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줍어하는 듯한 밝기의 별빛을 눈에서 거두어내어 퇴설당 문을 닫고 강의를 들으러 행자실로 향하는길이었다. 낙엽들이 바람에 흩날려어지러이 움직이는데 내 시선은 낙엽 사이로 고정되었다. 나뭇가지에서 고정을 여의고 낙하하여 움직여지고 있는데, 생명을 다한 저 물체는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의문이들었다. 행자들의 빗질에 쓸려 모여진 낙엽들은 미생물에 의해 자연 부패되어 낙엽의 형체를 잃고 땅으로 침잠하여 다른 생명의 유지와 잉태에 좋은 양분이 될 것이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좋은 양분인 저 물체도 그러할진대 모든 만물이야 다를 바 있을는가.
나는 대학에서 정치외교와 서양철학을 전공했다. 모든 생명과 존재자는 물질에 기인한 바, 물질을 연구하는 제 과학들 천체물리, 양자물리, 생물학 등 물질계의 대부분에관심을 갖고 공부하였다. 고로 나는서양학문의 적자였으며 개인주의와합리주의, 실용주의에 익숙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편협은 지양해서,동양의 고전과 경서를 읽어가다 마침내불법에이르게되었다.불법은 서양철학이 고민했던 제분야들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등에 있어 나에게 명쾌한 길을 제시해주었고 나는 그 길을 의심하여 확인하고자 해인사로 입산했다. 위로는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여 돕는 이 지행합일의 근본정신이 나를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로부터이별을고하게만든것이다.그러나 나는 개인주의와는 이별했을지 몰라도 궁극의 합리주의는 되살리려한다. 서양 철학자 칼 포퍼는 진정한 합리주의자를‘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는 것보다 다른 이에게서 배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사람이다. 그리하여 상대를 설득하기보다는 대화하는 내내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사람’이라 규정했다. 따라서 변화와 변질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낮
추어 매 찰나 매 생각마다 자신을시험대에 올려놓고 모든 방향에서 반성하는 것이 합리주의의 진정한 면모라할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참된 삶은 매 순간 어떤 이유와 감정에 의거해서 어떤방법과 절차를 거쳐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선택할 그 무엇과 동일시하지않고 집착하지 않는 경계 내에서 그대상을 인정하고 걱정해주고 사랑해주어베풀어주는것일수있겠다.태양보다 훨씬 큰 별은 죽음을 맞이할 때 큰 폭발과 함께 사라진다.하나였고 전체였던 개체가 먼지들이 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개개의 먼지들은 다시 생을 시작하고 어느 인연, 어느 시절을 기약할순 없지만 또 다른 하나이고 전체인개체에 다시 종속되는 날이 찾아올것이다. 이러한 자연현상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한 뒤, 이 같은 단편적이고 개체적인 사유와 지
식은 변화와 변질을 거쳐 지혜의 좋은 양분이 될 것이다. 새로움과 오래 됨, 다름과 같음, 태어남과 죽음,있음과 없음 등의 이변은 결국은 다른 듯 같으며 없는 듯 있는 것임을하루빨리 진실하게 알아 증득해야겠다.지금 나는 또 한번의 관문에 서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부처님 세상에 태어나기 어려우며 부처님 법 만나기 어려운 확률의 관문을 모두 뚫어낸 우리로서는 정말이지감사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여, 때없이 찾아올 생사일대사의 가장 수승한 시험을 통과할 수 있도록 매호흡마다 빈틈없이 정진하고 또 정진해야할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퇴설당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까보다 밝아진 별빛이 나를, 아니우리를 인도하는 듯 손짓을 베풀어
주고있다. 풍경소리 자욱한 검은 도화지에 홀로 그리고 다 같이 제 갈 길을 총총히 걸어가는 밝은 별들이 내 마음을샅샅이시험하는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