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몸의전부를허물때가있다.고난과 지난의 틈새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생生의 간극을 몸서리
나도록 체험했던 적이 있다. 사랑과갈망의 수치가 올라가지 않아 허虛한 삶을 모질게 구박하며 안달했던때도있었으니….그럴 때면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어찌하여 너는 글이란 사내놈과 질
기게 합일하다 이런 수치스런 신상명세서까지 들키고 마는지 참 알 수없는노릇이라고.준우는 Y병원에서 13개월 동안희귀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근육을 유지하는 단백질의 결핍으
로 온몸의 근력이 떨어져 결국은움직이지 못하고 생명을 잃게 되는천형天刑을 견뎌내고 있던 아이다.병이 지만해지면 거기에 따르는 여러 가지 기막힌 것들이 헤일 수 없이 많을 뿐 아니라 곁에서 간호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내지는 맘의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혼자 내내 병상을 지켜내야 하는 겁먹은 표정과 외로움은 현대의학에서 치유 불가능이라는 선고보다 더몸서리쳐지는 일인 것이다. 절망만씨굴씨굴 모여 있는 병실의 눈망울은 슬프다 못해 차라리 싸늘하다.
고통이라는 늪을 수없이 다녀간 발자국들이 모여 있는 무덤 같은 병실. 무감각, 무신경으로 생生이란간단한 단어를 잊어버린 지 오래였던, 아무도 밟지 않는 마치 음습한천년의 성곽 같았다.
일주일에한번씩내삶의행行속에 준우의 맑은 눈동자와 동반자가되어 줄 애틋한 얘깃거리를 퍼 나르기로했다.따뜻하고 잔잔한 편지글로 아이를 희망의 대지로 몰아넣으며, 세상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로 꽉 차있기에 우리 모두 그 과정에 뜻과원을 세우며 하루하루 숨막히게 살아내고 있다고. 언젠가라는 삶의 기대치를 무한대 위에 또박또박 박으며 세상의 모든 빛을 듬뿍 받을 수
있는날이반드시올것이라고.물질만이 영혼을 일으키는 것은아니기에 희망이라는 이름 앞에맘 한 장 터놓을 수 있는 작은 솟대를 매달아 주었다. 물론 사랑과격려의 꾸러미들을 쉼 없이 걸어
두었다.순교를 앞둔 사도처럼 비장한 얼굴을 기대했다면 무리일까. 준우의입술은 늘 생명을 구걸하는 핏빛이었다. 단숨에 온몸의 스위치를 확꺼버릴 듯 울부짖으며 다시는 이 고통을 되돌아보기도 싫다는 완강한저항을 봐 내는 것도 힘이 들었다.
내가 얽어 낼 수 있는 언어의 밧줄로 그를 감싸고 묶는 데는 한계가있었다. 영혼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사랑과 관심에 찬 끊임없는 대화의연속이어야 한다. 자신을 확인시켜세상에 드러내는 일이 참으로 괴롭다는, 어둠 속에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원시인처럼 살고 싶다는 누군가의절규가생각났다.정직한 속내를 모아 8병동 801호로 날랐던 오랜 시간. 준우는 천천히 입을 열고 편안한 몸으로 감사의손짓을 가끔 던져 주었다. 간혹 암흑 속에서 비춰오는 한줄기 빛의 영감에 아이는 생명의 불꽃에 심지를돋우는 듯 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발돋움과 맑은 표현으로 너스
레를떨줄도알았다.상처와 고통의 언저리까지 모두싸안기를 1년. 그의 몸 구석구석 수납해 둔 통증이 발아를 멈추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조각조각 해진 상처의 치유와 화해는
생각 이외로 간단했다. 서슬 퍼렇게목을 죄어오던 파렴치한 아픔을 죄다 받아낼 줄 아는 여유와 틈이 생긴것이다.
