여름, 입김이 퍼지는 겨울이차례로 보여지면서‘봄날’은 따뜻하고 예쁘지만 여름과 가을, 겨울 뒤에또 오고 가는 것처럼 늘 내 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일 년내내 한 계절만 있는 나라에서는 만
들수없는설정이다.
사계절이 있어서 좋은 점은 나 같은 자칭‘미식가’들에게 선물 같은 먹을거리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두릅을 데쳐 먹고 빨간 딸기를 실컷먹다보면 어느새 저 남쪽 지방에는‘하모’라불리는갯장어가잡히기 시작한다. 여름이 온 것이다. 여름은 무더운 날씨로 입맛을 잃었다는 좋은 핑계가 있어서 별식을 즐기기에맞춤인 계절이다. 냉면이나 콩국수처럼 차고 맛있는 별식들이 줄줄이
계절의맛 수자타 이어진다. 기온이 높을수록 냉한 것 먹지 마라 하는 의사의 말은 따르기 어렵다. 빙수, 냉커피 등 여름이면반가운 맛들이 끝없으니까. 가을이오면 입은 더 즐거워진다. 우선 햅쌀이 나오니 밥부터 맛이 달라지고, 밥이 맛있어지니 덩달아 입맛이 난다.
햅쌀로 지은 밥은 영양가도 더 높지만, 우선 때깔이 다르다. 뽀얀 밥에 자르르 윤기가 흐르면서 탱탱한 밥알에 숨겨진 촉촉함이 눈으로 보인다. 햅쌀밥을 씹으면 쫄깃하면서도목이 메지 않고 꿀떡 잘 넘어간다.
은은한 솔 냄새랑 흙냄새가 섞인 송이버섯도 빼놓을 수가 없다. 살살 썰어서 참기름 살짝 떨군 팬에 구워내거나 쌀이랑 해서 작은 솥에 밥을 하면 가을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가을에 나오는 프랑스 와인‘보졸레 누보’도 빼놓을 수 없다.‘ 보졸레’라는이름을 가진 작은 동네에서 매년 셋째 목요일, 전 세계로 향기를 뿜어내는 햇 와인도 서양인에게는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먹을거리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웬만한 편의점에는‘보졸레 누보’라는 햇 와인을 팔기
시작했으니 가을을 즐기는 방법이 하나 더 는 셈이다. 겨울로 넘어가면 굴이나 꼬막이 많이 잡히고, 귤이 나오고, 홍시가 맛있다. 빨간 연시를 차게 해서 먹으면 고급 레스토랑의 디저트가 부럽지 않다. 가장 맛이 올랐을 때 냉동에 얼려버리면 해가 바뀐 봄 어느 날, 지난 겨울을 추억하
며 꺼내 먹을 수 있다. 귤은 귤 청을내거나 귤에 막술을 부어 만든 약주를 만들 수도 있다. 귤주는 비타민씨가 풍부해서 피로 회복을 돕고 입맛을 살려주니, 겨울에 담가서 입맛을 잃기 쉬운 여름에 한 잔씩 약으로복용하면 좋겠다. 귤껍질을 까서 말리면 차를 끓여 먹기에 좋은 재료가
되는데, 은은한 귤 냄새가 따뜻한 찻물에 우러나와 우아한 티타임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싱싱한 굴로 만든굴젓이나 보쌈김치는 또 어떻고. 따뜻한 밥에 굴젓이나 보쌈김치만 있으면 그대로 보약 밥상이 된다. 정말봄, 여름, 가을, 겨울에 걸쳐 기다려가며 즐길 수 있는 먹을거리는 끝이
없다.
먹을거리를 즐긴다는 것은 즉, 자연을 즐긴다는 것이다. 햇살이 맑아지는 봄에 지난 겨울 말려둔 귤피차를 마시고,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에지난 봄 얼려둔 쑥으로 밥을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만 오롯이 다 챙겨 먹으면 병날 일 없고, 탈날 일 없
다. 이런 것이 축복이다. 일 년 내내한파가 불거나 일 년 내내 가물거나일 년 내내 찜통처럼 덥거나 하는 나라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복이다. 정치도 경제도 늘 내 마음 같지는 않아도 멋진 사계절이 돌아가며 우리를즐겁게해준다는것이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