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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각을 돌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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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정민 2007년 01월 299호
터널을 뚫어 빛이 쏟아지게 하란 말을 듣고는 돌이 천근만근 나를 짓눌렀다. 손때를 앉혀 정을 들여야 한다는 말 한마디에 홀연 그 중압감에서 벗어났다. 한 생각을 돌리니 같은 돌이 달리 보였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모든 것은 생각이 빚어내는 장난일 뿐이다. 본체는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그 위로 떠가는 생각들이 실상을 가려 본질을왜곡하고, 헛생각을짓게만든다.


연구실 컴퓨터 책상 위에 수석 하나가 놓여 있다. 몇 해 전 권달웅 선생께서 단양에서 손수탐석한 것을 내게 선물로 주셨다. 기괴한 형상의 산봉우리 한가운데 동굴처럼 깊숙한 구멍이 패인산형석이다. 이어른께서하시는말씀이큰산가운데구멍이하나패여있어, 학문의 캄캄한 터널을 뚫어 나가는 내게 언젠가 아름다운 빛이 쏟아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주노라하셨다.
이말씀을듣는데갑자기내마음에무거운돌덩이하나가묵직하게얹혀졌다. 연구실에가져다 놓으니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저 단단한 돌을 내가 무슨 재주로 뚫는단 말인가?
저 터널을 뚫어 아름다운 빛이 쏟아지게 하라니, 나는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해결할 수 없는화두를든것처럼 막막하고 갑갑했다.처음 책상 위에 놓였던 돌은 어느새 저만치 탁자 위로 밀려났다. 주신 분의 정성을 생각하면 내다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막상 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져오니 이 노릇을 어쩌나 싶었다. 마침내 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입구 쪽 책장 뒤 서류 박스 위로까지 밀려났다. 일단돌이시야에서 사라지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패인 동굴 입구에는 중국 여행 때 사가지고 온 조그만 구리로 만든 세 마리 원숭이상을 앉혀놓았다. 원숭이는 각각 눈을 가리고 입을 가리고 귀를 가리고 있다. 옥황상제에게 올라가내 죄를 고자질할 때 본 것도 들은 것도 말할 것도 없다고 하는 의미가 담긴, 조선 후기까지 우리나라에서도 성행했던 수경신守庚申신앙의 흔적을 담은 물건이다. 나는 짐짓 이 원숭이상을 동굴 어귀에 앉혀둠으로써, 다른 사람의 성의를 무시한 잘못이 가려지고 묻혀지기를 바랐다. 그렇게해서라도불편한내마음을슬쩍외면해버릴심산이었다. 하루는 그림을 그리는 후배가 연구실에 들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배웅을 하려고 나서는데 입구에 놓인 돌을 보더니 금세 눈이 동그래진다.

“ 아니, 어디서 이렇게 기막힌 돌을 구하셨어요? 참 잘 생겼네요.”

그러더니 연신 손으로 돌을 쓰다듬는다. 하는 수 없어 돌을 얻게 된 사연이며 이 자리까지 밀려난 까닭을 들려주었다. 후배가 내게 말했다.

“ 돌도 마음이 통해야지요. 자꾸이렇게만져줘서손때를앉혀줘야정이들어마음이오가게됩니다.”

