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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던 중노릇 잘 하면 좋단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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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자시절 - 박원자 2006년 09월 295호
현각/강릉 대성사 주지스님

49일 기도를 하는 동안 반드시 하루에 한 번씩 극락전
에 들러서 절하는 나를 보고 가시는 스님 한 분이 계셨
다. 해인사 지족암의 일타 스님이었다. 일타 스님은 내가
태백산 홍제사에 살 때, 그 위 도솔암에서 홀로 정진하고
계시면서 내가 몹시 아픈 것을 보셨기 때문에, ‘과연 저
스님이 살아날까? 혹시 내일은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
닐까?’하면서와보셨다고한다.
일타 스님의 극락암 출근은 곧, ‘다 죽어가는 스님이
극락전에서 삼천배 기도한다’는 소문으로 이어져, 해인
사 강원과 선원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이 구경을 오기도
했다. 마침 그때, 일타 스님의 맏상좌인 혜인 스님이 해
인사 장경각에서 하루 5천배 백일기도를 하고 있던 중이
었다. 일타 스님은 두 군데를 오가면서 후학들을 격려하
셨던것이다.
49일 기도를 마치고 성전암으로 올라갔다. 누구의 부
축 없이 혼자 올라간 나에게 성철 스님께서‘니, 안 죽었
네? 죽으라고 시켰더니만 안 죽었네?’하시곤 다시 과
제를 내주셨다. 49일을 더 기도하라는 명이셨다. 두 번
째 기도를 가볍게 마치고 다시 가니 성철 스님께서 그러
셨다.
“그래, 이렇게 살 길이 있는데 십수 년을 물러서 있었
느냐?”
그리고 49일 기도를 한 번 더 하고 백일 기도를 하라고
하시면서‘이제 하루 삼천배의 반씩만 해도 된다’라고
하셨다. 무사히 49일 기도와 백일기도를 마치고 가니 큰
스님께서‘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받아 가지고 오너라’
라고하셨다.
대구 시내에 있는 병원에 가니까, 의사가 내 상처를 보
고는 몇 번이나‘고생하셨네요’라고 하면서, ‘아무 이상
없습니다’라고말해주었다.
시내에 간 김에 처음에 나를 진찰했던 외국인 의사에
게 들러 인사를 했다. 그가 깜짝 놀라면서‘어떻게 해서
나았느냐’고 묻기에‘삼천배 염불 기도해서 나았습니다’
라고 했더니, 도시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하던 표정이 아직
도 선연하다. 스승의 말씀을 철저히 믿고 한 정진의 힘을
그가어떻게이해했겠는가.
‘다 나았다’는 진단서를 떼어서 큰스님께 갔더니, ‘조
금 있다가 기도하는 보살들이 나오거든 보고 내려가라’
고 하셨다. 서울과 부산 신도들이 와서 성전암에서 기도
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영문을 몰라 하자, 큰스님께서
이유를들려주셨다.
“처음 병원에 입원할 때 따라갔던 보살들이 네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믿지 않는다. ‘네가 죽어서 저 세상
사람 된 지 오래 되었다’고 하더구나. 그러니 살아 있는
모습을보여주고가라.”
기도시간이 끝나고 신도 분들이 들어와서 나를 보고는
‘스님! 정말 살아 계셨네요?’하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
이난다.
그렇게 살아났고 중간에 사라질 뻔했던 출가의 길로
다시 들어왔다. 거의 일 년을 기도한 셈이었다. 모든 것
이 전생의 인연 인과였다. 의술로도 안 되는 것을 기도해
서치료했다는것은전생의죄를참회한결과였다.
바늘 끝만한 일도 인과 아닌 게 없다. 우리네 사는 게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전생에 자기 눈으로 찍고 녹음
해 놓은 필름이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지금 모습은 그
필름이돌아가는과정인것이다.
사진을 잘 찍은 데는 편안하고, 고통받는 것은 전생에
안 좋은 마음을 썼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모두 인연
인과, 자작자수, 내가 지어 내가 받는 것이다. 조금도 어
긋남이 없는 명확한 이치를 나는 기도를 통해서 깨달았
던것이다.
