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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용문산 상원사 주지 호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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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호산 2006년 10월 296호
어딜 가야 해서 바삐 절에서 내려오는 중이라고 했다. 용문에 들어서서 스님의 차를 기다리는데 바쁘다던
스님은 도통 나타날 기미가 없다. 차 한대가 슬며시 서더니 뒷자리에서 등산복 차림의 남녀가 내린다. 여자가
다리를 절뚝거린다. 바쁘시다더니 그들을 태워 내려오느라 시간을 더 소비하고 말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말
한 마디 없다. 바쁜 추임새는 결국 바람을 거스르는 새들의 날갯짓 같은 것이니, 지렁이의 걸음도 다 제 나름
에는 속도가 있는 것이고, 인연 앞에서도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니. 스님의 평상심 같은 걸음을 따라가니 들어
서는곳은군부대다. 부대마당곳곳에앉아있던군인들이스님을보자마자벌떡일어나합장을한다. 모두들
법당에 모여들어 예불을 드린다. 약 120여 명의 건장한 군인들이 바른 자세로 앉아 스님의 법문을 듣는다. 수
국사守國寺, 이곳은스님이불사한것으로부대안에지어진또하나의말사인셈. 스님은두주에한번이곳에
찾아와법문을한다. 젊은사람들을향한포교활동을중요시하기때문이다.
예불이 끝나자 부대 마당에선 잔치가 벌어졌다. 고기를 굽고 국수를 삶는 이들은 모두 스님과의 인연으로
부대에 봉사를 나온 이들이다. 군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요리사의 모습이 익숙치 않은 탓에 그저 눈이 휘
둥그레지는데 스님은 흐뭇하기만 한 표정이다. 부대장과도 부대 내 관사 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
누며 호탕하게 웃는 스님은 마치 이곳이 집인 사람처럼 자연스럽다. 물과 산이 억지로 섞이지 않고 물은 물대
로흐르고산은산대로거기있어아름답다는게스님의말이다.
군부대를 나와 용문산 상원사로 간다. 오롯한 숲길을 따라 한참을 오른다.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이곳에도
가을은 와 나무 그늘도 가을빛으로 변하는 중이다. 누가 아무리 숨어 산대도 계절에게까지도 숨지는 못하는
법. 부처님손바닥안이다. 춥기는매한가지다.
도량에 들어서니 대웅전 뒤 삼성각 가는 길이 온통 가을꽃이다. 꽃과 등이 길을 만든다. 그 꽃길이 먼저 나
를 부른다. 허적허적 그 꽃길을 걸어가는 스님, 그러다가 꽃을 만지는 스님, 그러다가 측백나무 향내를 맡는
스님, 그 모습이 마치 아이처럼 맑다. 하교길에 해찰하는 아이처럼 유유자적하고 마른 햇살처럼 따스하다. 그
러다가널따란바위위에서정좌를하니또그모습은금세경건해진다. 참선을많이한스님이라더니바위위
엔바람인듯앉고꽃위엔나비인듯앉고나무위엔구름인듯앉으니, 가벼웁다.
“가을꽃이참예뻐요. 신도들의울력으로피어났으니더어여쁘지.”
청운당靑雲堂, 푸른 구름 차실에 든다. 창 밖으론 온통 숲이 보이니 푸른 구름이 맞다 싶다. 스님이 뒤안으로
가더니장작으로팬나무를한아름들고들어와벽난로에불을지핀다. 아직춥지는않으나추운기운이돌기
시작한무렵이니손님을맞는스님의마음이불꽃처럼온화하다. 따스한차한잔에몸이뜨듯해지니아, 가을
이왔구나싶은청운당에서온화한차담이이어진다.
