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아침. 완전히날이밝지도않은 산중에 목탁소리가 울려 퍼진다. 김장 운력을 위해 대중스님들을 모으는목탁소리, 올겨울해인사의시작을알리는신호다. 누가 동안거 아니랄까봐서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전국적으로추운 겨울나기를 위한 준비활동이한창인데, 겨울나기를 준비함에 있
어가장중요한것이바로김장김치담그기다. 그것은 산중의 사찰에서도크게다르지않다. 특히해인사는
전국의 여러 사찰 중에서 가장 많은스님들이 모여 정진하기 때문에 겨울철먹을거리의가장큰비중을차지하는 김치는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해인사에서는 동안거 결제일이 늦어지면서 추위 때문에 김장이 힘들어질까봐 모든 행사를 뒤로하고 결제하자마자 김장을 하기로 결정이됐다.
김장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원주스님과 소임자스님들 그리고 사중의 처사님들은 여러 가지 준비를하느라분주하다. 그럴만한것이해인사의 김장은 꼬박 삼일 동안 계속된다. 첫날은그동안정성스럽게일군 밭에서 배추를 뽑아서 해인사까지나르고, 배추를반으로쪼개서물에 씻어서 소금에 절이고, 다음날은절여진 배추를 씻는 데만으로 하루를 다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 날은
마을에 살고 계시는 보살님들이 오셔서 양념을 만들고 배추에 버무려서김치를완성한다. 그것을땅에묻으면 김장이 끝나는 것이다. 배추를뽑고 절이고 씻는 것은 스님들의 몫이고, 양념을 만들어서 최종적으로김치를 완성하는 것은 보살님들의몫이다. 이렇게 해인사의 김장은 절에서 정진하시는 대중스님들뿐만아니라 절 밑의 마을 주민들까지 참여하는행사라고할수있다.
목탁소리를 들은 스님들은 평소의먹물옷대신에일하기편안한옷과 추위를 대비한 모자와 장갑 등을
갖추고 김장이 이루어지는 장소인축대 밑의 주차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스님들이 모이자 누가 시키지않아도 각자가 알아서 소방호수를이용해서 물에 소금을 풀기도 하고,고무장갑과 앞치마에 칼을 들고 배추를기다리기도한다. 한무리의스님들은 배추가 심어져 있는 밭으로가는 차에 몸을 싣고 있다. 운력 중간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불을 피우고, 따뜻한 차와 음식들을 준비하
기도 한다. 누구의 명령에 의해서가아니라 절에서 살아온 경험에 따라,또는소임에따라자신이할수있는일을알아서하는것이사찰대중운력의 특징이다. 김장을 시작하자마자 소방호수를 이용한 스님들의 독특한 김장을 신기해 하며 구경하는사람들과 방송국이나 신문사에서나오셔서 스님들의 모습을 촬영하고 취재하는 분들로 해인사의 김장은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7,000포기라는 적지 않은 양이었지만 경험 많은 어른스님들부터 후원에 행자님들까지 사찰 대중스님들이 모두 땀을 흘려서 일해서인지 날이 지기 전에 끝낼 수 있었다. 쪼개진 배추를 세 부분으로 나눠 소금물에씻어서차곡차곡쌓고, 소금을더뿌려서 비닐로 덮고는 첫날 김장을마무리했다. 첫날부터 시작이 좋지않더니 둘째날은 비가 오기 시작했다. 많은 양의 비가 아니었고, 지금
와서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 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기 시작했다. 하지만 쪼개져서 반쪽짜리배추라지만14,000개나되는소금에절여진 배추를 물에 씻는다는 것은비가 오지 않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가슴까지 오는 장화 옷을 입고,허리까지 오는 물에 들어가서 배추를 두 번에 거쳐서 씻는다. 차가운물로 인해 체온이 떨어지면 나와서차담과함께몸을녹이고, 다시배추
를 씻기 위해 물에 들어간다. 물 밖에서는 씻어놓은 배추를 물이 잘 빠질 수 있게 쌓아놓는다. 이 일은 이날 가야산을 적신 겨울비와 함께 하루 종일 계속됐다. 날이 어두워지기시작하자 야외에 전등을 연결해 밝히고, 배추가 비에 젖을까봐 비닐로덮어가면서, 겨우일을마칠수있었
다. 날은 춥고, 비까지 오는 바람에힘들었는데도 일이 끝날 때까지 다들 웃는 얼굴로 서로를 배려해주면서 즐겁게 일을 했다. 다 씻어서 쌓아놓은 배추가 밤사이 비에 맞지 않도록 비닐을 덮고서야 물에 젖은 장화와옷을벗을수있었다. 스님들의역할은 여기까지였다. 내일 양념을만들고, 배추와 버무려 김치를 만드는 것은 여러 보살님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다음날도 날씨는 좋지 않았고 비를 피하려고 천막을 치고서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파나 마늘같은 것이 들어가지 않은 사찰만의양념을 만들어서 절여진 배추에 버무리고, 그옆에서는미리파놓은땅에 김치를 묻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렇게올겨울해인사의김장은 끝이 났고, 이러한 힘든 과정을거친 김치는 동안거 결제기간뿐만이 아니라, 내년까지도 대중스님들의귀중한양식이되어줄것이다.지금은 시대가 변해 먹을 것이 풍족해서 김장의 의미가 과거만 못하다. 산중에 있는 사찰들의 생활환경도 많이 좋아져서 스님들 참여 없이도김장을하는곳이많이늘고있다
고한다. 나도처음에는공부만해도시간이 모자라는 스님들이 굳이 많은 시간을 김장 운력에 할애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이번 운력을포함해 출가해 몇 번의 김장을 경험하며, 어른 스님들께서 대중 운력의중요성을 강조하신 이유를 다시 한번생각해볼수있었다. 김장을하면서 그동안 같이 해인사에 살면서도대화할 기회가 없었던 사중의 소임자 스님이나 어른스님들과 편안하게얘기도하고, 동경하던선원의수좌스님들과 운력 중간에 차담을 나누며 여러 경험담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자주오는것이아니다. 과거조사스님들은 운력은 대중과 어울리며 자신만의 고정된 시각으로 편견과 아집에 둘러싸인 자신의 눈과귀를 대중에게 열어 자기 자신에게매몰되려는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또다른 수행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보면 운력을 쉽게 생각할 수 없는데,아쉽게도 운력은 많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고, 한국의 사찰을 대표하는 해인사에서도 총림대중 전체가
움직이는운력은몇번있지않다.요즘은 밖의 사회뿐만 아니라 절집에서도 모든 일이 점점 편리하고
간편하게 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상대적으로 몸을 사용해서 하는 일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지금 밭을일구고 배추를 심어서 겨울 김장을하는 것이, 옛날처럼 자급자족을 통해 승가공동체를 이루는 중요한 수단이되고있는것은아니다. 하지만어른스님들이 흐트러지는 스스로를경책하고, 대중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하심을배우는데운력만한것은없다고말씀하신것에서알수있듯이 사찰만의 고유한 김장 운력을통해서 전통도 지켜가며 그것으로수행도삼을수있다는것은분명좋은일이다. 올동안거동안에는공양때마다 올라오는 김치가 평범하게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