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내일을 말할 것이 있는가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선이야기 그림이야기 - 김현정 2006년 10월 296호
임제 스님이 곧바로 물었다.“ 너무 많지 않습니까.”황벽 스님이 말했다.“ 왜 내일 다시 한번 더 먹는다고 하지 않는가?”임제 스님이 말했다.“ 내일을 말할 게 있습니까? 지금 곧장 먹어야지요”라고 하며 곧바로 손바닥을 쳤다. 황벽 스님이 말하기를“이런미친놈이또호랑이수염을만지는구나!”임제스님이곧바로“고함(喝)”을치고밖으로나갔다.

티끌이모아놓은구름을바람이흩는다.
구름이란 것이 참으로 재미있어서 모이는 것과 흩어지는 것, 다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그것이 모두 순간에벌어진다. 가만히있는것처럼보이는구름은한시도한자리에있지않을것이다. 사람의마음만큼오고가는일이 바쁜 존재가 구름이다. 생명이란 무릇 잠시도 쉬지 않는 그것이 아닌가. 구름을 바라보며 무생無生에서유생有生의자취를읽는다.
오늘도 이른 아침 동쪽하늘 바람이 부는 대로 구름은 이리 모였다 저리 흩어졌다를 반복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구름이 흩어졌으니 흩어진 그 순간 구름이 하늘에 없다고 할 것인가, 밤낮이 바뀌었으니 밤이 그 존재를숨겼다고 할 것인가. 자연의 그 많은 이치에 있어 오고감이 있고, 모이고 흩어짐이 있을 뿐, 있고 혹은 없음을정하는것은참으로하릴없다.
하루의마감에있어서는새벽의그것보다는더고요하다.하루의 마감만 그러할 것인가, 사라지는 모든 것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데서 조용히 시작한다. 석양을 삼키는 바다도 그 순간만큼은 고요하고, 내려앉는 그 볕도 멈춘 듯 고요하다. 그래서 석양을 마주하는 마음도그빛의장렬함만큼함께내려앉는다.마린(馬麟;13세기초~중엽)의〈석양산수〉속은바다속만큼고요하다.산이 머금고 있다는 그 산빛도 그 빛을 알 수 없거니와, 석양을 따라 날아가는 제비들도 그 내막을 단단히
함구하고 있다. 그림은 매우 간결하고 구성 또한 단순하여 대부분의 산수화가 보여주는 작가의 다양한 시선을여기서는기대하기힘들다. 고즈넉하기는하나쓸쓸한마음을감출수없는그광경에서눈길을돌려보려하나그것이그리쉽지않은노릇이다.그시선은적잖이담담하고무겁다. 좀더높은곳에서내려다보는그안에는사라져가는것의고요함이깃들어있다.산은가을빛을가까이머금었고 山含秋色近
제비는석양으로더디게날아가네. 燕渡夕陽遲임제 스님이 곧바로 물었다.“ 너무 많지 않습니까.”황벽 스님이 말했다.“ 왜 내일 다시 한번 더 먹는다고 하지 않는가?”임제 스님이 말했다.“ 내일을 말할 게 있습니까? 지금 곧장 먹어야지요”라고 하며 곧바로 손바닥을 쳤다. 황벽 스님이 말하기를“이런미친놈이또호랑이수염을만지는구나!”임제스님이곧바로“고함(喝)”을치고밖으로나갔다.내일을말할것이있는가이 그림의 막막함에 쐐기를 박은, 날카롭지만 우아한 필체의 이 글은 이종(理宗; 재위 1225~1264)의 글씨이다. 그는 왕유의 말을 빌리고, 마린의 붓을 빌려 한편 슬픈 곡조를 완성하였다. 마린이 이 그림을 그릴 당시는 송宋왕조가 석양에 서 있었던 때였다. 황실의 거의 마지막 화가였던 마린은 늦가을의 황실 정서를 잘보여줄수있는작가였던것이다.
바다 속에 떠 있는 섬과 같이 구름 위로 보이는 몇몇 봉우리의 실루엣만으로는 그것이 가을인지조차 불분명한데, 갈 길을 몰라 서성대는 제비 몇 마리의 모습이 참으로 어설프기 짝이 없으나 마린은 이러한 불분명함과 어설픔으로 사라져가는 것들의 순간을 그 눈빛만으로 정지시킴으로써 강렬하게 잡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저무는 것의 순간을 그렇게 영원히 잡아둘 수 있을 것이다. 그림 속 광경은 움직이지 않았으나, 그 풍경을 당한 마린의 눈길은 이종理宗황제의 마음으로 이어졌고, 그 그림 속 풍경이 그림을 보는 이의 마음마다전해졌을것이니예술이란감정의이입이라고한말이참으로맞는말이다. 감정이이입된예술은그때야비로소가치가제대로나타나고, 생명을더하게되는것이아닌가.황벽스님이어느날부엌에들어가식사를담당하는반두스님에게물었다.“무엇을하는가?”반두가대답했다.“대중들이 식사할 쌀을 고르고 있습니다.”황벽이 물었다.“ 하루에 얼마나 먹는가?”반두가 대답하였다.“ 두섬 다섯말을 먹습니다.”황벽이 물었다.“ 너무 많지 않은가?”반두가 대답했다.“ 오히려 적지 않을까 걱정입니다.”황벽 스님이 곧장 주장자를 내리쳤다. 반두가 이러한 이야기를 임제 스님께 전하자 스님께서 말했다.“ 내가 그대를 위해 저
노화상의 경지를 점검해 보리라.”마침 임제 스님이 황벽스님 옆에 서 있을 때, 황벽 스님이 조금 전 반두와의 대화를 말했다. 임제 스님은“반두는 불법을 모르는군요, 화상께서는 그가 깨닫도록 꼭 한 말씀을 해주십시오.”임제 스님이 곧바로물었다.“ 너무 많지 않습니까.”황벽 스님이 말했다.“ 왜 내일 다시 한번 더 먹는다고 하지 않는가?”임제스님이 말했다.“ 내일을 말할 게 있습니까? 지금 곧장 먹어야지요”라고 하며 곧바로 손바닥을 쳤다. 황벽 스님이 말하기를“이런 미친 놈이 또 호랑이 수염을 만지는구나!”임제스님이곧바로“고함(喝)”을치고밖으로나갔다.빈 산에 비가 오지도 않았으나 저 바다 속으로 내려가는길목에 있는 태양은 계절을 가을로 만든다. 청명한 공기 속에 햇살은 산산이 부서지고 늦은 밤 달빛은 솔숲에 걸쳐 있다. 내일은 석양녘에 바다에 가리라. 안목眼目을 뚜렷이 하고 내려앉은 석양을 맞서 있을 때 바다 끝에 달린 태양빛은내일 다시 동쪽 바다 끝을 통해 다시 오를 것이나, 바쁜 계절 내일을 말할 것이 어디 있는가. 내려가던 그 햇살을잡아내어오늘기어이끌어올려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