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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터치 문화와 단순 반복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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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황대권 2006년 12월 298호
컴퓨터 앞에 앉아 몇 시간이고 자판을 두드리는 일은 눈앞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장
면이 나타나므로 지루한 줄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영성의 깊이가 깊어지거나 우리가
대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원기元氣가 새로워지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땅에 근거
한 단순노동에서는 우리가 깨어 있기만 하면 시간의 길이에 관계없이 언제라도 새로
운차원으로나아갈수있다.


현대도시생활의특징을한마디로규정하라고하면나는원터치문화를꼽고싶다. 단추하
나만 누르면 생활의 모든 것이 자동으로 해결되는 원터치 문화 말이다. 빨래, 요리, 청소, 쇼
핑 등 무엇이든 단추 하나만 누르면 그만이다. 이런 문화 속에 살다 보니 대부분의 도시인들
은 일의 결과만 알 뿐이지 그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깡통이나 다름이 없다. 하긴
현대 도시의 삶이란 것이 워낙 복잡한 과정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라 일일이 그것들을
알려고 해봐야 알 수도 없다. 오히려 쓸데없이 이것저것 알려고 하는 사이에 자기 분야에서
뒤처졌다가는 밥벌이를 놓칠 수도 있다. 이렇듯 일과 일 사이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
에 누군가가 나쁜 마음을 먹고 먹탕질을 해도 단순 소비자에 지나지 않는‘나’는 속수무책으
로 당할 수밖에 없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식문화이다. 도시인들의 삶이 워낙 바쁘다 보니 날
이 갈수록 완제품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예전엔 완제품으로 만들어봐야 잘 팔릴 것 같지
않은 품목들도 버젓이 비닐포장을 뒤집어쓰고 슈퍼마켓의 진열대 위에 누워 있다. 예컨대 비
빔밥이나해물탕, 불고기, 곰탕같은것이그렇다. 이쯤되면식재료에농약이묻었느니안묻
었느니 하는 논란은 아예 철 지난 얘기가 돼버린다. 출처가 불분명한 모든 재료들이 마구 뒤
섞여 새로운 물건이 하나 만들어졌으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소비자가 할 일이라
곤 상품을 사서 전자레인지에 넣고 가열하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과정을 잃어버린 현대인들
이모든것을일일이제손으로해야하는시골생활을두려워하는것은당연하다.
요 며칠 가을걷이한 것들을 갈무리하느라 오랜 시간을 쪼그리고 앉아 꼼지락거리면서 현
대인의 심성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사회운동 한답시고 사방으로 나돌아 다니는
통에 제대로 된 농사도 할 수 없는 처지이지만 조그만 텃밭에서 나는 작물들을 제 때에 갈무
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오늘은 마무리지어야 할 원고를 몇 개나 내버려두고 벌써 몇
주째 마루 한구석에 놓여 있는 수수 알갱이와 콩을 손질했다. 타작마당에 널어놓고 도리깨질
을 할 만한 양이 아니라서 일일이 손으로 알갱이를 털고 훑다보니 한 바가지도 안 되는 양을
다듬는 데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만약 내다 파는 것이라면 결코 이런 짓은 하지 않았
원터치 문화와 단순 반복노동
컴퓨터 앞에 앉아 몇 시간이고 자판을 두드리는 일은 눈앞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장
면이 나타나므로 지루한 줄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영성의 깊이가 깊어지거나 우리가
대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원기元氣가 새로워지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땅에 근거
한 단순노동에서는 우리가 깨어 있기만 하면 시간의 길이에 관계없이 언제라도 새로
운차원으로나아갈수있다.
으리라. 내가 짓는 농사라는 것이 온전히 내 먹을 것만을 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시간이 걸려
도 일일이 정성 들여 손으로 하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반복노동이 어리석게
여겨지기도 했으나 낱알 하나하나의 생명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리고 또 그
것이 내 몸을 거쳐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까지를 생각하자 단순하기 짝이 없는 손놀림
이 하나의 의식처럼 여겨졌다. 어떠한 노동이든 의미를 상실하면 그것이 복잡하건 단순하건
간에 지겨워지는 법이다. 단순 반복노동이 지겹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고정관념이다. 생
각해보면 모든 위대한 깨달음들은 모두 이러한 단순한 행위를 끝없이 반복함으로써 얻어진
것이 아닌가. 원터치 문화에 길들여져 있는 현대인들이 깨달음을 얻기 힘든 이유는 이런 단
순노동을 무가치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슈퍼에 가면 단돈 몇 천원에 살 수 있는 상품을 몇 시
간씩 쪼그리고 앉아 다듬는다는 것은 도무지 계산에 안 맞는 짓이다. 게다가 그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봄부터 가을까지 부지런을 떠는 일까지 생각한다면. 비용과 효율을 따져 이익이
된다고 판단이 서야 행동에 옮기는 것이 합리적인 현대인의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똑
똑한 현대인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많은 계산과 주저 끝에 돈을 내고 선원이나 수련원에
등록을하지만그것이일상으로이어지는경우는매우드문것같다.
원터치 문화의 발원지인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목가적인 전원생활을 하거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시골로 내려갔다. 그들은 시골에서 살게
되면 삶의 총체성이 회복되리라 믿었고 또 사실이 그러했다. 그러나 총체성의 회복이란 것
이 생각처럼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한 끼 밥상을 차리기 위해 힘들고 지루한 노동을 끊임없이
해야 했다. 게다가 농사만으로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이나 문화의 수준을 유지하기가 어
렵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많은 귀농자들이 10년
을 못 버티고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 이들이 다시 도시로 돌아간 데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지
만 그 중에 간과할 수 없는 측면이 바로 단순 반복노동에 대한 몰이해였다. 그들은 시골에
오기 전까지 이미 도시에서 잔뼈가 굵어질 대로 굵어진 사람들이었다. 다만 지식인 특유의
이상주의와 낭만에 빠져 시골에 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일을 효율과 자기만족의 차원에서 바
라보았다.
“토마토 케첩 한 단지를 만들기 위해 오후 한나절을 모조리 소비하고 나서 시큰거리는 허
리를부여잡고이건아니라고생각했죠.”
다시 도시로 돌아간 한 여성의 증언이다. 밭에서 한 소쿠리 분량의 시금치를 뽑아 몇 시간
에 걸쳐 손으로 다듬는 일보다 같은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 수천만원대의 증권거래를 하는
일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한 시골 생활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일의 종류가 다를 뿐이지
결코 가치가 더 있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몇 시간이고 자판을 두드리는 일은 눈앞
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장면이 나타나므로 지루한 줄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영성의 깊이가 깊
어지거나 우리가 대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원기元氣가 새로워지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땅에 근거한 단순노동에서는 우리가 깨어 있기만 하면 시간의 길이에 관계없이 언제라도 새
로운차원으로나아갈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