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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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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여화 - 김진숙 2006년 12월 298호
한동안 여름 같은 따뜻한 날씨 덕분에 반팔로 지내다가 어제부터 제법 겨울 맛이 나는 쌀쌀한 날이 되었다.계절이 바뀌면 그 계절에 맞게 추워야지 한낮의 햇볕은여러모로 사람들을 지치게 하였다. 그 사이 여기는 추수감사절로 한 차례 폭풍 같은 연휴가 지나갔다. 우리같이친척이 없는 사람들도 여기저기 초대에 다니면서 칠면조 요리와 감자, 그리고 옥수수 빵 같은 특별한 음식들을 먹었다. 내일이면 긴 연휴가 끝나고 다시 시작이다.이번 시작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있는 시간들이 될것 같다. 여기저기 성급한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장식을해서온집안을밝히고있다.
어느덧캘리포니아에산지몇년이흘렀다. 계절감각을 잊은 지는 오래 되어 추운 겨울이 상상이 되질 않는다. 늘 푸른 야자수 나무는 우리의 일상사가 되었고 일년 내내 보는 이름 모를 꽃들은 당연한 풍경이 되었다.문득문득 달력을 보면서 지금쯤이면 하고 한국의 계절들을 상상해 보지만 이내 따뜻한 이곳에 익숙해져 버린다. 이런 일상을 깰 수 있는 반가운 소식이LA에도 생겼다. 바로 한국영화 전용극장이 생긴 것이다. 상영작으로‘가을로’라는 영화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신문으로 읽었다. 영화을 좋아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보러 가기로하였으나기다리지못하고먼저보고말았다.몇 해 전 일본 교토에 있을 때 같은 남자 배우 주연의‘봄날은 간다’라는 영화를 소극장에서 본 적이 있었다.영화속 남자의 직업이 음향기술자로 한국의 여기저기를다니면서 소리를 녹음하는 직업이었다. 아마도 단양의한 대나무 숲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봄날에 푸른 대나무가 바람에 스싹스싹 흔들리는 소리에 미치도록 한국이 그리웠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논문 때문에 지쳐있던 나에게 그 소리가 얼마나 강렬하였던지 지금도 그느낌이잊혀지지않는다.
낮 시간의 영화관은 텅 비어 있었지만 시설도 깨끗하고 음향시설 등도 기대 이상이었다. 영화관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일은 몇 년 만이다. 이 작은 일이 나에게는 감동적으로 느껴지니 나도 참 빡빡하게 살고 있는 듯하다. 이야기의 스토리도 주연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역시 나에게는 바람소리가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들리는 바람소리, 전나무 숲에서 들리
는 바람소리, 계곡에서 들리는 시냇물소리등 한국의 아름다운 명소을 찾아다니면서 찍은 가을의 풍경은 감격그 자체였다. 산사에서 들리는 풍경소리며 새빨간 단풍이며 아마도 영화의 주인공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장소들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져 더욱 귀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가슴이 먹먹하고 그리고 속이 다 후련하였다.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보아야 한다는
작은 행복과 추수감사절 아무데도 가지 못한 무료함이단숨에사라져버렸다.
연휴의 끝자락에 최근 다시 오픈한 그리피스 천문대를 찾았다. 이 천문대는 1935년에 오픈한 유서 깊은 천문대로 그리피스라는 사람이 당시 LA시에 3500에이커정도의 개인 공원을 기부하면서 함께 기부한 천문대였다. 4년 동안의 확장과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지난 10월에 재개관하였다. 오랜 시간 동안 천문대는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이용되었고 특히 학교 교육의 장으로 활용
되어 기부자의 뜻하는 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4년 동안의 긴 시간 동안 재단장을 거친 이곳은 방문자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찾아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아예 차는 천문대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몇군데에서 셔틀 버스를 이용해서 가게 되어 있었다. 방문자의 안전과 쾌적한 관람을 위해서라고 한다. 방문자가적어지면 예약제도가 없어지겠지만 당분간은 이런 시스템을 유지할 것이라 하니 그리피스 천문대의 인기가 어느정도인지짐작할만하다.
미국은 어디를 가나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관공서를 가든 은행을 가든 마찬가지이다. 일하는 사람들도 느긋하고 이런 것을 지켜보며 기다리는 사람도 아무런 불평이 없다. 이러면서도 미국이 움직여 가는 것이 신기하다고 한국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어리숙해보여도 그들은 전임자가 해놓은 것을 부정하지않고 인정하면서 그 위에 다시 자신의 생각을 쌓아간다.느려보이기만 한 것들이 세월이 지나가고 시너지 효과를가지면서힘으로작용한다.
또 하나 이들의 자연에 대한 노력은 대단하다. 천문대재공사를 하면서도 4년 넘게 작업을 한다.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조용히 진행한다. 개인의 집을 고치는 일조차 시에서 허가를 받지 않으면 불법이다. 집을 짓고 건물을짓는 일은 너무도 까다롭다. 하수도 공사가 끝나면 시에서 사람이 나와 검사를 받아야 하고 전기 공사가 끝나면
또 허가를 받아야 한다. 몇 백년을 내다보고 건물을 짓는다. 그래서 100년 전에 세운 집들이 그대로이고 도로가 여전히 넓다. 어느 관광지를 가보아도 100년전에있었던 카페 하나 그대로이다. 수백만이 다녀가도 그 흔한포장마차도 없다. 심지어 해변에서 담배도 못 피게 법률로 정해져 있다. 땅이 넓어 여기저기에 집이며 건물을지을 수 있어 보이지만 자연 보존을 위해서 그리고 후손
들을위해서집을짓지않고보존한다고한다.
아는 분이 20년 만에 한국을 가셨는데 전국이 아파트만이 즐비하여 우리의 아름다운 산자락을 다 가려 너무속상해서 여행 일정도 마치지 않고 미국으로 들어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 영화로만 끝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우리가 한국에갔을 때 다시 한번 그 길을 여행할 수 있게 아름다운 경치로 그대로 남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