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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에 계신 할머니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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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선주 / 해인사 신도 2006년 09월 295호
천도법회는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지난 8월 28일 법보종찰 해인사에서는 신도님들의 원력과 성원에 힘입어 제2차 1029천도법회
(2003. 11. 03 ~ 2006. 08. 28)를 원만하게 회향하면서 제3차 1029일 천도법회 (2006. 08. 28
~ 2009. 06. 22)를 입재하였습니다. 그동안 6년여에 걸친 천도법회는 해인사의 중심 법회로
자리 잡았으며 종단의 대덕 큰스님들을 모시고 진행했던 해인삼매 법문은 영가의 천도뿐 아니
라 생사의 바다를 헤매는 우리에게 바른길을 제시해주는 크나큰 이정표였습니다. 이러한 뜻
깊은 해인사 영가천도법회에 참여한 신도님들의 신행수기를 담았습니다. 3년간 진행되는 3차
천도법회에 동참하는 발원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푸른 하늘이 까맣게 변하던 날,
할머니 당신은 정토로 떠나셨습니
다. 그 길이 정토로 향하는 길일지
라도 당신의 걸음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을 터인데 어떻게 옮기셨는
지요? 이생의 무거운 삶을 수레에
싣고도 세상의 모든 고통과 번뇌를
혼자 안으시려던 당신, 이젠 정토에
서 그 삶의 무게를 하나 둘씩 벗겨
내어 편안히 내려놓으셨으리라 생
각합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잣집
맏며느리로 시집왔건만 세상의 온
갖 고통과 멍에를 당신 가슴속에 눌
러 담고 사셨습니다. 어떤 일이 가
슴속 멍에를 파고 헤집어도 당신은
쓰라린 상처 그대로 다시 가슴속에
꾹꾹 묻어버리고 오직 당신의 길을
묵묵히걸어가신분이셨습니다.
가슴엔 아물지 않는 상처를 겹겹
이 눌러놓고 사셨지만 가난하고 어
려운 이웃에게 미소만으로도 이야
기를 건넬 수 있는 당신은 그들에게
구세주며한줄기불빛이었습니다.
이웃집 마당에 몰래 던져진 쌀자
루의 주인공은 언제나 당신이셨습
니다.
돌담 위에 올려놓은 삶은 감자 한
바가지의 주인공도 바로 당신이셨
습니다.
당신 몫의 밥 한 공기가 너무 아
까워 언제나 죽을 끓여 이웃에 나누
셨습니다.
밥으로 먹으면 나 혼자 살지만 죽
을 끓이면 여섯 명이 같이 살 수 있
다시던당신이셨습니다.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는 산모
를 위해 손수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미역국을 끓여주시는 당신이셨습
니다.
무엇이든 좋은 것은 남을 위해 남
겨놓고 다 썩어가는 사과 모퉁이를
오려내고 남은 한 조각을 입에 넣으
시며“나는 썩은 사과가 훨씬 맛있
다”고하시던할머니당신….
어릴 땐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
다. 할머니가 되면 썩은 사과가 더
맛있게되는줄알았습니다.
그렇게 골라낸 사과를 이웃집 창
문 틈에 하나씩 끼워 놓고 돌아오시
는당신이셨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유독 당신 자신에
게만은 왜 그토록 철저하고 냉혹하
셨는지요?
여름철 시원한 냉수 한 컵도 자신
만을 위해서는 마음껏 드시지 못하
는분이셨지요.
언제나 귀하고 좋은 담배는 남겨
두시고 할머니 당신은 연초를 종이
에말아피우셨습니다.
베푼다는 생각도, 보시라는 생각
도, 무엇이라는 생각도 없이 그냥
당신 생활의 일과로서, 삶의 한 부
분으로 굴러가는 수레의 한쪽 바퀴
일뿐이었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하늘은 또 왜 그토
록냉혹하셨는지…….
할아버지를 일찍 데려가시고도
모자라 당신의 전부이자 분신인 아
버지까지뺏으셨습니다.
한없이… 한없이… 목 놓아 통곡
하시던 당신……. 그 이후에 할머니
당신의눈물을본적은없었습니다.
“세상에 머리를 하늘로 두고 살아
가는 짐승 중에 걱정 없는 것은 없
다. 그 걱정이 하늘이 주는 것일지
라도 살아가는 비법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셨습
니다.
