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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날들, 끝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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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김하돈 2006년 11월 297호
그러므로 혹여 내가 절에 가서 불상에 삼배를 올린다면 그건‘임종 못한 애제자 가섭에게 내보인 부처님 발’에 대한 경배의 표시일 것이다. 한 생애의 80년 만행을 이끌었던 그 발바닥 말이다. 오고감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부처는 굳이 그 발바닥으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한 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걸었다. 아침저녁으로 길에서 일어나고 또한 길에서 잠이 들며 찰나의 머무름도 없이 흘러가는‘나’를 그는 스스로존중했다.


나는길을믿는다.
저 아득한 옛날부터 이 땅에 길을 내고 또한 길을 지워온 조상들의 내력에 대하여 경배한다. 길이야말로가장올곧은내삶의도량임을, 또한내가천년만년이몸과마음고즈넉이실어 흘러오고 흘러갈 온전한 거처임을 믿는다. 아침저녁으로 그곳에서 일어나고 또한 그곳에 서잠이드는, 길은곧나의종교이다. 그러므로 혹여 내가 절에 가서 불상에 삼배를 올린다면 그건‘임종 못한 애제자 가섭에게 내보인 부처님 발’에 대한 경배의 표시일 것이다. 한 생애의 80년 만행을 이끌었던 그 발바닥 말이다. 오고감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부처는 굳이 그 발바닥으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한 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걸었다. 아침저녁으로 길에서 일어나고 또한 길에서 잠
이 들며 찰나의 머무름도 없이 흘러가는‘나’를 그는 스스로 존중했다. 다만 하늘가를 스치는
바람과도같은, 그가뭇없는발길을말이다. 나는 여행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때와 장소가 모두 변함없이 길이므로, 내가 어디에 있든, 언제나 길 위에 서 있으므로 그렇다. 세상에 정녕 길 아닌 곳이 어디 있으며, 길 아닌 시간이 어디 있으랴. 집을 떠나도 길이요, 집으로 돌아와도 길이다. 떠난 사람만이 돌아올 수 있으며, 돌아온 사람만이 다시 길 떠날 수 있다. 떠난 이는 다시 떠날 수 없고,돌아온 이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렇게 떠남과 돌아옴은 결국 둘이 아니다. 오로지 올곧게 길 위에서흘러가는세상의시간과내가있을뿐이다.나는오늘도그렇게길떠나고돌아온다.언젠가 한동안은, 떠날 때에는 그저 가 닿을 목적지도 없이 훌쩍 집을 나서지만 돌아올 때는 변함없이 꼭 한 곳, 집으로만 돌아오는 나를 놓고 번민한 적이 있었다. 떠날 때 목적지가없어도 되는 거라면, 돌아올 때 역시 딱히 한 곳으로만 돌아오지 말아야 한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래서한동안나는집이길의거처쯤은되는가여겼다. 아직 흘러오지 않은 과거, 이미 흘러가 버린 미래. 내가 이런 말들을 들먹이기 시작하던 무렵쯤 해서 나는 그 번민으로부터 벗어났다. 천년 앞이거나, 혹은 천년 뒤이거나, 아득히 펼쳐 진 외줄기 길을 수없이 떠나고 돌아오며 숙명처럼 흘러가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다만 하늘가를 스치는 바람과도 다를 게 없는, 그렇게 가뭇없이 영원한 발길말이다.
그래서그런지나는될수있는한, 고즈넉한풍경속으로자주간다.
내가 그런 곳을 부러 찾아간다기보다는, 내가 닿은 그런 곳이 으레 인적이 드물고 한적한풍경이기 일쑤일 터이지만…. 억새 나부끼는 강변이거나, 서낭나무를 스치는 살바람 소리가 가슴을 헤집는 고갯마루이거나, 망연히 눈길을 뗄 수 없는 노을을 바라보는 산마루 같은 곳이 주로 내가 행보를 멈추는 곳들이다. 쉼터이다. 먼 길을 가는 고단한 날개 잠시 접고, 가끔은 그런곳에서 내가 지금어디서와서어디로가고있는지묻는다. 어느 산골 깊고 후미진 외딴집이라도 만나면 나는 거의 담배 두어 참이 지나도록 웅크리고앉아 그 집을 오래 바라보기도 한다. 굳이 사립문 두드리지 않아도 그렇게 그 집에 사는 이가 누구이며무슨일로이하늘과땅사이를지나가고있는지듣는다.
요즘나는백두대간자락산골마을에자주간다. 백두대간은 모든 물길의 발원지이므로 가장 원시적인 공간이며 비문명적인 공간이다. 그곳에 아주 작은 마을들이 하나씩 문명과 개발에 물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비포장 길들이 사라지고 흙집이며 아궁이가 사라지고 마침내 도회지 같은 문명의 휘황함이 마을을 점점 백두대간에서 멀어져 가게 하는 것을 지켜본다. 사람 사는 곳에 편리와 이기가 생겨나는일이야 좋은 일임에 분명하지만, 그런 것들과 더불어 사라져가는 옛 마을, 옛 사람들의 마지막숨결같은것을잊지않고기억하려애쓴다. 얼마전에는새만금에다녀왔다.
거대한 방조제에 갇혀 사라져가는 바다. 겨우 드나드는 갯물에 마지막 숨결을 연명하고 있는 동진강의 하구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강인들 그리 흘러가고 싶었겠는가 말이다. 제 팔다리 같은 강의 갯벌들 매립으로 다 내주고 마지막 남은 숨결 거칠게 할딱이는 강물 앞에서속수무책으로나도숨이턱턱막혔던것이다.요즘에는 그렇게 사라져가는 것들을 가능하면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애쓴다. 사라지고 나면다시볼수없고, 그리울것이분명하기에그렇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시멸示滅이라는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고 죽음이 다른 것이 아니라하나임을 중생들이 잘 믿지 못하므로 부처가 굳이 죽음을 보인다는 말이다. 불생불멸의 진리를좀처럼믿지못하므로굳이태어남과죽음을보인다는말이다.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렇게 시멸을 보여준다. 안 보여도 되는 것을 굳이 그렇게마지막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시멸의 마지막 모습에서 길의 영원함과당당함을 확인하곤 한다. 다시 생겨남을 보여야 하므로 굳이 사라지는 것이리라. 나고 죽는일이 그렇게 되풀이되기를 정녕 얼마나 하였을까? 아니 앞으로 또 얼마나 더 끊임없이 되풀이될것인지.다만오늘또나는길을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