스님이 상원사에 산 지 올 가을로 딱 십년. 87년부터 95년까지 선방에 다니다가 95년에 봉선사에서 소임을
살고여기상원사에96년가을에와서주지소임을살기시작했으니, 그간상원사는많이도변했다. 처음스님
이 상원사 주지로 오던 날, 비포장 길을 한없이 올라오니 초막 하나 있더라고 했다. 완전히 전소가 된 절이었
던 것. 고려 때 태고 보우 스님이 기도하고 정진하셨던 곳이라 선禪하는 선객들이나 수좌들이 이 도량에 대한
애착심이 많았다. 그래서 호산 스님은 1.7km 밖에 있는 철문을 잠그고 그때부터 불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해
서 2001년에는 결국 용문선원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렇게 주지 소임을 살면서도 스님은 본철이면 꼭 큰방 생
활을 같이 했다. 지금 같은 산철에도 선원장 스님과 대중들이 하루 8시간씩 정진을 하는 곳이니, 스님도 시시
때때로앉는다. 그렇지만갈곳손댈곳만날이들이많단다. 무엇이그리스님을바쁘게하는것일까.
“가을이면음악회를열고겨울이면달마배스노보드대회를여니바쁘지요.”
여느 기획사 대표에게서나 나올 법한 말이다. 그러나, 상원사야말로 산사음악회를 가장 처음 열었던 절로
유명하고 호산 스님이야말로 보드 타는 스님으로 유명하니 가장 바쁜 일이 맞겠다. 스님에겐 가장 바쁜 때가
온것이다.
처음 음악회를 열게 된 것은 선원 불사를 위해서였다. 99년도에 소리하는 장사익 씨와 연이 되어 조용히 작
은 음악회를 시작했다. 첫 회에, 이 작은 암자 같은 절에 500여명이 찾아들었다. 작년에는 1,500명, 올해는
2,000명이 상원사 마당에서 음악회를 즐겼다. 클래식, 재즈, 성악, 국악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소리판이었다.
불자가 아닌 이들도 음악회를 즐기려 찾아와 불교를 가까이 하니 더없이 기뻤다. 올 가을 음악회의 타이틀은
‘쉼, 복잡한그곳을벗어나’였다.
“쉼, 쉼은 비우는 거지요. 비워야 쉴 수 있는 것이니. 비우면 그 자리가 바로 깨달음의 자리 아니겠습니까.
진정하게쉴수만있다면우리모두가다탁마할수있는것이지요.”
산아래에서부터상원사까지의2km의외길은음악회때차를통제하는데2,000명이그길을즐겁게걸어서
오르내렸다. 그래서스님은늘그길에등을환하게밝혀안내한다. 이것이스님이우리를이끄는포교의길이
고, 부처님을향한길이다.
그런데, 음악회를여는뜻은알겠으나스님이스노보드는왜타는걸까? 대체무슨화두를타셨기에?
“내가부처님도좋아하지만, 운동도좋아해요.”
95년 겨울, 봉선사에 살 때였다. 15분 거리에 있는 스키장에 갔다가 스노보드 타는 이들을 만났다. 당시는
스노보드타는사람이많지않을때다. 스님눈에스노보드는가히특이해보이고자유로워보였다. 어느방향
으로든갈수있으니자기가기술을창조할수있어무한한잠재력이있어보였다.
“아이들이 자유를 느끼고 있었어요. 현실의 속박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는 듯.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해탈의
자유하고는 다르지만, 아이들이 느끼고 있는 내면의 자유를 느끼겠더군요.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공감이 되
지않는가싶었어요.”
사회에서 마냥 불량하게만 보는 그 아이들과 직접 몸 부딪치며 지내다보니 아이들의 깨끗한 순수성을 보기
도했다. 그러면서아이들과더친밀해져서스노보드도계속타게됐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스님이 보드를 탄다는데 고개를 설레설레 젓지 않을 순 없을 터. 신도들이나 어른 스님
들이뭐라트집을잡진않느냐여쭈니,
“금강경에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 했어요. 무엇을 하느냐보다는 어떤 마음, 어떤 생각을 갖느냐가 중요한 것
이지요. 보드를 타느냐 안 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보드를 타더라도 내가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는
게중요한것이지. 사람들은색과소리로만판단하는데, 그게아니라내면의본모습을봐야지요.”
