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몇몇 스님의 주도로 동사섭 수행을 하는 곳들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주로 참선 내지 명상이란 주제로 하는데 함께 참선함으로서 참선한 대중이 하나가 되고 하나 된 대중이 자신의 주된 고민을해결하며 궁극에는 성불을 이룬다는 취지였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은우리가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방법입니다.불가에서는 수행자들이 수행을하는 근본을 성불成佛과 이타利他로
요약하는데 그 이타의 수행덕목에사섭법이 있습니다. 사섭법이란 중생이 재물을 구하거나 진리를 구할때 힘 닿는 대로 베풀어주어서 중생으로 하여금 친애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보시섭布施攝, 중생을 불교의 진리 속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여 친애하는정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보살은 언제나 온화한 얼굴과 부드
러운 말로 중생을 대하는 애어섭愛語攝, 몸과 말과 생각으로 중생들을위하여 이익 되고 보람된 선행을 베풀어서 그들로 하여금 도道에 들어가게 하는 것을 말하는 이행섭利行攝, 보살이 중생과 일심동체가 되어고락을 함께 하고 화복禍福을 같이하면서 그들을 깨우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적극적인 실천행實踐行인동사섭同事攝을말합니다.한 누더기를 걸친 승려가 자신을소성이라고 칭하면서 거지들에게박을 빌어 그것으로 박자를 맞추며노래를 하고 있다. 그의 얼굴 표정
은 천차만별이었는데 민중들이 웃으면 웃었고 울면 같이 울었으며 화를 내면 같이 화를 냈다. 그러면서《화엄경》의 한 구절을 내뱉는다.“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一切無碍人一道出生死”. 그의 그 노래는 무애가라고 불리었다. 그가 저잣거리에서무애가를 부르자 온 민중들이 부처
님을알게되었다.위의 이야기는 우리가 동사섭이란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원효 스님의 이야기를 빌린 것입니다. 일연스님께서는《삼국유사》의 내용에서원효 스님을 찬하고 있는데‘무호만
가풍舞壺萬街風’이라고 했습니다.즉 춤추는 호로병이 일만거리에 바람처럼 걸어다녔다는 것입니다. 원효의중생교화는그가보경普敬이란말을 자주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두루 공경한다는 것은 자신을 던져 그들과 동화되고 중생을위해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원효스님의동사행을의미합니다.부처님께서는 도솔천궁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중생계, 사바세계에오시는데 이것은 바로 중생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시고 그리고 어떻게그 고통에서 벗어나는가를 보여주시고자 하는‘동사섭의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원효 스님이자신의 모습을 중생들에게 투영하여 부처의 세계를 알리듯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진정한 우리의 길을 보여주시는 것은 보살의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에 근거를 둔 것으로, 함께 일하고 함께 생활하는가운데 그들을 자연스럽게 교화하는것입니다.
동사섭은 가장 어려운 실천행입니다. 사섭법의 보시, 애어, 이행섭은 자신의 작은 마음을 내어서 실천할 수 있지만 동사섭은 마음만 내어서는 실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상대방과 동체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이 다른수행보다더들어야합니다.동사섭을 잘하기 위해서는 유교의 중용에서 나오는‘화이불류和而不流’란의미를잘이해해야합니다.화이불류란 글을 직역하면 화목하게 지내나 그 흐름을 따르지 말라는
뜻인데 비유하면 도둑인 친구가 있어 그 친구와 같은 도둑이 되나 도둑질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동사섭이 더러운 물에서 찬란하게 피어나는 연꽃같이 탁한 일상에서도 그들과 생활하면서 자신의 등불을 지켜야 진정한 동사섭을 할 수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것을 이해한다면 꼭 어떤 것을 해야 동사섭이아니라 내가 하는 일들이 모두 동사섭의행이라고할수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원효 스님이 불렀던무애가를 부르면서 나비처럼 더덩실 춤을 추며 삼천불의 명호를 외쳐야하지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