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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주지 허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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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06년 11월 297호
허운 스님 “산하나의무게로돌아앉은나/ 강하나의깊이로앓아누운그녀”
팔공산은 가을바람에게 몸 실어 마른 이파리들을 소슬히 털어내고 있었다. 문득 낙엽 하나가 허운 스님의
손등위에석가모니의빈몸처럼얹혔다. 스님이책상위의시집을집어들려던그때.
시 읽기를 즐긴다. 은사 스님도 시인이었고 도반들도 시인이 많다. 그렇다면, 직접 쓴 시가 있으면 하나 읊
어 주십사 하니, 전문을 들춰내시곤‘너무말이많지?’하신다. 두 행이 전부이되 우주법계를 품은 이 시의 제
목은선禪이다.
돌아앉은 나, 밤새 흔들리는 촛불 아래 가벼우나 결코 가볍지 않은 그림자를 세우고 앉아 있는 구도자의 모
습이다. 깨달음도결국은앙상한몇개의뼈마디와같은것일터. 그러나운명에도전해오는유혹들을뿌리치
고 돌아앉은 무게는 태산보다 크고 무겁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렇게 돌아앉았을 때 수없이 많은 인연들은 앓
아누우리라. 세속을 떠나 제 손으로 산문을 연 구도자의 마음이 더도 덜도 없이 그려진 시다. 허운 스님이 그
렇게돌아앉으며산문을연것은중학생시절어느여름날교복을입은채였다.
“그시절의허기는단순히못먹는데서오는것보다어떤그리움같은거였어요.”
침목으로 만들어진 학교 교실 마루 군데군데엔 옹이가 있었다. 옹이 빠진 틈으로 부러진 몽당연필, 귀 닳은
지우개, 여학생들 부러진 머리핀 같은 게 보였다.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가 온 몸으로 거미줄을 걷어내며 매일
그것들을주웠다. 그러지않으면허기가졌다. 텅빈운동장끝에줄선미루나무울타리너머로한없이달려가
고 싶었다. 울타리 밖엔 어떤 세상이 있을까 꿈꾸며 어디론가 떠나고만 싶었다. 어느 날, 야간열차를 탔다. 대
구역에 도착해 역사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모자 가방 신발 비상금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쓰레기통
을 뒤져서 맞지 않는 신발을 주워 신고 동대구역에서부터 파계사까지 걷고 또 걸었다. 마침내 법당에 들어서
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 일어서려는데 몸 어딘가에서 동전이 떼구르르 굴러 떨어졌다. 아무리 뒤져도 없던 돈,
버스도 타고 요기도 할 수 있었을 돈이었다. 아, 내가 저 돈에 속았구나 싶어 그 동전들을 주워 도량에 확 뿌리
는 순간, 한 스님이 지나가다가 멈춰 섰다. 왜 돈을 함부로 던지느냐, 이리 와봐라 하셨다. 그분이 은사 스님이
됐다.
“어느 해, 은사 스님과 떨어져 있을 땐데 전보를 치셨더라고. 급히 오라고 해서 갔더니 그해 햇차가 맛이 참
좋아서차한잔하고가라고부르셨다고하더라고요. 그런정서들이다부처님마음아닌가싶어요.”
어릴 때부터 일기를 쓰게 했던 은사 스님, 겨울이면 화롯불에 상좌와 마주 앉아 밤을 구워먹던 스님, 그 은
사 스님의 다정한 성품이 허운 스님을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 은사 스님이 바로 석성우 스님
이다.
올해 6월, 허운 스님은 조계종 제9교구의 본사인 동화사의 주지로 선출돼 진산식을 했다. 깊은 감성을 지닌
것만이아니라젊고개혁적인스님으로알려진만큼스님의뜻한바는체계적이고넓고단단하다.
“중생을떠나부처가없고이웃을외면한깨달음은없어요.”
