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사랑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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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설세설山說世說 - 영덕
2006년 11월 297호

극락교 다리 위에 서보면 흐르는 세월이 멈추어 있다. 아찔한 찰나의 연속, 안간힘으로 비탈을
견디며 나이를 먹어온 적송赤松십여 그루가 그렇고, 천년 바위산 위에 걸터앉은 호랑이 얼굴이 그렇다. 어두운 길에서 호랭이 한 마리 딱 마주치면어쩔거여, 어쩔거냐구. 이노옴, 사량분별로 답하려면 치워뿌려라. 오늘따라 쩌렁한 가야산 노장님 목소리가 그립다. 이곳에서는 어둡지 않아도생활 곳곳에서 산 호랭이가 튀어 나온다. 뒤뜰에도, 장독대에도, 강당과 법당채에도. 순하게 길들어 함께 노는 일이 어렵지 않으니 간간이 쳐다보고 눈을 맞출 뿐이다. 그 아래 흐르는 이목소 물줄기도 가물면잦아들었다가때론폭류가되어흐르기도하며아래쪽에생긴큰물가둠이후론흐름이여일하지않다. 여일한 것이 어디 있으랴. 여일할 수 없는 그것이 바로 자연自然한 것이니 영원불변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 이순간 시류에 맡긴 그 인연이 최상일 뿐 뒤돌아보며 연연할 무엇이 있단 말인가. 고샅길을 돌아 빛이 머물다 사라진 시간의 경로를 따라 걷다보면 지난한 역사를 안고 아직도 풀어지지 못한 낡고 오래 된 것들의 자취를 만난다. 힘없는, 내밀한, 수다스럽지 않은. 이젠 주류가 아닌 뒷전에서 오히려 평안해 보이는 원숙한 자들이 갖는 침묵이랄까. 그래서 낡고 오래 된 것의 아름다움은 여백의 미처럼 선선하다. 황금으로도 살 수 없는 세월의 값. 누가 온전히 복원해낼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일하다. 사념도놓고 잰 걸음도 놓고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와보니 발밑으로 뿌리 드러난 적송 십여 주가 보인다. 어떤 방법으로 도울 수 있을까. 최상의 묘안은 무엇일까. 옛날 임경당 할아버지께서는 율곡 선생에게 호송서護松書를짓도록청하였다. 윗 대 조상님들이 심어 가꾸어놓은 솔을 후손이다치지 않도록 잘 보살필것을 당부하신 명문名文이다. 물가에 서 있는 소나무가 위태로워 큰비와 큰 눈 지날 때마다 근심하면서도 방안方案없이 또 한해를보내자니마음이편치않다. 자연경관을해치지않고조경과토목공사를아우를수있는지혜로운 한사람이 이 글보고 나타나 보살행을 하리란 막연한 기대감을 갖는걸 보니 나는 참으로 대책없는 낙천주의자인가보다. 언제부터인가 자연을 돕는 것은 자연스레 그냥 두는 것이라는 지론을 갖게 되었으나 요즈음 생각이많이 바뀌었다. 자연에 인위人爲를 더하여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순일한 눈빛과 손길과 장인의 심성이 있음을 알고부터. 인위로 망가진 불사佛事에도 사는 사람 눈높이만큼의 정성과 편리를 배려하려는 것을 보면 나도 많이 늙었나보다. 뱀이 껍질을 벗듯 고정된 안목의 껍질을 벗어야 하리. 나무사랑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사람사랑이니 더불어 사는 대중스님이 부처님인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마음의 근원에 도달하려는 삶의본질을 직시할 때 모든 행동이 올바르게 되고 모든 말이 꼭 필요한 말이 되는 것. 욕심 버리고 변명도 버리고제잘났다는자아도취는더더욱버리고선하고진실해져야한다. 그길만이살길이다. 너도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