한 생각을 돌리니터널을 뚫어 빛이 쏟아지게 하란 말을 듣고는 돌이 천근만근 나를 짓눌렀다. 손때를앉혀 정을 들여야 한다는 말 한마디에 홀연 그 중압감에서 벗어났다. 한 생각을 돌리니 같은 돌이 달리 보였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모든 것은 생각이 빚어내는 장난일 뿐이다. 본체는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그 위로 떠가는 생각들이 실상을 가려 본질을왜곡하고, 헛생각을짓게만든다. 그 말 한마디에 돌만 보면 답답했던 마음이 그만 스르르 녹았다. 나는 간사하게도 후배가
가자마자 얼른 그 돌을 가져다가 컴퓨터 모니터 바로 옆에다 놓았다. 원숭이상도 꺼내 서랍속에 넣어두었다. 그래도 동굴이 있는 쪽은 보이지 않게 해놓고, 글을 쓰다 생각이 막히면 나도 몰래 손을 돌 위에 얹고 쓰다듬곤 했다. 하도 만져서 오른쪽 산등성이에 손때가 매끄럽게 올랐다. 어루만질때마다내손가락끝이무의식중에돌에패인터널속을더듬었다. 자꾸 만지고 있으니 전에 보이지 않던 돌의 형상도 눈에 들어오고, 갈라지고 패인 틈과 구멍 사이로 비껴간 그 긴시간들도 보이기시작했다.
터널을 뚫어 빛이 쏟아지게 하란 말을 듣고는 돌이 천근만근 나를 짓눌렀다. 손때를 앉혀 정을 들여야 한다는 말 한마디에 홀연 그 중압감에서 벗어났다. 한 생각을 돌리니 같은 돌이달리 보였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모든 것은 생각이 빚어내는 장난일 뿐이다. 본체는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그 위로 떠가는 생각들이 실상을 가려 본질을 왜곡하고, 헛생각을 짓게만든다.
권 선생님은 어렵게 탐석해서 귀하게 갈무리했던 돌을 내게 선뜻 건네주셨다. 돌처럼 듬직하게제자리를지켜학문에힘쏟고, 끝없는연찬으로없던길을뚫어새길을활짝열라는축원을 함께 담아주셨다. 그런데도 내게는 도저히 뚫지 못할 돌덩이를 뚫으라시니, 결국 쏟아지는 빛을 대면할 수 없겠구나 하는 불길한 느낌으로 들렸다. 그래서 자꾸 외면만 했다. 그러다 문득 손때를 앉혀줘야 돌도 정이 든다는 한마디에 그간 정 한 번 건넨 적 없던 그 돌한테몹시 미안해졌다. 그래서 자꾸 쓰다듬어 만졌다. 그러는 사이에 세월이 어루만진 부드러운능선과구석구석의패인틈새, 상처처럼뻥뚫린구멍에내손길이가닿고, 느낌이오갔다.마침내다시동굴이보이는쪽으로돌을돌려놓았다. 새삼스레어루만지며보니, 편편한왼쪽 경사면 가운데 툭 튀어나온 돌출부에 가려 움푹 패인 동굴의 초입은 막상 잘 보이지 않는다. 웅숭깊은속내를지닌속깊은사람이되라는말씀같다. 언젠가강한충격을받아잘려나갔을 돌의 단면은 세월의 마모 속에 묵직하고 둔중한 곡선을 그려 보인다. 날카롭게 베인 상처의 기억들을 보듬어 넉넉한 품을 기르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밑둥에 켜켜이 차고 올라오는물결무늬의단층들은학문의세계에서언제나호기심을놓지말고정진하라는충고만같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구멍이 깊이 패인 이 산형석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글을 쓰다가 생각이 막히면 무심코 돌을 한번 쓰다듬는다.

다르게 볼 수는 없을까?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정말그것뿐일까?

소음 속에 둥둥 떠내려간 하루를 뒤로 하고 깊은 밤 연구실에 앉아 돌을 어루만진다. 손끝으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더 묵직해져야지. 날카롭게 세운 모서리를 죽이고 세월의 손때를 앉혀야지. 타성에 젖은 생각, 으레 그러려니 하는 마음을 거둬야지. 그러면서 낮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제자에게 퍼부었던 매몰찬 언행을 반성한다. 까닭없이 데면데면하게 구는 어떤 사람의 일로 더는 마음 상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절구통 수좌처럼 엉덩이 무겁게듬직하니사려앉아더열심히노력해야지결심한다.
돌덩이하나를앞에놓고도온갖생각이왔다갔다한다. 천국도짓고지옥도짓는다. 본체는여여하나생각이끊임없다. 묵은해가가고또한해가열린다.

새해에는 어떤 생각을 닦아 마음밭에 아름다운 빛 이 쏟아지게할것인가?
미망迷妄을 내던져 깨달음을 열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