산문을 열되 체계적으로 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미래의 삶의 척도는 누가 더 고도로 발달된 문화를 가지
고 있느냐일 것이기에, 산문 개방 요구들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체계 없는 수련회
나 음악회가 아닌 체계적 개방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110개의 말사들 중 사찰의 규모, 주변 환경, 접
근성 좋은 사찰들을 지정해 특별화 할 생각이다. 가령, 비구니 사찰에선 사찰음식을 체험하도록 하고, 주변에
농토를가진사찰에선농촌체험을할수있게하는, 그렇게특색있는운영을해야불교에대해충족하지않겠
나한다.
스님은 닫힘의 문화, 침묵의 문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 이 시대는 열림의 구조이고 너무 가속화되어 있
기 때문에 자기 삶의 전모, 자기의 골격을 볼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닫힘의
문화가필요한데, 그럴수록사찰이해야할일들이많다.
“침묵은 사랑스러운 말을 고르기 위한 긴장, 성실함을 찾기 위한 더듬거림 같은 거죠. 사찰은 그 침묵 안에
서자기존재를볼수있는각도를갖고있어요. 그러니그것을꾸준히제공하기위해정성스럽게준비를해야
지요.”
또 하나는, 우리 시대의 설화를 만드는 일. 진정한 불사는 그 절을 창건했을 때의 설화를 훼손하지 않고 거
기에설화를더보태는일이라여긴다. 그렇게산중교구본사가가져야할법통을다시확립하고자한다.
“우리는 설화 없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그만큼 상상력이 메말랐다는 거죠. 사찰에서 그 시대의 설화를 만드
는작업을해야한다고봐요. 위대한사람은설화가있잖아요. 그말은설화는위대한사람을만든다는거예요.”
그래서 스님은 대웅전 추녀 끝에도 기왓장 하나마다에도 서려 있는 설화를 풀어내고 있다. 그렇게 제2의창
건을하고있는것이다.
스님은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스님이 계시던 은적사에서나 지금 동화사에서나 절대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찰은 처음 일주문에서부터 사천왕문, 불이문을 지나 맨 끝에 대웅전까지 공간
을 구조화시켜 수없이 열고 닫고 한다. 마지막 가장 큰 공간에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의 세계를 둔다. 스님은
그 공간이야말로 무한한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고 한다, 비어 있기에. 그렇기에 사람들이 절에 들어 편안함을
느끼는 것.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면 지나친 소유는 지양해야 할 터. 지금 우리 시대의 행복은 소유가 아닌 소
유로부터자유로워지는것이리라.
“세상에 부처의 몸 아닌 것이 없어요. 나뭇가지 하나 꺾는 것도 부처의 몸에 상처를 내는 거고, 쓰레기를 버
리는것도영원히썩지않는이물질을부처의몸에넣는거예요.”
“내가 출가했을 때, 큰 무쇠솥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물을 끓여서 서른 명이 넘는 대중이 목욕을 했어요.
아침예불이끝나고나면무쇠솥위에큰널빤지를놓고제일어른스님부터들어갔지. 몸만불리고나와서때
를 밀고 물 떠서 쓰고 그랬어. 그러곤 그 물을 버릴 땐 꼭 식혀서 버렸어요. 미물들이 죽을 수 있으니까. 그런
알뜰한 정서가 과연 어디서 오는가 했을 때, 나는 살아 있는 구도 정신에서 온다고 봐요. 풍요로움 속에서 깨
어있기는어렵지만빈곤하고이끼낀곳에서수행의마음은빛나는것이지요.”
스님은 종교 간의 벽을 허물기도 했다. 대구 참사가 일어나고 대구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장승을 세울 때,
정홍규 신부를 만났다. 그 계기로 서로 왕래를 하게 되어 부처님오신날이나 부활절에 성당의 신자들과 사찰
의 신도들이 서로 방문해 축하하는 자리도 가졌다. 연등이 성당에 달리기도 했고 신부님과 함께 절을 하기도
했다. 서로를존중하고본래함께라는인식, 이것이야말로구도자, 종교인들이가져야할기본덕목이아닐까.