할머니의 그 비법이 작은 이익에
쉽게 물들지 않고 세상이란 굴레에
자신을 씌워놓고 의지 없이 굴러가
지않는저를만들어주셨습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
라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란 말씀을 늘 행동으로 보여주
신 당신이셨기에 남의 잘못보단 나
의 잘못을 더 채찍질하고 부드러움
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찢어지는 고통과 아픔이 파인 가
슴을 헤집고 또 파헤쳐도 당신은 항
상 그 자리에서 저희 5남매에게 넘
치는 사랑과 정성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쏟아부으셨습니다.
하교시간에 날계란을 손에 쥐고
학교 앞으로 마중 나오시던 당신이
셨습니다.
늘 새 옷을 입히고 아침마다 동백
기름으로 긴 댕기머리를 빗어 주시
던당신이셨습니다.
늦잠 자는 저의 얼굴에 오이를 붙
여놓고 아침밥이 식을까봐 아랫목
에 묻어두고 기다리시던 당신이셨
습니다.
내 소중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
놓으시고 자손들의 미래를 깨우는
일에 정성을 다하시던 당신이셨습
니다.
할머니! 당신의 그 크신 사랑을
한 몸에 받고도 전 아무것도 당신에
게해드린것이없었습니다.
어릴 적 아침마다 사랑채에서 천
자문을 배우게 하시고, 책거리를 하
는 날이면 그렇게 좋아하시던 당신
이셨는데…….
그런 당신에게 당신이 원하시던
이름 있는 대학의 졸업장을 안겨 드
리지도못했습니다.
교육에 대해 열과 성을 다하셨던
당신께서 이서방의 박사모를 쓰시
고“자네가 내 한을 모두 풀어주었
어. 고맙네, 고마워”하시며 공부의
10_11
한 풀이를 하셨는데, 그렇게 좋아하
시던 날의 사진을 제 부주의로 보여
드리지 못한 것이 정말 죄송스럽고
가슴 아파서, 지난해 사죄의 글과
사진을 정토로 보내드렸습니다. 잘
받아보셨는지요?
저에게 걸었던 기대만큼이나 안
타까움과 아쉬움, 미련이 크셨다는
것과 타다 못해 녹아버린 가슴을 안
고도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온
화한 미소로 저희들을 끝까지 믿어
주시고 묵묵히 지켜봐 주셨던 당신
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아려
옵니다. 제 자식을 키우면서 지금에
야 당신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볼 수
가있었답니다.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만큼의 죄스러움이 더해지기에 월
요일마다“할머니 꼭 기쁜 소식 전
해드리겠습니다”하고 약속드렸습
니다.
재명이가 올해 명문대학 최고학
부에입학했습니다.
정토에서 기뻐하실 당신의 모습
을 그리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받기
만 했던 당신께 작은 보답이라도 드
릴 수 있게 해주신 부처님께 감사드
립니다. 창훈이는 한 해 더 공부하
고 있습니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가족 모두가 그동안의 수고와 노고
에 서로 감사하고 위로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주심에
또한부처님께감사드립니다.
부처님과의 인연이 닿자마자 해
인사 천도재 소식을 듣게 되었습
니다.
천도재… 천도재… 조상을 위한
제사라고…? 해인사에서…….
듣자마자 뇌리에 꽉 박혀버리는
나의 할머니……. 한없이 그리운 나
의할머니…….
천도재가 무엇인지, 천수경이 무
엇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들과 단 한
번 가보았던, 그 유명한 해인사에서
할머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흥분되고 가
슴이설레기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오직 당신을 위해, 당신을
위한 천도재를 올렸는데 이것마저
도 당신은 제게 아낌없이 되돌려 주
셨습니다.
당신을 위한 천도재는 매주 설레
는 마음으로 일주문을 들어서는 해
인사와의 인연을 주셨고, 정토에 띄
운 기쁜 소식은 메아리 되어 당신이
그토록 정성 들이던 부처님 곁으로
인도해 주셨으며, 좋은 소식 전해드
리겠다는 약속의 고리는 부처님 곁
에서 떨어질 수 없는 든든한 동아줄
이되어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천도재를 하면
산 자에게 복이 더 간다고 말씀하셨
군요. 이제야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할머니 당신은 진정 보살이셨습
니다. 무주상 보시와 보현행이 당신
의 삶 속에 그대로 녹아 있는 보살
로이땅에오신분이셨습니다.
은혜에 대한 보답은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
는 것이라고 당신을 통해서 배웠습
니다.
할머니 당신이 제게 쏟으셨던 사
랑만큼부처님을사랑하겠습니다.
할머니 당신이 베푸셨던 사랑만
큼 모든 사람들을 아낌없이 사랑하
도록노력하겠습니다.
한없이 그리운 나의 할머니, 정말
보고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할
머니……. 옥천 유인 전재순 영가
전에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