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천왕봉이 중봉과 하봉을 거느리고 뻗어내린 두류봉에 구름 한 점 걸렸다. 그 맞은편 벽송산 부용봉
아래 자리한 벽송사碧松寺머리 위엔 구름 한 점 없어 무아의 경지다. 그러나 그 허공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잡념처럼햇살이침입해온몸을뜨겁게달구니덥다는말을하기도전에숨이턱턱막힌다.
도량을지나는스님께여쭌다. 안더우십니까? 피서안가십니까?
“온통 다 더위인데 어디서 더위를 피해? 나 따로 더위 따로 있어서 더위를 느끼는 거예요. 직하에 무심하라,
앉은 자리에서 더위와 하나가 되는 게 진정한 피서지. 내가 번뇌 망상 투성이인데 어디로 도망간다고 번뇌가
달아나나? 수처작주隨處作主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하였는데.”
선학을 공부하고 선원에 앉아 오래도록 참선만 하신 스님이라더니 첫 마디부터 앉으라는 말씀이다. 벽송선
원의 선주禪主로서, 오늘 막 하안거 해제를 마치고 혼자 차를 마시러 가는 길이다. 일상 다반사라더니 뜨거운
차를마시러가는걸음이허적허적땡볕에도무심하다.
“다선일미茶禪一味라 했어요. 이 차맛이 선과 한 맛이라는 거지. 찻잎의 성품과 물의 성품이 어우러져 차맛
을내는것처럼수행자도인격과수행이어우러져고매한맛을내야해.”
뜨거운 차를 입 안에 들이니 더위가 덜컥 달아나는 듯하더니 또 다시 돌아와 고매하지 못한 성품의 덜미를
잡는다. 그래서 또 여쭌다. 이 여름에 선방에 앉아 계시니 덥지 않으십니까? 흐르는 땀처럼 번뇌가 생기지 않
으십니까? 괴로운일도있지않으십니까?
“내가 부처님도 아니고 도를 깨달은 조사도 아니니 안 괴로울 수는 없지. 그러나 공한 줄 아니까 괴로움에
발이빠지진않지. 저기보이는옅은구름은바람이살짝만불어도흩어지잖아요. 구름이란게인과연의조건
으로생겨난것이란것만알아버리면허공은그대로허공이야.”
그러나 중생은 불 속으로 돌진하는 날벌레처럼 탐진치 번뇌에 끊임없이 돌진하니 먹장구름과도 같은 괴로
움을 몸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만큼 비를 쏟는다. 그런데 그렇게 눈물을 쏟아내고도 바늘구멍 같은 용심으로
마음에 또 다시 구름을 만든다. 원래 부처님과 같은 마음이었으나 끊임없이 탐내고 성내어 구름을 채우니 마
음자리는좁디좁아질밖에.
“조그마한 나를 넓혀가는 과정이 수행이겠죠. 넓히고 넓혀서 무아의 경지를 체득하면 허공이 되는 거지. 허
공은허공이란생각도없지. 결국내가허공이란생각도없는거지. 그것이선이지요.”
지금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라 해도 누군가 머리털 하나만 뽑아도 득달같이 생겨나는 먹구름, 그 구름의
씨앗을 깨끗이 쓸어내느라 스님은 오늘도 좌선 중이신가. 하안거가 끝났는데도 스님은 하루에 네 시간 선방
에 앉는다. 문틈으로 보이는 스님의 모습이 어느새 어둠으로 슬며시 감춰진다. 어둠에 앉은 스님이 어둠이
된다.
“선이란건언제어디서나깨어있는것이지. 깨어있지못하기에참선을하는것이지요.”
왜 참선을 하느냐 여쭈니, 염불을 하든 기도를 하든 참선을 하든 눈은 본래 녹는 것, 참선은 눈을 녹이기 위
한한방법일뿐이니자신의근기에맞는방법을택한것이란다.
“감기걸린놈한테는감기약이최고지요. 아무리비싼암약을가지고와봤자그게들어먹나?”
