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어지면 산사에 간다. 그럴 때마다 산사는 세사에 찌든 마음을 정갈하게 씻겨 불심을 키우니 겨울 산사는 바로 불자의 고향이다.겨울이깊은산사에서법회라도있단말인가?
옛 글에 이르기를 무성無聲의 음악이 유성有聲의 음악보다 더 높은 경지일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 산사에 가면 수많은 조형들이 음악의 상징이 되어 무성으로 음악을 들려주니 이것이 법의 소리라. 한겨울에 산사에 가는뜻은 이 세계를 몸소 체험하고자 함에 있는 것이다.
하필 산사를 찾는 철을 한겨울로 잡는 것은 무엇인가?
나같이 마음이 여린 이는 겨울이 되면 마음이 움츠러든다. 겨울 산사는 법의 소리세계였네이럴 때 마음을 다스리고자 어느 철보다도 순결한 겨울산사로향하는것이다.
일주문에 당도하여 가슴 조아려 합장 배례한다. 법의 소리가들리기시작한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들어서면 비파소리에 마음이열린다. 나는 사천왕님께 합장하는 것도 잊고 한참을 귀를 기울인다. 이때 산사를 찾는 어린 청소년들의 소란이나를깨운다.
‘저렇게 건장한 키에 부리부리한 눈 부릅뜨고 창검을든 무서운 천왕이 걸맞지 않게 저렇게 가녀린 악기는 왜들었지?’
‘저런 힘센 팔에 악기가 금방 으스러지는 것 아녀?’
저마다떠든다.
더구나 어린아이를 안고 온 아빠가‘아이 무서워라’하고 천왕에게 가까이 대면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고 부모는우습다고껄껄대고야단이다.
자비로운 부처님을 모신 사찰의 문에 왜 하필 이런 험상궂은천왕을모셔, 보는이로하여금놀라게할까?
지국천왕, 광목천왕, 증장천왕, 다문천왕 이렇게 사천왕을 사찰의 문에 모시는 것은 부처님 계신 도량을 잡귀로부터 수호하기 위함이니 그 형상이 험하면 험할수록좋다.
다른 천왕님은 창검이나 탑을 들었건만 다문천왕만은왜 비파를 들었는가?
가야금 거문고 젓대 등의 다른 악기도 많건만 이를 다 제치고 왜 비파를 들었는가?
비파라는 악기가 서역 고대시대에 보편적인 악기라 수많은불화에 비파연주도가 보이는 것이고, 이것이 또 말 위에서도 연주할 수 있어 무사도 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다문천왕이비파를들고있는이유가조금은짐작이간다. 비파라는 악기는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통일신라시대에는 거문고, 가야금, 대금과 더불어 삼현삼죽三絃三竹에 속하여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쓰이는 악기였지만 조선 말기에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그 악기 기능이 거문고와 비슷하여 거문고에 자리를 내어준 것이라고보는학자들도있다.
천왕문을 지나면 종각에 이른다. 종각은 흔히 사람들관심 밖에 있지만 여기에 사물四物이라 하여 정겨운 네악기가 매달려 있다. 해질 무렵에 심산을 거닐다 먼 사찰에서 들리는 종소리에 감동하는 그 종이 바로 이 종각에 매달린 범종이다. 그리고 새벽에 사찰에서 자다가 산사의 숱한 이야기를 담아서 속삭이듯 빠른 가락으로 풀어내는 북소리도 이 종각에 매달린 법고이다. 여기에 목탁의 기능을 하는 크나큰 목어木魚, 경쇠의 역할을 하는넓다란 운판雲版이 매달려 있는데 이 사물 악기가 하나같이 두루 중생을 제도하는 소리를 지니고 있다 하니 이것또한예사소리가아니라법의소리라할것이다.대웅전 부처님 앞에 합장하고 세사에 뒤틀린 심신을참회하면 부처님은 어느 때나 미소로 안아주신다. 발원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올려다보면 부처님의 자비를 발현하듯 광배 주위에서는 수많은 비천상의 악기 연주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젓대, 피리, 공후, 생황, 요고, 나발,동고 등 많은 악기가 내는 소리에 환희에 젖는데 정토경전에 전하는 극락세계의 법열의 경지가 바로 이것이리라.
부처님께 합장배례가 끝나 신중단의 신중님께 인사올리고 영가단 앞에 서면 실로 화려한 감로탱화를 대하게 된다. 이 탱화는 음악을 전공하는 불자들을 마음 설레게하는불화이다.
감로탱화는 삼단으로 구성된다. 하단은 육도중생의끝없는 윤회적 삶으로, 사당패 굿패들에 의해 사바세계음악이 연주되고, 중단에는 광쇠, 태징의 반주로 나비무, 바라무, 광쇠무, 법고무 등의 화려한 의식이 전개된다. 상단은 어장스님의 범음으로 금방이라도 부처님의세계로인도될것만같다.겨울 산사를 둘러보며 산사가 정토세계 구현에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경전에는 극락세계에 수십 종의 악기가 있어 미풍에도 오묘한 소리가 온 천지를 진동시킨다했던가! 이런 겨울 산사가 내게 말한다. 이 오묘한 불교음악을중생들에게전하는데헌신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