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만해도기분이좋아지는메뉴 들이 있다. 예를 들면 봄나물. 스웨터 에 외투를 꽁꽁 겹쳐 입고도 추워서 움츠리던 늦겨울, 일찍 장에 나온 봄 나물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 나. 봄이 온다고 하여 갑자기 고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련만, 왠지 따뜻한 봄이 오면 햇살이 내게로 비출 것 같 고, 왠지강남갔던제비가박씨를물 고돌아올것만같고그런거다. 보기 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메뉴에는 시루떡도 있다. 옆집이 이사를 왔다 고 돌리고, 아랫집이 좋은 일 있다고 돌리고, 새로 생긴 밥집에서 개업했 다고 돌리는 시루떡은 불그죽죽한 팥으로 두껍게 쌓여서 김이 모락모 락날때제일좋다. 잡귀를쫓아낸다 는 팥이 입 안에 그득 들어올 때, 우 리 집의 액운도 다시 한 번 쫓아주기 를 기원하게 된다. 이렇게 보기만 해 도 기분이 좋아지는 음식 가운데 약 주를 빼놓을 수 없는데, 특히 서양의 술인‘샴페인’이 그렇다. 맑은 포도 주에 당을 첨가하여 기포를 만들어 낸 제품인 샴페인은 특히 프랑스의 ‘샴페인’이라는 동네에서 만들어진 상표들이 유명한데, 프랑스인들은 누가 샴페인을 사는 것만 봐도‘뭔 좋은 일이 있나?’라고 생각할 정도 다. 서양의 영화를 봐도 축하하는, 기 념하는, 프러포즈 하는 장면에서 샴 페인은 어김없이 등장하곤 한다. 이 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메뉴 가운데 또 하나가 바로 케이크. 폭신하게 구 워낸 빵에 달콤한 크림을 듬뿍 바르 고 알록달록한 과일이나 꽃으로, 초 로 장식한 케이크는 보기만 해도‘축 하’라는단어가떠오른다. 한밤의 프러포즈 케이크 어릴 적부터‘양풍洋風’을 좋아했 던 나는 케이크를 엄청 동경했었다.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생일날 어떤 케이크를 사달라고 할까 고민했던 일들은 즐거운 추억으로 아직까지 생생하다. 파운드케이크나 롤케이크 에 달고 짙은 크림이 촌스럽게 묻어 있던 70년대의 케이크들은 돌이켜보 면 식탁위의 소품이라 생각해도 될 기분좋은케이크 만큼 화려하고 예뻤던 것 같다. 80년 대 들어 어느 날, 동네의 버스 정류 장 앞에 새로운 케이크 집이 문을 열 었는데 그 집은‘생크림 케이크’를 만든다고 광고했었다. 기존의 크림 보다 훨씬 가볍고 부드럽고 우유맛 이 많이 나는 생크림은 판매 당일 날 거품을 쳐서 빵에 씌우기 때문에 그 만큼 더 고소하고 고급스러웠다. 90 년대 들어서는 케이크만 전문으로 하는 찻집과 빵집들이 브랜드화 되 어 생겨나면서 선택의 폭이 다양해 졌는데, 그래도 꼬마 때 먹었던 생크 림 케이크의 소중한 맛을 따라올 자 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21 세기가 되어 사회생활을 하고, 어른 행세를 하며 살아가던 나는 바쁜 생 활 속에 케이크의 맛을 잃어가고 있 었다. 그러다가 다시 케이크에 맛을 들이게 된 계기가 생겼는데, 바로 몇 년전여름밤이었다. 당시에는‘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이 야근을 한다고 해서 나는 일 찍 잠자리에 들었었는데, 갑자기 자 정이 되어 전화통에 불이 난 것이었 다. 집 앞에 와 있는데 급한 일이라 서 꼭 만나야겠으니 나와 달라는 전 화를 내 깊은 잠이 깰 때까지 십 여 통을 했다. 다소 짜증이 났던 나는 이 밤에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며 볼 멘 소리를 하러 나갔고, 그 자리에서 프러포즈를 받게 되었다. 소박한 과 일 케이크에 불붙인 초를 꽂고 들고 있던 지금의 남편이 그때 얼마나 엉 뚱해 보였겠나. 푹푹 찌는 여름날, 그것도 한밤중에 간간이 취객이 지 나가는 거리 한가운데서 촛불이 타 들어 갈까봐 손으로 가려가면서 케 이크를 들고 있는 한 남자. 어이없어 하는 내 입에 케이크를 크게 떼어 한 입 턱 넣어주더니 다짜고짜 결혼하 자고 했던 사람이 지금의 내 남편이 다. 그날 먹은 케이크의 시럽 바른 과일맛이 아직도 입에 남아 있는데, 그 밤에 얼마나 웃고 얼마나 케이크 를 맛있게 먹었던지 우리 두 사람은 아직도 오밤중에 케이크를 먹는 습 관이 있다. 프러포즈 당시 남편이 말 하기를“지금 이 순간의 마음, ‘초심 初心’을 잃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그 ‘초심’이라는 단어가 나는 참 좋았 다. 그래서인지 그날 이후로 나는 케 이크를 볼 때마다‘초심’이 생각난 다. 케이크는 특히나 매일 먹는 메뉴 가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올 생일에 케이크를 먹으면서 작년에 다짐했던 마음을 생각하고, 올 연말에 먹을 케 이크를 고르면서 작년 연말에 약속 했던마음을떠올려보게된것이다. 나에게 지난 삼 년간 좋은 일만 있 으면 케이크를 만들어 선물해 준 마 음 예쁜 아가씨는 바로 내 남동생의 여자친구, 유혜연이다. 단아하고 손 재주가 좋은 혜연이는 고집이 세고 늘 바쁜 내 동생과 교제하는 1000일 동안 우리 가족의 경조사에 늘 케이 크를 손수 구워 왔다. 그런 그녀가 올 가을, 우리 집 사람이 된다는 좋 은 소식이 들린다. 남동생이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매형의‘초심’이야 기와 케이크 프러포즈를 귀띔해 주 고, 너희도 혜연이가 만드는 케이크 를 먹을 때마다‘초심해라’고 예비 신랑에게누나티를좀낼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