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융圓融과 조화調和
고비첩古碑帖을임서(臨書:옛 비문의 글씨를 형태나 필세를 쫓아 모방하여 쓰는 것)하는 것
이내일상의한부분이다. 깨지고풍화風化로마모磨耗가심한그것들을숨은그림찾기하듯
살펴서 쓰노라면, 그것들의 형태적 다양성에 놀라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그 내면에 흐르는
소박함과 활달함 무뚝뚝함 중에서 드러나는 나긋나긋함, 반듯함 속에 기우러짐 등 전혀 이질
적인 요소들이 버성기지 않고 천연스럽게 잘 어우러져 한바탕 춤판인 양 화해和諧롭다. 참으
로감탄하지않을수없다.
사실 문자는 언어의 약속된 부호符號다. 표의表意성을 띠었든 표음表音성이든 문자는 그런
부호다. 그러나 문자는 언어의 약속된 부호, 즉 언어의 도구에만 그치지 않는다. 사상思想과
시대성을 담은 이질적 요소와 모순된 서사書寫방법에 의하여 생명을 부여받고 서예書藝라는
독특한장르로태어난다.
동양문화에서 우주는 기본적으로 기氣, 음양陰陽, 강유剛柔, 오행五行등으로 구성된다. 이
것들은 하나로 꿸 수도 있고 나누어 분류할 수도 있다. 이것은 자연에서 터득되어진 것이고
자연은 순환循環되는 특성을 가졌기 때문에 이질적 요소와 모순을 결합結合조화할 수 있는
것이다.
한漢의 허신許愼의《설문해자서說文解字敍》에“사물의 형상에 의지하여 만들어진 것을 문文
이라 하고 그후 소리와 형상에 의하여 생겨난 것이 자字가된다”고 하였다. 또 갑골문甲骨文에
보이는 문은 정면으로 서 있는 사람의 가슴에 새겨진 문신紋身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보아
문은부호보다문양에서시작되었음을알수있다.
그러므로문文은장식성을띠어‘아름답다’‘화려하다’로인식된다. 이러한인식은고대인
물 품평에서 촉발된 의경意境의 유형이 되고, 또 전환되면서 새로운 의미의 심미의식으로 나
아간다.
혜강은 신장이7척尺8촌寸이었고 풍모가 특히 빼어났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감탄하길“깔
끔하면서 엄숙하여 상쾌하고 맑으며 우뚝하다”라고 하여 인물을 자연현상에 비유하여 그들
이 추구 하였던 미의식 경계를 엿볼 수 있겠고 또 왕희지의 글씨를 보고 평하길“떠다니는 구
원융은 결코 원만히 융합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립적 이질요소를 하나로 꿰
어 하나의 독립적 체계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불가佛家에서 중도 사상
의 핵심이랄 수 있는 쌍차쌍조雙遮雙照가 지닌 무게는 우리의 학문 예술, 나아가 삶
까지드리움이짙다. 마치절대변할수없는지남指南처럼….
원융圓融과 조화調和
름처럼 자유롭고 놀란 용처럼 힘차다”라고 하여 글씨를 자연계의 변화와 사물의 움직임에 빗
대어표현한것은마치그러한현상을바라보고있는것처럼느끼게된다.
조비曹丕도 문장文章을 평하길“서간의 글은 평범하고, 응장은 온화하지만 웅장하지 못하
고, 유정은 웅장하나 세밀하지 못하며, 공융은 기개가 높고 오묘하다”라고 하여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을 꺼려 절대 조화를 강조한 높은 경계의 심미의식이다. 이러한 품평은‘글씨가
그 사람과 같다(서여기인書如其人)’든가‘문장이 그 사람답다(문약기인文若其人)’라 하여 인
체 구조론까지 인용된다. 가늚과 굵음이 조화를 이루고 뼈대와 힘이 잘 어우러지며 늠름하고
위세가 있어 항상 생기발랄함이 있게 된다. 또 소동파는 서론에서 반드시 뼈와 알맞은 살집
과 힘줄, 혈기가 왕성한 정신을 갖추어야(骨, 肉, 筋, 血, 氣, 神) 글씨로서 가치를 갖는다 하였
다. 이런 인체 구조적인 미적 대상이야말로 생명을 지닌, 사물을 대하는 독특한 관점이라 할
수있겠다.
동양의미학사상은유儒, 불佛, 도道의사상이근간이된다. 따라서각각고유한특색이있다.
유가에서 웅혼雄渾, 전아典雅를 최고로 여긴다면 도가는 충담沖淡과 오묘奧妙함을 기리고,
또이경계를물씬하다(濃), 담백하다(淡), 신운이있다(神), 자유롭다(逸)로구분한다. 하지만
이것은 각각의 이상 추구로 보편적 가치, 즉 미의식을 채우는 데는 부족하다. 그러므로 그것
들이상보상통되어나타나는공통, 이것이조화로움이다.
공자가논어에서문질빈빈文質彬彬을강조한것은내면과외관의완전한조화를뜻한다. 여
기서 질質의 개념은 실實로서 장식성 이전을 의미한다. 비유하면 질은 나무이고 문은 나무에
핀 꽃이 된다. 문은 질의 발현發現이자 외관이며, 질의 빛이 된다. 따라서 문질빈빈은 조화의
식의 표상이 되고 덕德이 되지만, 공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으로 그것을 괴여 화학적 결합 같
은 그 무엇을 경계警戒하였다. 이것은 조화造化곧 감쪽같음이 아니라 이해와 존중 포용, 곧
조화調和로움이다.
지금너나없이본질적가치는심드렁하게여긴다. 과정이야어찌되었건결과만쫓는다. 오
늘 신문엔 인문학人文學이 죽어간다고 아우성이다. 기초학문은 위축되어지고 응용학문만이
드세워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자조自嘲하기도 한다. 이게 어디 오늘 깨닫게 된 것
이랴? 모두문질이서로갈마들지못하기때문이라본다.
옛말에“소년 문장은 있어도 어린 명필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천재성, 즉 어떤 꾀바름
으로될일이아니다.
치열한 수련과 마음이 터져야 비로소 글씨를 알게 된다. 하여‘손과 마음이 서로 합하여 드
날린다(심수쌍창心手雙暢)’또‘마음과 손이 서로 잊으라(심수상망心手相忘)’라는 것은 간단
間斷없는 수련 속에 걸림없는 마음에 도달되었을 때 나타나는 경계일 것이다. 이를 원융圓融
이라 보겠다. 원융은 결코 원만히 융합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립적 이질요소를 하나
로 꿰어 하나의 독립적 체계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불가佛家에서 중도 사상의
핵심이랄 수 있는 쌍차쌍조雙遮雙照가 지닌 무게는 우리의 학문 예술, 나아가 삶까지 드리움
이짙다. 마치절대변할수없는지남指南처럼….
지난날눈여겨보아두었던의상대사의법성게의끝구절이떠오른다.
궁좌실제중도상窮坐實際中道床구례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원융과조화로움으로가기위해선오직깨어있어야되리라.
그러자면먹갈아글씨쓴다. 책잡아글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