스님께여쭙는다. 마음이힘들땐어떻게해야합니까?
“삶의 문제는 살아 있다는 것이 문제죠. 살아 있지 않은데 어떻게 문제가 있겠어요? 생로병사가 한 꾸러미
인데태어나는건좋고늙고병드는건싫을수있나.”
다만 행복은 만들어가는 것이니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란다. 오늘 행복한 사람이 내일 행복해질 확
률이높지, 오늘불행한사람이내일행복해질확률이높겠느냐는말씀이다.
“이세계가보이는산하대지가있고보이지않는허공이있듯이, 행복도보이는행복이있고보이지않는행
복이있어요. 보이지않는마음의세계를닦아서지혜로워져야지요.”
귀의불양족존, 부처님은 지혜와 복덕 두 가지를 구족하셨다. 지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 복덕은 보이
는세계다. 복덕을쌓고지혜를닦는것, 그것이불교가지향하는이상적인행복의세계다.
“부처님 집처럼 아름다운 집은 없을 거야. 단청을 하고 채색을 하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안에 항상 영
원한미소가있기에아름다운거지요.”
그영원한미소를찾아야하는데그걸외면하고단청만보고있으니우리의행복은영원하지못하고절름발
이식행복밖에안되는것이다.
스님도불행할때가있고마음에번뇌나미움이들어앉을때도있지않으십니까, 여쭌다.
“수행자는제일마지막에웃고제일마지막에울고제일마지막에화내야할사람이라고생각해요.”
동화사의 주지 소임이 만만치 않을 듯한데, 일이 많아 스님 공부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 싶은데, 스님은 단호
하게 손사래를 치신다. 종무에 임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종무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어떤 미련도 후회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가져오는 병폐가 매우 심각한 실정. 참선을 하던 스님이 주지가 되어 시시때때로
참선하러가야된다는생각을한다면, 지금바로큰방에앉아야할것이다. 종무에임하는사람은종무에철저
함으로써성취감을느끼면, 그것이뜻한바이리라.
“누구나마음속에절간을가지고있지않겠어요. 부처님생애를통한교훈이여러가지가있지만, 두가지만
은 잊지 말아야 해요. 첫째, 처음 발심한 마음을 끝까지 잊지 않고 둘째, 그 어떤 조건 앞에서도 그 마음을 바
꾸지않는것.”
부처님은 본생만을 보면 500생 몸을 바꿔서 부처가 되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처님은 왕실
에 안주할 수도 있었으나 처음 뜻한 바가 아니기에 출가를 했다. 그렇게 마음을 바꿔 갖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스님의 마지막 말씀이었다. 후학들에게 넌지시 던져놓는 말씀이기도 할 테지만 세속에서 살아가는 우
리가무슨일을하든잊지말아야할덕목이기도할것이다.
스님이시집을펼쳐들곤, 이시좀들어봐요하신다.
“… 이따금 꿈속에선 / 지금도 머룻잎 이슬을 털며 산길을 내려오는 / 여승을 만나곤 한다. / 나는 아직도 이
세상모든사물앞에서내가슴이그때처럼/ 순수하고깨끗한사랑으로넘쳐흐르기를기도하며/ 시를쓴다.”
송수권 시인의‘여승’이라는 시를 나직나직 읽어주시는 스님, 도량을 가로지르다가 문득 고양이 곁에 앉아
함께햇볕바라기를하시는스님, 그러다가나직이하신말씀.
“한그루나무가되어산으로가고싶다. 그러나저렇게큰나무들은거대한뿌리때문에움직일수가없지.”
나무와 나의 고통의 무게는 같다는 말씀, 나무와 나의 행복의 무게도 같다는 말씀이었을까. 단풍 들기도 전
에나뭇잎떨구는가뭄속나무들이나를위안하듯나도나무를위로한다. 나무야, 오늘행복하면내일도행복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