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쓸어낸다고깨끗해지겠느냐?”
오늘은 앞마당에 가득 흩어진 달빛이 금빛보다더 밝다. 바람이 어느새 대숲을 훑자 긴 대는 외로 눕고, 달빛을바닥에깔고대그림자가흩어진다. 흩어진대그림자를물끄러미바라보다가산만하기짝이없어손에 빗자루를들고마당으로나선다. 달빛을쓸어담고, 대그림자를가지런히하겠다고부지런히움직였으나 허공을 쓸어 담는 일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빗질하던 손을 멈추고 허리를 펴니 대나무는 이내 정좌하고 그 사이에 들었던바람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것이어디로갔는가. 이제는 고요하던 적막을 처마 끝 풍경이 기어이 깨고 만다. 지나가는 바람이 처마 밑에 덩그마니 있는 풍경을 툭- 치고 지나가자 맑은 쇳소리가 딸랑- 한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그뿐, 그 흔적을 어디서찾겠는가. 오늘도막막하다.
바람이성긴대밭을지나지만대숲은그소리를남기지아니하고, 風來疏竹風過而不留聲
기러기가찬연못을지나지만연못은그림자를남기지않는다. 雁度寒潭雁去而潭不留影
방에 돌아와 생각해 두었던 채근담菜根談을 펼쳐 그 문장을 다시 나지막이 읊어본다. 군자는 일이 닥쳐야 비로소 그것이 마음에 나타나고, 그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은 곧 비워지니 다음날이 되어 대숲에 바람의 흔적과연못에기러기그림자를찾으려한들그일이참으로하릴없다는이야기이다. 바람과달빛은흔적이없 지만옛선현의말씀은이처럼남아있어어리석은내눈과귀에다시한번타이른다.
조주스님이야기이다.
스님께서언젠가는한스님이마당을쓸고있는것을보고물었다.
“그렇게쓸어낸다고깨끗해지겠느냐?”
“쓸면쓸수록많아집니다.”
“어찌먼지를털어버린자가없겠느냐?”
“먼지를털어버린자가누구입니까?”
스님께서다시물으셨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운거스님에게가서물어봐라.”
이후그스님이운거스님께가서이일을물었다.
“누가먼지를털어버린자입니까?”
“이눈먼놈아!”하였다.
목계牧溪스님의 법명은 법상法常이며 남송南宋대 활동하던 스님이다. 스님으로서 이름도 높았던 것으로 전해지며 일찍이 서호西湖육통사六通寺의 주지를 지냈다. 하지만 지금은 그림으로 그 종지宗旨가 전해지고 있으니선인들의뜻을드러내는방법은여러가지로다양하다.
일본 다이도쿠지大德寺에 소장되어 전해 내려오는 관음보살도觀音菩薩圖는 남송시대 유행하던 기존의 불화형식과는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체의 채색을 배제하고 먹으로만 그 형상을 그려내었다. 고요한어느산을배경으로정좌한백의관음의모습은바다위보타락가산에서중생들의온갖발원을듣고계신모습과는다르다. 화려한보좌위중생의아우성속에보살이아닌보살본연의모습으로돌아와있다.목계 스님은 수행자의 도리는 역시 보리를 구하고 도를 이루는 일이 우선이라고 하는 가르침을 그림으로써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림을 보고 있는 사이 밖으로 흩어진 마음을 그림으로 돌리고 다시 시선을 안으로들인다. 보살도를 크게 한 일도 없거니와 하찮은 나의 행이
그저 상相을 내서 한 일은 아니었는가 오늘 다시 살필 일이다. 세 번을 살펴보아도 허물이 없어야 한다고 하였으나 오늘스스로한번흘깃보기만하여도허물이태산이다.
“그렇게쓸어낸다고깨끗해지겠느냐?”
하루의수고가참으로무색해지는질문이다.
쓸어내면 쓸어낼수록 쌓이는 것이 더 많다. 오늘은 얼마나또헛된손을놀렸는가.
일찍이 노자서에는 학문은 하면 할수록 나날이 할 일이늘고, 도를 체득하면 할수록 할 일이 줄어든다고 하였다. 이내 나 같은 범부에게 머리 속에 수많은 갈래와 책상에 펼쳐진 끝없는 할 일을 두고는 학문의 장단을 논할 바도 아닌데도는일러무엇할것인가. 이제껏 욕심을 덜지도 아니하며 꽃을 가꾼다, 뒤뜰에 대나무를 심는다 부산하였고, 세상 일을 품고 끼고 앉아 향을사르고 차만 달였으니 오유烏有선생은 간 데 없고 백의白衣동자는 저 만치에서 도망간다. 쥐구멍은 나중일이고 오늘은 반드시 백의관음을 앞에 모시고 내 진면목을 돌아볼일이다.
그런데조주스님께서다시물으신다.
“그렇게쓸어낸다고깨끗해지겠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