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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14대 중앙종회의원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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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주경 2006년 12월 298호
초선으로 당선된 주경 스님 출가하여 계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덕사에서 지낼 때, 은사스님의 발자국소리는 언제나 새벽의 도량목탁소리보다 훨씬 큰 소리로 들려왔었다. 때때로 행여 나태함에 빠져 있을까 시봉들의 처소 근처를 지나시는 당신의 발소리였다. 아직 온전한 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젊은출가인을 향한 당신의 우려와 자상한 마음이자 경책이었던 까닭이다.언제나 저 멀리에서 자박자박 걸어
오시는 작은 발소리가 정말 우레처럼 귓전을 흔들곤 했다. 그 소리에정신을 바짝 차려서 자세를 바로 하고 있으면 어느새 당신은 발길을 돌리고계셨다.
어떤 때는 과연 당신이 정말 우리처소로 오시던 중이었나 의심이 가기도 했지만 사실은 오래 지나지 않아 확인이 되었다. 어느 날 심한 울력으로 몹시 지쳐 정말 새벽예불에 나갈수없을만큼피로와수면이심신을 옭매고 있었다. 그래서 스님의 발소리조차 듣지 못했을 때, 당신은 시봉의 방문 앞에 잠시 멈추어 나직한 음성으로“주경아~”하고 이름을 한 번 부르셨다. 그 순간 묵직한
피로와 아득한 정신은 벼락을 맞은듯 사라져버리고 벌떡 일어나 깨어있는황망한나를발견할수있었다. 과연 당신은 시봉들이 깨어 있으면 멀리서 발길을 돌리고, 혹 산만하거나 깨어 있지 않으면 가까이 다가와 발소리로 경책을 하셨고, 마지막에는 이름을불러깨쳐주셨던것이다.
다양한 이유와 사연으로 출가를 하지만, 계를 받아 오래도록 대중에 남게 되는 것은 강물들이 바다에서 모이는것과같다. 출가의정신과삶 에 동화되지 못하면 끝까지 남을 수 없는것이다. 잠시또는얼마간흉내는낼수있을지모르나결국에는자기가갈길을가게되는것이다.
출가하여 오래지 않은 스님들이모여 한담을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다들 얼른 시간이 지나 구족계를 받아 선방에도 가고 국내외로 만행도 원하는 대로 하며 자기 뜻대로 자유롭게살기를바란다. 다떨치고집을나왔다는 출가인도 얼마만큼 시간이 지나고 이력이 쌓여야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때문이다.
어렵사리 강원을 마치고 한 1년은사스님을 시봉하며 도심포교당에서 봉사를 했다. 그리고 1년여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 불교국가들을 돌면서원없이만행을했다. 남방불교에 대해 새로운 이해도 생기고 스스로 수행의 인연도 지었다. 무엇보다 태국에서의 몇 달 동안의 그쪽 사찰 경험과 탁발은 중노릇의 참맛을 알게 해주었다. 귀국해서 숭산 큰스님을모시고선방에서철도났고, 미국에 나가서 국제포교의 인연도 지어보았다. 정말 내 뜻대로 살 수 있는신나고힘나는시간이었다.
세상사도 그렇고 출가사도 시간이 지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어렵고 힘든 시간은 길기만 하고 조금 여유가 있다싶으면 쏜살같이 지나가버린다. 불과 2~3년 정말 내 뜻대로 자유로운 시간을 그렇게 지낸것같다.
초선으로 당선된 주경 스님96년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수덕사 교무소임을 보게 되었다. 출가해
서 10년이 지나면 당연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라서 얼른 매 맞는 기분으로소임을맡았다. 그런데이렇게시작된 소임의 인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포교원으로 총무원으로 이어지더니, 이제 종회의원으로 그 굴레를 더욱단단히하고있는것이다.
어떤 일이건 별로 걱정하거나 피하려고하지않는성격탓에일이닥치면 닥치는 대로 감당해왔고, 내가조금 귀찮고 노력해서 일이 된다면 선뜻나서곤했던것이아주이길에 발을 깊이 적셔버린 것이다. 이제는 아무리 원치 않아도 행정승이니 사판이니 하는 소리를 피할 길이 없어 진것이다.
2000년 초부터 포교원 포교국장의 소임을 맡아 6년 가까이 종단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정치적인 사람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사심없이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잘처리해가고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면서지내왔을뿐이다. 자리나 기회가 있었어도 흔히 말하는 부자 절 주지가 되려는 생각도일으키지 않았고, 어울리지 않는 고급 승용차를 탐하지도 않았다. 총무원 주변에서제일옷을못입는스님이라는말, 또는직원들로부터차좀바꾸라는 소리를 들어도 하나도 걸림이없이지내왔다. 자리를맡아일을 하는 사람은 그 하는 일이 그 자리와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지 옷이나 차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그렇게넘기고지내왔었다.
작은 절 주지를 맡아 6년이 지나도록늘주말에만절에와있는주지스님한테 큰 불만 없이 따라주고 믿어주는 신도들에게 항상 미안함이많았다. 그래서 지난해 법장 큰스님의 영결식을 마치고 총무원소임을사직하고 서산에 내려왔다. 기도도직접 하고 도량의 이곳 저곳 마음에두었던 불사와 정리도 했다. 신도들을 모아 기초교리강좌와 경전강의등 오랫동안 마음에 두었던 일들을해왔다. 교도소법회도 나가고 초파일행사도합심해서잘치렀다. 그동안 서울을 오가느라 지역과 본사에할 수 없었던 빚진 일들을 조금이나마할수가있었다.2003년부터 운영해오던 템플스테이도 좀더 전문화시켜왔다. 전담자도 두고 프로그램과 시설 등 여건을개선하려고 노력했다. 우리 절같이특별한 문화재도 없고 관광객도 별로안오는외딴지역에서사찰을살려나가는최고의대안이라고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이 절에 왔을 때공양주노보살한명과스님두명이살던 도량이 이제는 평소 열다섯 대중이 살고, 주말이면 템플스테이 참가자로 활기가 넘치는 훈훈한 도량으로 변했다. 이렇게 산사에 살면서최소한밥값은한다고생각한다.
은사스님께서는 내가 소임을 맡고 나서부터 늘‘공심公心’을 말씀하시곤 한다. 중노릇 하는데 자기한 몸만 챙겨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불조에 떳떳하고 시주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며, 공평무사해야 소임자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당신의 삶이 수행자로서 존경받고 신뢰받으며, 소임을 보실 때에도 정말 공심으로 사셨음을 자주 듣곤 한다. 때로 소임을 핑계로 수행에 나태해질 수도 있고, 혹여 작은사심이라도 들게 되면 자신도 망치고 소임도 성글게 되니 늘 걱정을
하시는것이다.이제는 은사스님의 발자국 소리나 음성이 벼락소리처럼 들리지는않는다. 늘긴장하고깨어있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라지고 조금 여유가 생긴 까닭이리라. 이제는 은사스님께 의지하기보다 스스로 책임지고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늘스님앞에서는초심때의그자세가본래내모습으로여겨진다.꼭 종회의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언제고 때가오리라 여기고 지내왔었다. 사실 목소리와 권한 그리고 요구만 있는 듯한 종회의원보다는 일을 할 수 있는
실무소임이 더 낫다고 생각해왔다.하지만 며칠을 종회의원으로 지내보니할수있는일이생각보다많다고 생각된다. 크고 많은 일을 할 욕심은 없다. 다만 5%만 더 생각하고5%만 더 노력하려고 한다. 그래서결과가 5%의 변화만 나타나도 만족할수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