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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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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타 - 박재은 2006년 09월 295호
기분 좋은 케이크 보기만해도기분이좋아지는메뉴
들이 있다. 예를 들면 봄나물. 스웨터
에 외투를 꽁꽁 겹쳐 입고도 추워서
움츠리던 늦겨울, 일찍 장에 나온 봄
나물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
나. 봄이 온다고 하여 갑자기 고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련만, 왠지 따뜻한
봄이 오면 햇살이 내게로 비출 것 같
고, 왠지강남갔던제비가박씨를물
고돌아올것만같고그런거다. 보기
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메뉴에는
시루떡도 있다. 옆집이 이사를 왔다
고 돌리고, 아랫집이 좋은 일 있다고
돌리고, 새로 생긴 밥집에서 개업했
다고 돌리는 시루떡은 불그죽죽한
팥으로 두껍게 쌓여서 김이 모락모
락날때제일좋다. 잡귀를쫓아낸다
는 팥이 입 안에 그득 들어올 때, 우
리 집의 액운도 다시 한 번 쫓아주기
를 기원하게 된다. 이렇게 보기만 해
도 기분이 좋아지는 음식 가운데 약
주를 빼놓을 수 없는데, 특히 서양의
술인‘샴페인’이 그렇다. 맑은 포도
주에 당을 첨가하여 기포를 만들어
낸 제품인 샴페인은 특히 프랑스의
‘샴페인’이라는 동네에서 만들어진
상표들이 유명한데, 프랑스인들은
누가 샴페인을 사는 것만 봐도‘뭔
좋은 일이 있나?’라고 생각할 정도
다. 서양의 영화를 봐도 축하하는, 기
념하는, 프러포즈 하는 장면에서 샴
페인은 어김없이 등장하곤 한다. 이
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메뉴 가운데
또 하나가 바로 케이크. 폭신하게 구
워낸 빵에 달콤한 크림을 듬뿍 바르
고 알록달록한 과일이나 꽃으로, 초
로 장식한 케이크는 보기만 해도‘축
하’라는단어가떠오른다.
한밤의 프러포즈 케이크
어릴 적부터‘양풍洋風’을 좋아했
던 나는 케이크를 엄청 동경했었다.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생일날 어떤
케이크를 사달라고 할까 고민했던
일들은 즐거운 추억으로 아직까지
생생하다. 파운드케이크나 롤케이크
에 달고 짙은 크림이 촌스럽게 묻어
있던 70년대의 케이크들은 돌이켜보
면 식탁위의 소품이라 생각해도 될
기분좋은케이크
만큼 화려하고 예뻤던 것 같다. 80년
대 들어 어느 날, 동네의 버스 정류
장 앞에 새로운 케이크 집이 문을 열
었는데 그 집은‘생크림 케이크’를
만든다고 광고했었다. 기존의 크림
보다 훨씬 가볍고 부드럽고 우유맛
이 많이 나는 생크림은 판매 당일 날
거품을 쳐서 빵에 씌우기 때문에 그
만큼 더 고소하고 고급스러웠다. 90
년대 들어서는 케이크만 전문으로
하는 찻집과 빵집들이 브랜드화 되
어 생겨나면서 선택의 폭이 다양해
졌는데, 그래도 꼬마 때 먹었던 생크
림 케이크의 소중한 맛을 따라올 자
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21
세기가 되어 사회생활을 하고, 어른
행세를 하며 살아가던 나는 바쁜 생
활 속에 케이크의 맛을 잃어가고 있
었다. 그러다가 다시 케이크에 맛을
들이게 된 계기가 생겼는데, 바로 몇
년전여름밤이었다.
당시에는‘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이 야근을 한다고 해서 나는 일
찍 잠자리에 들었었는데, 갑자기 자
정이 되어 전화통에 불이 난 것이었
다. 집 앞에 와 있는데 급한 일이라
서 꼭 만나야겠으니 나와 달라는 전
화를 내 깊은 잠이 깰 때까지 십 여
통을 했다. 다소 짜증이 났던 나는
이 밤에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며 볼
멘 소리를 하러 나갔고, 그 자리에서
프러포즈를 받게 되었다. 소박한 과
일 케이크에 불붙인 초를 꽂고 들고
있던 지금의 남편이 그때 얼마나 엉
뚱해 보였겠나. 푹푹 찌는 여름날,
그것도 한밤중에 간간이 취객이 지
나가는 거리 한가운데서 촛불이 타
들어 갈까봐 손으로 가려가면서 케
이크를 들고 있는 한 남자. 어이없어
하는 내 입에 케이크를 크게 떼어 한
입 턱 넣어주더니 다짜고짜 결혼하
자고 했던 사람이 지금의 내 남편이
다. 그날 먹은 케이크의 시럽 바른
과일맛이 아직도 입에 남아 있는데,
그 밤에 얼마나 웃고 얼마나 케이크
를 맛있게 먹었던지 우리 두 사람은
아직도 오밤중에 케이크를 먹는 습
관이 있다. 프러포즈 당시 남편이 말
하기를“지금 이 순간의 마음, ‘초심
初心’을 잃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그
‘초심’이라는 단어가 나는 참 좋았
다. 그래서인지 그날 이후로 나는 케
이크를 볼 때마다‘초심’이 생각난
다. 케이크는 특히나 매일 먹는 메뉴
가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올 생일에
케이크를 먹으면서 작년에 다짐했던
마음을 생각하고, 올 연말에 먹을 케
이크를 고르면서 작년 연말에 약속
했던마음을떠올려보게된것이다.
나에게 지난 삼 년간 좋은 일만 있
으면 케이크를 만들어 선물해 준 마
음 예쁜 아가씨는 바로 내 남동생의
여자친구, 유혜연이다. 단아하고 손
재주가 좋은 혜연이는 고집이 세고
늘 바쁜 내 동생과 교제하는 1000일
동안 우리 가족의 경조사에 늘 케이
크를 손수 구워 왔다. 그런 그녀가
올 가을, 우리 집 사람이 된다는 좋
은 소식이 들린다. 남동생이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매형의‘초심’이야
기와 케이크 프러포즈를 귀띔해 주
고, 너희도 혜연이가 만드는 케이크
를 먹을 때마다‘초심해라’고 예비
신랑에게누나티를좀낼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