스님은 열두 살에‘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의문을 가졌다. 열다섯에는 경주 분황사에서
도문 큰스님으로부터‘나는 무엇을 생각할까. 도를 생각하리라. 나는 무엇을 말할까. 도를 말하리라. 나는 무
엇을 행할까. 도를 행하리라. 하여 도를 생각하는 마음 잠깐인들 잊으리까’라는 게송을 들었다. 바로 행자생
활을시작했다. 대장부로태어나서도를생각하고도를말하고도를행하는삶을사는것이맞지않은가싶어,
제대 후‘마! 가나’라는 어머니의 한 마디 말을 뒤로 하고 출가했다. ‘도를 생각하는 마음 잠깐이라도 놓지 말
라’는 은사 스님의 법문을 가슴에 두고 수행했다. 삼십대 중반이 되었을 땐 중국으로 갔다. 북경대학교 철학
과에서 선학을 전공했다. 방학이면 중국 선종 사찰을 돌았다. 달마, 혜능, 마조 스님 등 조사스님들이 수행하
고 교화한 행화지行化地백 여 군데를 참방했다. 그리고 선방에서 중국 스님들과 정진하며 안거를 났다. 돈오
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학위는 간밤의 꿈 같은 것일 뿐. 박사 학위를 받고 보니 체계는 세워졌
는데, 팔만대장경을 다 꿰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생사와 직접적으로 무슨 관계인가 싶었다. 10년만에돌아
오자마자봉암사선방에앉았다. 그이후로계속해서선방에만앉았다.
공함을 깨우치는 것이 참선, 그리하여 생사를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 것. 그래서 스님네들은 한사코 화두를
들고 정진한다는데, 그 화두가 또 답은 아니라 하니 어둔 내 눈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만 보일 뿐 달은 보
이지 않는다. 그저, 늦은 밤 종각에 앉아 두류봉 머리 위에 둥글게 떠오른 보름달을 보며 여쭙는다. 무슨 화두
를타셨습니까?
“이 뭣꼬! 저 달을 보고 있는 나는 뭣꼬! 사대각리여몽중四大各離如夢中육진심식본래공六塵心識本來空이라
했는데, 본래 무일물인데 여기의 나는 무엇인가? 아직 깜깜해요. 조사들은 일 가운데 깨우침이 온다 했는데
그런경지는못되고….”
화두의 일념에 들어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누가 욕을 한대도 화두만 성성해야 할 일. 내가 화두요 화두가
곧내가되면나중에는화두마저없어져서이우주와하나가되는것. 그렇게우주가되려는월암스님은달을
보는이밤에도화두를들고있다. 종내에는그화두를내려놓기위해서.
“원래 스승의 말 한 마디에 깨우쳐야 하는 것인데, 우리 같은 먹통들은 아무리 천번 만번 말해줘도 몰라. 그
러니까화두라는강력한망념을가지고와서잡다한망념들을쫓는거지요. 이독공독以毒攻毒, 독으로독을물
리치는거지.”
스님은 얼마 전에 동국대학교 선학과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도 그만두었다. 끝끝내 화두를 붙들고 선방
에 앉기 위해서다. 그러나 후학들을 위해‘간화정로看話正路-간화선을 말하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스님이 지
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헤매느라 돌고 돌아오며 허비한 시간이 그들에겐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그러다보
니 간화선을 하려는 스님들에겐 지침서로 통한다. 선방 수좌들 사이에선 베스트셀러다. 책으로써 가르침을
전하고 선방에 앉은 수좌들에게 강의를 하는 것, 그리고 선방에 함께 앉는 것으로 스님은 선주의 소임을 다한
다. 그때에스님은말한다.
“선종의 가르침인 견성성불見性成佛, 요익중생饒益衆生이 선문의 종지宗旨이니, 비록 선방에 앉아 있어도 중
생의고통과아픔을깔고앉아있어야하지요.”