떠듬떠듬 말을 하려 했고 푸른하늘을 맘 놓고 쳐다보고 싶다는간원의 기도로 울먹이는 소리가 들
렸다. 드디어‘내가 만약’이라는 희망의 세포를 뒤적거리며 단단히 닫힌 생生의 출구를 기웃대기 시작한것이다.가상했다. 신神은 영원히 네 편에있다고소리질렀다.나를 펼쳐놓고 가장 깨끗한 맘으로 무량심을 베풀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한이일들이혹여생生의종말을 앞둔 이에게 부질없는 순간의 향연(?)을 베풀지 않았나 하는 따가운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 참살이라는 구실로 내 오만과 무례가 약하디약한자들에게독성毒性의바이러스만 퍼뜨리지 않았는지 뒤척댔던 적도있다.
그러나‘일체의 만물이 마음으로부터 생겨나서 마음으로 멸하는 것이니 마음속에 선善을 생각하면 착한 행동이 나올 것이다’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부처님말씀을기억한다.《잡보장경》중에“객기客氣부려만용蠻勇하지 말고 허약하여 비겁하지말라”는 말이 있다. 부처님께서는“많은 불자들이 물자들을 당신 앞에차례상 차리듯 갖다놓고 예불하고공덕을 드리는 것보다 잠시라도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진정한 부처의 길로 가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것으로 알고 있다. 장경판전의 그 많은 경판에도 마음을 중히 여기라는뜻이새겨져있다는말을들었다.꽃과 향과 음식으로 보시를 하는불자들의 틈새에서 나는 내 편지글을 들고 삶의 저편 사람들과 오래가까이 한다. 다시는 태어나지 않아도 좋다는, 그래서 스스로에게 비난과 힐책의 여백만 남겨두려 하는 슬픈 자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낮은 글의 향을 사르곤 한다. 어쩜 우린 전생에 피를 나눈 형제이며 오누이였을지도 모르기에 말과 글로 맘을 소통시킬 수 있는 내 능력(?)은 혹 부처님께서 내려주신 신선한 충격이아닐까싶다.
절망과 애틋함까지 간특한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넣는 모진 병마에게 오랜 문장이 다독여져 있는 한통의 편지는 찰나의 희망은 물론 깊은인연 줄까지 살뜰하게 끌어당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내로라하는 무슨 허망한 자랑이라고 떠들었나싶은생각에걱정이앞선다.
좋은 그늘을 만들어 안락의 보탬을 드리우는 우람한 나무가 되고싶다.뿌리와 가지를 내내 걱정하는 큰나무들의 맘 씀을 본받아 내가 가지고 있는 안위의 거름 망을 준우의링거에 함께 꽂아두고 싶다. 부름을받았을 때 다투어 함께 하는 일들이비록 부처님의 지엄한 명命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는 이 목숨도 언젠가는 부질없이 한 획만 그을 뿐 그 이상무엇이남겠는가.가을 햇살이 찻물에 떠 있다. 단단한 화두를 못 견뎌 속물 근성을들킨 지금 마치 억울한 회초리를 몇대 맞고 난 뒤처럼 착잡하다. 허나부처님께서는 이 역시 삼가고 또 삼가라 하셨을 터. 남모르게 행行하라는 오른손과 왼손의 염치를 터득하기에는아직도길은멀다.사는 게 고행苦行을 빼면 뭐가 남을까.
‘구부득고求不得苦’구하려 애쓰지만 얻지 못하는 고통을 여러 번맛보았기에 척박한 마음의 땅에 또다른의미의볍씨를묻는다.마하트라 간디도 모든 사람의 눈으로부터 눈물을 닦아내는 것과 단
한 사람한테라도 기쁨을 주는 것이천 번의 기도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는가.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과 다가오지않는것들에게경외를보낸다.살고, 살아서 내 업장의 무게가가벼워지는 날을 기다리며 형해만남은 내 맘의 거처에 다시 등불 하나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