선지식이고귀한데에만있지않다는말씀이다.
“보드 타는 중에도 수행이 되고 포교도 된다고 생각해요. 좌선만이 아니라 동선도 중요한 것이지요. 움직임
속에서도비울수있어야하고, 화두를놓치지않아야하는것이지요.”
비우는 것도, 하루 스물네 시간 화두를 들고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결국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니결국어디에서무얼하든수행이필요하단얘기다. 본분사를잊지말라는얘기다.
‘달마배 보드대회’를 열게 된 것은 외국으로 전지훈련을 가는 아이들을 후원하기 위해서였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러자 아이들이 직접‘달마배’라는 이름을 달았고 스님
도 간접적인 포교가 되겠다는 마음에 그 이름으로 대회를 열게 됐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든 천주교인이든 모
든 이들이 와서 축제처럼 즐기는 대회가‘달마배’다. 지난해 대회가 4회였는데, 각지의 프로 선수들을 비롯해
아마추어들이모여들고불자신도들까지와서봉사를할정도였다.
대회를 연 이후부턴 보드 타는 아이들이 줄곧 절로 찾아들었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법당에 들어가란 소리
도 안하는데 법당부터 들어가고 스님을 만나면 합장을 하게 됐다. 그러니 아이들을 밉게 보던 선방 스님들도
아이들과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불교와 관련이 없던 아이들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동화되었다. 젊은 아이들이
갖고있던불교에대한거리감이사라졌다.
“불교가 젊어져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해요. 포교라는 게 자연스러워야 해요. 억지로는 안 되는 거죠. 자
연스럽게끌어와야지. 포교스님따로수행스님따로있는게아니라, 포교하면서수행이되고수행을하면서
그것이포교가되어야지요.”
그런데, 그토록운동을좋아한다는분이왜스님이되셨는가여쭙는다.
“한스님의뒷모습이내마음에사진처럼찍혀버렸지. 그러니금생사는아닌것같아요, 전생사지.”
14살에 계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하던 터, 소림권법 영화를 즐겨보던 어린 날의 생각에 절에 계
신 스님들은 다 무술의 고단자인 줄 알았다. 그래서 방학 때 가출해서 절에 들었다. 중국 스님 밑에서 소림권
법을 배웠다. 반야심경, 천수경을 외지 않으면 운동을 안 가르쳐줘서 행자 생활도 하기 전에 다 외웠다. 밤 열
한 시부터 새벽 네 시까지 잠자는 시간을 빼곤 무술을 연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운동을 하고 있는데 한
선객스님이빳빳하게풀먹인장삼을입고법당에앉아정진하고있는그림자에눈이멈췄다. 아침공양을하
고 밀짚모자를 쓰고 소나무 길을 걸어가는 그 스님의 뒷모습이 아직도 선연하다. 아, 저런 삶도 있구나 싶었
다. 운동 가르쳐주던 스님이 아무리 중이 되라 해도 발을 빼던 스님은 냉큼 중이 되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운
동을자제하고행자생활을시작해계를받았다.
요즘에는 짬을 내 태극권을 한다. 선방에 앉아 참선만 하다보니 다리가 약해져서 태극권이 건강에 많은 도
움이된다. 정진하는수행자는몸과마음이모두건강해야할터.
그렇다면, 스님은어떤화두를들고계시는가여쭙는다.
“무無!”
선방에맨처음들고난후부터들고있는화두다. 스님은말한다.
“가벼우면가벼운대로무거우면무거운대로, 무거우면비우려하면서가벼우면중도를지키면서…….”
스님은올겨울눈이내리면또, 눈 위에앉아가볍게날아오르실것인가. 그순간, 들고있던‘무無!’도사라
지고 말 것인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니, 곧 눈은 내리고 그 눈발은 허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다. 무
릇‘무無!’의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