참선하는 스님들은‘견성성불, 요익중생’양대 강론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한단다. 견성성불하고 요익중
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요익중생하고 견성성불하는 것도 아니다. 견성성불이 곧 요익중생이고 요익중생이 곧
견성성불이라는말이다. 그두바퀴가함께굴러가도록노력하는것, 그것이스님의원력이다.
“결정적인 믿음은 섰어요. 내겐 화두를 들고 있는 일밖에 할 일이 없어. 이제야 출발선상에 선 것 같아요. 업
장이 두꺼워서 이리저리 끄달려 다니지만 할 일은 그거밖에 없어. 몸뚱이라는 옷을 벗을 때 요행히도 화두를
들고죽으면, 다음생에그화두가이어지겠지요. 죽을때까지참선하다가밝아지면좋은거고.”
벽송사는 본래 선방과 강원이 함께 있었으니, 선禪과 교敎를 겸비한 도량이다. 지금은 선방만 남아 있지만
월암 스님의 가르침이 함께 하니 전통대로 교를 겸비하게 되었다. 벽송사의 역사를 알게 된 것은 작년의 일이
다. 스님이 벽송사에 들기 전, 벽송선원에서 여름 한철을 나고 가려던 때였다. 우연히 한자로 적힌 벽송사 사
적기와 방함록을 보게 되었는데 어마어마한 자료였다. 벽송사는 벽송 지엄 대사가 초암을 짓고 수행 보림하
던곳이라는사실만을알고있었는데, 그밑으로부용영관대사나서산대사가도를깨우친, 조선시대엔조계
종 한국 불교의 종가집 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작년에 다른 관련 자료들을 찾아 벽송사 사적기를 옮
겨 적었다. 그러면서 선과 교를 겸수한 도량이었음을 알았다. 그것을 계기로 스님은 벽송사의 주지 소임을 맡
게 되었다. 선학을 전공하고 실천하고 있는 스님이니 벽송사에 들어 마땅하였던 것이다. 하여 선학을 강의하
고 선 법문을 하니 선주로서 일체의 어긋남이 없다. 스님은 9월 8일부터 벽송사에서의 추계 산철 결제를 마련
했다. 본래 결제는 정진, 참선만 하지만 특별히 이 결제 때는 네 시간 동안 참선하고 두 시간은 월암 스님의 강
의가 있고 두 시간은 논강을 한다. 열흘 동안 비구, 비구니 스님들 80여 명이 모여 이 특별한 결제를 갖는다고
하니, 선과교를겸비한벽송사의전통을잇는것이면서월암스님의체계적수행이돋보이는일이다.
고요 속에서 성성히 빛나는 달을 보는 스님이 문득 말씀이 없다. 마치 선방에 앉은 수좌의 모습 같다. 수선
납자修禪衲子라면 어디에 앉든 그곳이 선방이리라. 사람들이 북적대는 거리도 저 찬란히 빛나는 달빛 위도 선
방이리라.
입추, 가을 문이 열리는 날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음달이 이지러진 것인지 이 어리석은 중생은 또 잡
념이생겨여쭙는다. 누군가그립지않으십니까?
“그립다, 외롭다 하면 공부가 되겠나? 난 그리움은 벗어났지. 토굴에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아요. 오늘 해제
하고다들떠나면서, 스님외롭겠습니다하는데뭐가외로워. 여기나무도있고새도울고잠자리도날고구름
도 왔다갔다 하고 달도 빛나는데. 다 도반 아닌가요? 결국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니까. 혼자 있어도 바람소리,
물소리다듣고눈으로삼라만상다보고있는데외롭나요. 상념을떨쳐버리고화두로일념해야지. 내자신도
못보고있는데누가보고싶겠어. 보고싶다면, 나의본래면목이보고싶은거겠지.”
스님은 그렇게 한발 한발 깨달음의 경지로 가고 있는 것이리라. 사붓사붓 달빛 위를 걸어가던 스님이 달빛
속으로 스며든 듯 벽송사 도량이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다. 달을 보는 내가 대체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
는내가달빛을보며여쭙는다. 스님, 얼마나가셨습니까? 달빛이달빛으로답한다.
“어디쯤가고있는지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