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이 되면 돌아보게 된다. 한 해 동안 일어난 일들, 그런 일들 가운데 엮여 있는 사람들이 모두 생각난다.그러다보면 은혜를 입고도 인사 한번 변변히 못했던 얼굴들이 여럿임을 깨닫게 된다. 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폐를 끼치거나 도움을 받고도본의아니게그냥지내버린일들….
나는 2006년을 뒤돌아볼 때, 내가진행했던 요리 프로들의 스태프들이가장 생각난다. 무거운 카메라를 이고 지고 몇 시간을 고생하시는 카메라 감독님들과 연출자와 출연자 사이의 온갖 궂은일을 다 떠맡는 조연출들, 작가들. 매번, ‘고마운 사람들이다’생각만 할 뿐, 막상 일이 끝나
면 각자의 스케줄들이 바쁘겠거니하며 나는 총총히 사라지곤 했다. 또누가 있나. 내가 올 한 해도 무사히연재를 마친 모 일간지의 대大기자한 분과 월간‘해인’의 종현 스님이생각난다. 마감에 늘 쫓기듯 간당간당 도착하는 나의 원고에 싫은 소리한 번 안하셨던 두 분이다. 올 가을출간된 나의 책을 위해 열심히 뛰어주신 출판사 분들도 고맙다. 모두 자신들의 이름 석 자보다‘박재은’석자를 갈고 닦아주려 애쓰신 분들이다. 요즘 세상에 참 힘든‘남 빛내주기’하시니 내게는 모두 선인들이다.‘고맙다’는 말 자체가 무색하게 늘 고마운 엄마와 아빠, 진심으로 나를 응원해 주는 남동생 내외는 물론, 당신 아들보다 나를 먼저 챙기시는 나의 시어머니와 착한 시누이에게 올한 해 받은 사랑을 어찌 다 말할까.게다가 내 친구들. 모난 성격 탓에친구가 많지도 않은 내게 너덧 명의친구들은 재산이다. 아무 때나 전화해도 다 받아주고, 밥 먹자고 하면열일을 제치고 나를 찾아주고, 내게일이 많으면 묵묵히 내가 정리되기를 기다려 준다. 영악한 세상에, 영악하지 못한 순정만 주는 사람들. 다고맙다. 순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빼놓을 수 없는 나의 남편! 하루 종일지지고 볶은 내게 기름 냄새가 나건,금방 씻고 나와서 비누 냄새가 나건맛있는선물
관계 없이 내 정수리에 코를 비비며숨을 쉬는 사람. 천千일이 넘도록 여전한사람.
대략 따져보기만 해도 2006년에내게 덕을 베푼 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과연 다 갚을 수 있을까? 돈도 없으면서 신용카드를 마구 긁어댄 것같은 빚진 마음이다, 지금. 연말에이런 심정을 느끼는 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가만히 앉아 따져보면, 한 해를 허덕이며 지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의 도움을 타고 순간을 넘겼는지 모두들 떠오를 꺼다.상대방은 안 해줬어도 그만이었을일들, 그러나 내게는 꼭 필요했던 일들 말이다. 연말인데, 일일이 선물이라도 돌려? 생각이 들 꺼다. 그러나요즘 같은 불황에 일 년 분량의 신세를 다 돌볼 돈이 누가 있을까. 고마
운 마음은 둘째요, 일단 경제적 압박이마음에앞선다.
민트 차, 오미자 청고민하던 중 엊그제 엄마 친구를뵈었다. 서울 근교에 사시는 분인데,텃밭에 키운 허브를 말려 손수 차를만들어 오셨다. 여린 민트 잎을 하나하나 따서 말린‘민트 차’였다. 깨끗이 소독이 된 유리병에 그 귀한 민트잎을 꽉꽉 눌러 담으시고는 코르크마개로 꾹 눌러 오셨다.‘ 가을 선물’이라고 하셨는데, 그 뚜껑을 열자마자 온 부엌에‘화’한 민트 냄새가 스
륵 퍼졌다. 두고 마시면 해 바뀔 때까지도 즐길 수 있겠다 생각이 드니이처럼 좋은 선물이 또 없는 거였다.맞다! 먹을 수 있는 것을 한껏 만들어서 고마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면되겠다! 좋은아이디어가떠올랐다.임신으로 입맛을 잃은 창은 언니와 혼자 사는 순영이에게는 오징어젓을 무쳐주고, 곧잘 피로해지시는아빠께는 지난번에 담근 매실 청을따라드려야겠다. 시누이와 선정이에
게는 늦여름의 포도로 만들었던 잼을, 자격증 시험으로 피곤한 연수에게는 오미자 청을 주어야지. 이러다보니 냉장고와 찬장에 쌓아두고 나혼자만 먹으려 했던 귀한 음식들이골고루 나눠지게 되었다. 대형 할인매장에 가서 깨끗한 용기나 구입해서 나눠둔 먹을거리를 담고, 자투리천이나 리본으로 꽁꽁 감싸면서 포장에 전념하면 될 일이다. 동생 내외에게는 김이나 넉넉히 재워줘야지.유난히 들기름에 재운 김을 좋아하는 남동생이 그 김 얹은 밥을 얼마나잘 먹을까 생각하니 더 이상 좋은 선물이 없겠구나 싶다. 요리고수 엄마에게는 따끈하게 데우기만 하면 되도록 수프를 만들어드리고, 토마토를 오랜 시간 조려서 만든 홈 메이드케첩을 한 병 곁들여 드려야지 생각
한다.먹을거리 선물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후끈해진다. 으슬으슬 추운 겨울 밤, 내 마음을 단번에 따뜻하게만들 수 있는 방법을 또 하나 찾은날이다. 남들 선물을 챙겨주고 있었는데, 정작 선물은 내가 받은 기분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