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나무사랑1

다음 게시물
산설세설 - 편집실 2006년 09월 295호
나무사랑 세상 속의 낯설음, 길을 잃은 아이같이 막막함
을 느낄 때, 여윈잠을 깨어 나무를 찾아가 칭얼대
며 하소연을 하였다.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영적
가족을 느끼고 싶을 때도 나무는 영매 역할을 하
였는데 비천飛天하듯 허리를 뒤틀며 솟음하여 가
지를뻗은모습이단아하고도중후하였다.
수백 년 세월을 짐작케 하는 밑둥은 튼실하였으나 자연 벼락을 여러 차례 맞으며 나무는 고사하였고, 지지
난해(2004. 11. 13)에는 작압전 앞의 대추나무를 잘라 한 치도 버리지 않고 불상으로 목탁으로 염주와 찻상으
로 모습을 바꾸어 다시 태어났다. 나무 한 자락도 소중하게 여기고 알뜰히 염주를 만들어 고마운 인연들에게
고르게 나누어 주신 주지스님께도 이참에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한다. 나무도 돌아가는 시절 인연을 잘 맺은
듯하다. 한 그루 나무에 그토록 오래도록 지극하게 매료되지 않고서는 나무 저편의 모습과 그의 내면을 읽을
수없다. ‘아발라깃데스발라, 관음의마음을쓰라’, ‘요즘말이많아지고있는걸알고있니’, ‘네생각을밖으
로 드러내지 않도록 해라. 인생이란 본 대로 다 말하고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없는 듯 존재하며 최상의 분별
을 위한 지혜를 기르는 시간임을 또 잊은 게로군.’늙은 목신의 나지막이 달래는 듯 이어지는 목소리는 공명
같기도 하고 조상님의 음성 같기도 하였다. 그의 말 속에서 때때로 내가 표현하고 싶어 하던 단어를 찾기도
하고 조언을 새겨듣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지켜볼 뿐 말이 없었다. 나는 그의 침묵 속에서 답을 얻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하였다. 말이 없다는 것은 말에 걸리지 않으므로 말을 하면서도 말이 없는 것이다. 때때로 그의
눈동자 속에 감추어진 과묵 속에서 불타는 예술 혼을 본 것도 같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클래식의 깊은 음향을
들은 것도 같으며 나무껍질 속의 검은 색에서 흰 색을 보고, 흰 색에서 다시 회색과 밤색을 찾으며 오묘한 색
의조화를찬찬히살피기도하였다.
비 온 뒤 습습한 나무향기와 바람 부는 날 까슬한 껍질에 뺨을 대보면 마르고 건조하면서도 온순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나무와 속내를 얘기하며 더불어 함께 한 그 시절을 잊을 수 없다. 베여지기 전날, 밤 이슥하
여 내가 찾아갔을 때“프로 정신과 주인의식으로 살아라. 내공內功이 보이는 사람, 자신의 일에 통달하는 것
은 우물을 파는 것과 같아. 파고 또 파다 보면 신기하게도 수원水源과 맞닿아 있지. 그것은 내가 물길을 찾는
것과 같아. 그 수원에 가보면 먼저 도달한 최고의 경지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정상에 오르는 길은
원력과확신만이그곳에이르게해. 내가중심이되어주위사람들에게무슨도움을줄수있는지를생각하라.
주인으로의 삶이 한 개인을 얼마나 발전시킬 수 있는 지.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그 흐름 위에
서 모두에게 삶의 의미가 되는.”나무는 마지막 말을 전하고 늦가을 바람이 스산하던 날 뿌리째 거두어 돌아
갔다.□
영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