기도는 몸으로만 절을 하는 것보다 대참회와 함께 염
불을 해가며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우리가 뜻을 내서 몸
과 마음이 같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몸은 절을 하고 입
으론염불하면서참회를하면업장소멸이빠르다.
성철 큰스님께선 염불을 할 때, 아무리 힘이 없어도 큰
소리를 내서 하라고 하셨다. 염불기도를 할 때 소리를 크
게 내서 하면 주위에 있는 혼, 귀신들이 다 환희심을 내
서발심하고좋은생각을낸다고하셨다.
내 나이 올해 일흔둘, 지금 나는 그 옛날, ‘나무아미타
불’을‘나무이피타불’로 가르쳐주었던 고모님이 창건한
절에 머물러 살고 있다. 8년 전 이곳으로 들어와 살고
있는데, 이곳에 와서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1년 동안의
기도를 마치고 건강이 차츰 좋아졌으나 과로는 하지 못
하고살았다.
나는 누구한테 선뜻‘기도하라’는 소리를 하지 못한다.
내가 목숨 바쳐 기도를 해봤기 때문에 어설프게 기도해
서는안된다는생각을가지고있기때문이다.
큰스님께서 내게 기도하라고 이르시지 않았으면 나는
벌써 세상을 떠나 지금 세상에 없을 것이다. 큰스님을 믿
는 마음이 없었으면 기도를 못했을 것이다. 수저 하나도
제대로 들지 못했는데 가능했겠는가. 업장이 두터운 내
가 기도해서 업장 소멸하지 않았으면 벌써 죽어서 무간
지옥에갔을것이다.
부처님과 큰스님의 은혜를 갚으려면 수행 정진해서 생
사해탈을 해야 하는데, 정진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송
구스럽기그지없다.
큰스님께선 그뒤‘어디에 있든 병 도지지 않게 정진을
잘 하고 살라’고 당부하셨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기도해서 살아난 나의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으니까, 죽
을 때까지 병을 도지게 하지 않고 정진하고 사는 것이 부
처님 법을 전하는 방편이 될 것이다. 부처님 가피력으로
살아났으니 끝까지 건강하게 살아서 부처님 법을 전하는
것이큰스님에대한도리이기도할것이다.
성철 큰스님께선 내게 화두를 주시면서, ‘책을보지말
고 화두만 들어라!’라고 하셨는데, 나는 평생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했다. 정화 때문에 많은 비구
니스님들이 선학원에 모여 있을 때였다. 모든 스님들이
경을 공부했으나, 나는 큰스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제
일일이많은별좌소임을보면서일을했다.
아픈 몸에 경전공부를 하면 몸이 좀 편했으련만, 수백
명 분의 밥을 짓고, 몇 가마니나 되는 나물을 다듬으면서
고생을 자처했던 것이다. 그만큼 나는 순진하게 큰스님
의말씀을부처님말씀처럼받들었다.
가끔‘큰스님말씀처럼화두하나만 들고살았던가’하
고 돌아본다. 잘은 못했지만 그래도 내가 전생에 참선 중
이었던지, 화두 말고는 관심 가는 게 없었으니, 큰스님의
말씀을대체로잘따랐다고생각한다.
지난해 말, 은해사 백흥암에서 성철 큰스님께 같이 화
두를 받았던 도반들과 모임을 가졌다. 백흥암 주지인 영
운 스님의 스승인 현묵 스님이 주관해서 옛 도반들이 백
흥암에 모여 이틀 밤을 묵고 나왔다. 화두를 함께 받은
사람들 가운데 현묵 스님, 도영 스님, 혜근 스님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살아 있었다. 내가 열일곱에 화두를 받아
일흔이넘었으니세월이많이흘러있었다.
그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함없이 나의 도반들은
화두와 함께 살았다. 현묵 스님은 지금 석남사에서 입승
을 하고 있고, 도영 스님은 내원사에서 입승을 오래 했으
며, 혜근 스님은 오롯이 한평생 정진을 잘 했으니까 그만
하면큰스님과의약속을잘지킨거라고위로해본다.
나무관세음보살!□
취재·글 /박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