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의 법당 문짝의 하단부나, 수미단 정면이나 처마 밑, 기둥에는 무서운 귀신이 있다. 몸뚱이가 없이 얼
굴만 있다. 코는 주먹만 하고, 콧구멍도 크다. 눈썹은 굵고 푸르다. 검고 부리부리한 퉁방울 눈 속에는 눈
동자가 수백 개나 된다. 그 눈이 무서운 눈초리를 부라린다. 머리에 두 개의 뿔이 있고, 날카로운 송곳니
를드러내고있으니무섭다.‘ 키르티무카’또는‘칼라’라는귀신이다.
탱화의 협시보살이나 권속들은 얼굴이 다양하지만 불상만은 반드시 정면이다. 그 이유는 정면이 부처
님의 권위를 가장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면이 유일하게 정면이다. 정면이 가장 무섭기 때문이
다. 그래서귀신이라고하지않고귀면이라고부른다.
옛날 임금의 행차, 사신 영접, 장례식 등 행사 때는 눈이 넷 달린 방상씨方相氏를 그린 깃발을 앞세웠다.
방상씨는 귀면인데 귀신을 빠짐없이 색출하여 행사장소를 지킨다고 옛사람들은 믿었다. 방상씨도 칼라
의 다른 이름이다. 법당에 장식된 귀면도 이와 같은 믿음의 반영이다. 사악한 자를 물리치고 잡귀를 쫓아
내고 참배자를 보호하기 때문에 법당을 지키게 한 것이다. 월드컵에서 우리의 붉은 악마들이 입는 옷에
있는귀신도원조는칼라다.
귀면은 혼자도 있지만 둘, 셋, 수백 수천도 있다. 대부분 그림이지만, 조각상도 있다. 대웅전 처마 밑.
둥근 통나무 마구리 부분에는 귀면을 새겼다. 눈동자는 시선의 방향이 다양하다. 처마 밑의 귀면은 높은
위치에 있으므로 경계영역을 넓히기 위해서 법당 마당의 사귀를 향하여 눈동자를 내리깔고 있다. 그 눈
초리가실감이난다.
인도 고대 사찰에도 귀면이 있다. 이 귀면은 힌두교 시바신의 분신이었다. 불교에서 이를 호법신으
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잔타 석굴사원의 첫 번째 굴 정면 기둥머리의 칼라는 두 사람의 다리를 함께 입
에 물고 있는데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찰귀면들은 물고기나 연 잎사귀, 연꽃 봉
귀면
오리, 또는 활짝 핀 청색, 빨간색, 흰색 연꽃을 입에 물고 있다.
귀면이 몸은 없고 얼굴만 있는 것은 인도신화에서 왔기 때문이다. 거인 왕‘쟐란다라’는 자꾸 세상을
파괴하는 시바 신에게 몹시 화가 났다. 그래서 신부로 예정된 아름다운 처녀를 줄 수 없다는 최후의 통첩
을보냈다. 시바는분노를이기지못해끔찍스러운형상을한악마로분신또는변신을하였다. 악마는시
바에게 대가를 요구하였다. 시바는 괴물에게“너의손과발을먹으라”라고 하였다. 굶주림에 지친 괴물은
정신없이먹고또먹었다. 손과발뿐만아니라팔과다리엉덩이가슴도먹었다. 그러고도멈출줄을몰랐
다. 급기야 그의 이빨은 자신의 배와 가슴과 목까지 먹었다. 결국은 얼굴만 남았다. 입이 닿지를 않아 얼
굴은먹을수가없었기때문이다.
잡귀를 제거하는 것이 귀면이라면 귀신이 무서워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사찰의 귀면은 귀신이 놀라 달
아날 만큼 무섭지가 않다. 무섭기보다는 오히려 관대하고 온화하다. 이것은 한국인의 모나지 않은 심성
을나타낸것이다.
사람들중에는작은욕심을부리다가일생을망치는경우가종종있다. 귀면은목까지먹었지마는사람
은자신의온몸을다삼켜버린것이다. 귀면을보면서많은가르침을받는다.
사람들은 화를 잘 낸다. 화를 낼 만한 타당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냄
이지, 남의 입장을 헤아리는 너그러운 마음씨는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남의 사연과 이유는 전혀 모르
고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서로에게 지옥의 고통만 줄 뿐이다. 급한
성질머리는 고운 얼굴을 찌그러진 귀신으로 만든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는 여유가 없다. 남북이 56년이
나 총부리를 겨누고 있고 노사, 남녀, 지역, 단체 간, 개인 간에 첨예한 갈등의 골이 끝을 모를 정도로 깊
게패이고있다.
어떤 갈등도 없는 아름다운 사회는 이 세상에 없다. 있을 수가 없다. 여기는 중생들이 사는 사바세계이
기 때문이다. 불과 물처럼 서로 용납하지 못하고 증오심으로 치닫고 있을 뿐이다. 부처님 앞에 촛불을 밝
혀도 정작 마음에는 지혜의 등불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업으로 인하여 중생은 한쪽으로 치우치므로 그
생각이 전적으로 옳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다양한 마음이 중생사회에선 당연한 현상이다. 그 다양한 마
음이 화합은 고사하고 오히려 걷잡을 수 없는 적대감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회는 이미 병이 들어도 깊이
들었다. 고황에까지 들었다.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 만연된 사회는 더욱더 독기를 품고 서로를 아프게 할
것이다. 그고질병의업보가무섭지않을수가없다. 나만이옳고이기려고만하는생각을버리지않는한
사랑과 평화는 더 멀어질 뿐이다. 우리 자신이 칼라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버리지않는다면언젠가는그희망이이루어질것이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