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난 창으로는 따뜻한 햇살 한 자락, 소박한 베옷에 만족하며 시나 읊조리며 살면 그뿐이라는
오늘은앞마당에가득흩어진달빛이금빛보다더밝다. 올해는계절이늦어동지절을앞두고서도채지난
계절의 흔적을 내려놓지 못한 나무들이 불안하게 겨울을 시작한다. 이제는 본연本然으로 돌아올 시간임에
틀림없고, 그 어디 군더더기 걸치지 않은 말끔한 모습으로 추운 겨울에 맞서야 할 터인데, 아직도 푸른빛을
띤그잎이겨울의장도長途에는도움이될리없다.
봄날담장아래모란의성색盛色이아름다운들한겨울송백松柏의곧고푸름만할것인가.
봄날의 찬란함은 오래 가지 않으며, 일찍 빼어난것은 늦게 이루는 것만 못하다. 가는 한 해를 앞에 두고는
그 해 봄 아득했던 향기와 화려한 그 색을 돌아보게 되지만, 계절을 막론하고 늘 푸른 송백의 일상으로 눈과
마음을한결같이돌려봄직하다.
대주혜해大珠慧海스님이처음스님(마조도일馬祖道一; 706~786)을참례하자스님께서물으셨다.
“어디서오느냐?”
“월주越州대운사大雲寺에서오는길입니다.”
“여기에와서무엇을구하려하느냐.”
“불법을구하려합니다.”
“자기의 보배창고는 살피지 않고서 집을 버리고, 사방으로 치달려 무엇하느냐. 여기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무슨불법을구하겠느냐?”
대주스님은드디어절하고물었다.
“무엇이저의보배창고입니까?”
“바로 지금 나에게 묻는 그것이 그대의 보배창고이다. 그것은 일체를 다 갖추었으므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작용이자유자재하니어찌밖에서구할필요가있겠느냐?”
대주 스님은 말끝에 본래 마음은 마음의 깨달음(知覺)을 말미암지 않음을 스스로 알고 뛸 듯이 기뻐하며
절을하였다.
6년을 섬긴 뒤에 돌아가《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1권을 지었는데, 스님께서 보더니 대중에게 이렇
게말씀하셨다.
“월주에큰구슬(大珠)이있는데뚜렷하고밝은광채가자재하게사무쳐막히는곳이없다.”
벽에 난 창으로는 따뜻한 햇살 한 자락, 소박한 베옷에 만족하며 시나 읊조리며 살면 그뿐이라는
그의 말로 그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마음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자가
말한 해의반박의 그 화가의 입은 옷이 비단이 아닐 것임은 분명하다. 이것을 굳이 들춰내지 않더
라도 그림이란 것이 자유 자재한 마음과 일치되었을 때, 붓과 종이로 지향하는 바가 아닌 진정한
마음으로바라보는곳이표현되는것이다.
여기에서무엇을구하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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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송나라 원군元君이 지도地圖를 그리려 하자 화공들이 모두 모였다. 그들은 명령을 받자 절하고 일어
나 곧 붓을 핥고 먹을 가는데 사람이 하도 많아서 방에 들어가지 못한 자가 반이나 되었다. 한 화공이 늦게
도착하였으나 태연하게 서둘지 않고 명령을 받자 절하고 나서 그대로 자기 숙소로 돌아가버렸다. 원군이 사
람을 시켜 알아보게 했더니 그는 옷을 벗고 두 다리를 뻗은 채 벌거숭이(解衣槃)로 쉬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원군은“됐다. 이사람이야말로참된화공이다”하였다.
《장자》‘전자방田子方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흔히 그림을 그리는 참된 경지를 일컬을 때의 해의반박解
衣槃이라는 용어는 바로 이와 같은 일화에서 시작한 것이다. 이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외형에 사로잡히
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그림은 그야말로 외형에 사로잡히기 십상인 물건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그림을 통해
그정신을전한다는전신사조傳神寫照를화격의기본으로삼아중요시했던것이다.
단원 김홍도의 <포의풍류布衣風流>는 편안하게 옷을 펴고 앉아 음악과 더불어 스스로 즐기는 자신의 모습
을 그려내었다. 화가로서의 단원의 명성이야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지만 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천연덕스
러운즐거움은바로스스로를즐길줄아는그림속의김홍도의일상이바탕이된것이아니었나생각된다.
화면의 중앙에는 의관을 편안히 한 단원이 가슴에 비파를 안고 그 소리에 심취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장단
을 맞추다 만 칼이며, 불다 놓은 생황이 놓여 있지만 그 풍류에 술 한 잔이 빠졌을 리 만무하다. 일찍이 표암
강세황은단원은음악에도달통하여거문고와피리가 절묘했고, 풍류가 호탕하여 칼을 치면서 슬픈 노래를 부르는 생각을 가지고 비장하게 눈물을 흘렸다고도 전하고 있다. 그림 안에그려진 칼은 필시 그가 장단을 맞추다 만 칼임에틀림없다.
그의 오른편 그리다 던져놓은 붓과 벼루는시가詩歌의 감동이 깊어지면 지금이라도 곧종이 위를 날아다닐 듯하다. 필시 그림 속의단원이 바라는 것은 화성畵聖의 경지는 아니리라.
흙벽에는아름다운창. 綺窓土壁
늙어서까지베옷을즐기며 終身布衣
그안에서시나읊조리지. 嘯其中
벽에난창으로는따뜻한햇살한자락, 소박한베옷에만족하며시나읊조리며살면그뿐이라는그의말로
그저어디에도구속되지않고자유로운마음을그리워하고있음을알수있다. 장자가말한해의반박의그화
가의입은옷이비단이아닐것임은분명하다. 이것을굳이들춰내지않더라도그림이란것이자유자재한마
음과일치되었을때, 붓과종이로지향하는바가아닌진정한마음으로바라보는곳이표현되는것이다.
그곳이어디따로정해져있을것인가.
유리병속의 새의 몸이그곳을 나온다한들 한껏 더자유로울 수있겠는가. 몸과 마음을 두는곳이 바로그곳이다. 이러한점에서선사의가르침이가끔화가의붓끝에도묻어나올수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