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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중노릇 잘 하면 좋단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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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자시절 - 현각 2006년 08월 294호
하마터면 일찌감치 수행자의 길에서 사라질 뻔했다.
그러나 나는 성철 큰스님 덕분으로 다시 살아났고 다시
수행자의길에설수있었다.
어려서부터 몸이 실하고 건강해서‘여장군’이라는 소
리를 들었고, 출가해서도 건강할 땐 풀을 베어 하루 오
십 짐씩 해서 나를 정도로 건강했다. 그런데 삼십대 중
반쯤, 너무나 몸이 아파서 염불도 할 수 없고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열일곱 살 때부터 아프기 시작했으나 참고
견디면서 살던 중, 은사스님을 따라 울산 석남사에서 살
때였다.
몇 년 전 들렀던 한약국에선 늑막결핵이라고 했으나,
한약 한 재 한 번 먹고는 견디었고 같이 사는 대중에게
나의 병이 전염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나날이었다. 무엇보
다‘신심이 없어 아픈 게지’하는 자책 때문에 신음 소리
한번제대로내보지못했던터였다.
우여곡절 끝에 인홍 스님의 배려로 병원에 입원을 했
다. 내 몸의 상태를 진찰한 의사는 당장 수술을 받지 않
으면 죽는다고 했으나, 며칠 만에 퇴원을 하고 말았다.
공부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병원에서 죽을 수 없다
는 나의 고집을 아무도 당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죽더라
도 절에서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먹물 옷을 벗고 환자
복으로 갈아입고 앉아서 그대로 수행자의 세계를 떠나는
것 같아서 얼마나 울었는지, 그 기억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선명하다.
입원실에서 홀로 앉아, 삼만 배를 하고 나서 성철 큰스
님께 화두를 받으러 갔던 일, 목침을 손끝에 들이대며
‘지금 당장 죽어도 화두만 들테냐?’물으시던 큰스님께,
‘목숨을 바쳐 한평생 화두를 놓지 않고 공부하겠다’고
맹세했던일을떠올리며울었던기억도잊을수없다.
퇴원을 하고 나서 공부하는 대중들에게 미안해서 석
남사에서 나와 해인사 극락전으로 갔다. 마침 와사병이
와서 극락전에서 기도를 하고 있던 은사스님 곁에 머물
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사숙 되시는 스님 한 분이
찾아와서그랬다.
“현각! 이왕에죽을 건데성전암에계신성철큰스님께
인사나하고죽지…. ”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났다. ‘그래, 어떻게 내가 화두
를 받았던가? 큰스님과 어떤 약속을 했던가. 인사도 드
리지않고죽어서야되겠는가?’
화두 공부를 하면서 경계가 들려서 찾는 것 아니고는
큰스님께 가는 것은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으나, ‘그
래, 죽기 전에 가서 인사나 드리고 죽자. 철조망을 뚫고
라도들어가서만나뵙자’라는생각이들었다.
당시 큰스님께선 해인사 백련암에 주석하시기 전, 파
계사 성전암에 철조망을 두르고 공부하시면서 세상에 나
오지않을때였다.
세 분의 사형님들이 아파서 몸도 가누지 못하는 나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허리에 장삼 끈을 매고 두 분은 앞
에서 끌고 한 분은 뒤에서 밀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갔다.
열이 나서 콧물이 줄줄 흐르고 정신을 거의 잃을 지경인
나는 가다가 드러눕고 가다가 쓰러지면서 몇 시간을 걸
어성전암으로올라갔다.
미리 전언을 해놓았던 터라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고
간신히 큰스님이 계신 문지방을 넘는 순간, 날벼락이 떨
어졌다.
“니, 왜왔노?”
미리 내 이야기를 전해들었던 큰스님께서 노발대발하
셨던것이다.
‘살 길이 있는데 신심 없이 물러서 있다가 왜, 다 죽어
서야 왔느냐’는 안타까운 마음이 섞인 꾸중이었다. 원체
딴 말씀 없이 일언지하 본론으로 들어가는 성격의 큰스
님께선 그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간신히 삼배를 올리고
쓰러질 듯 앉아 있는 내게, 그 부리부리 큰 눈으로 빛을
소낙비처럼내뿜으며물으셨다.
“니, 죽고싶나? 살고싶나? ”
많은 사람들이 큰스님을 찾아와서 기도를 하고 병이
낫고 하는 영험이 있을 때였다. 다른 말씀 없이‘죽고 싶
나? 살고 싶나?’만 계속 물으시는데, 나는 살고 싶다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살고 싶다고 하면 기도를 하라고
하실 텐데, 그 당시 기도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스님께선 내 앞으로 왔다 물러났다 하시면서
‘니, 죽고 싶나? 살고 싶나?’를 계속 물으시는데‘살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고 싶다는 내
대답을 몇 번이고 확인하시더니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
다.
“그래, 그러면 기도해라. 너거 스님 삼천배 하고 있제?
니도따라해라. 알겠제?”
‘걸음도 걷지 못하는 내가 절을, 그것도 삼천배를 어떻
게 한단 말인가’하는 생각에,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을
드리지 못하고 성전암을 나온 나는 해인사 극락전으로
돌아와정신을차리고큰스님말씀을떠올렸다.
“네가 부처님 밥을 먹은 세월이 얼마인데, 그냥 죽을
수야 없지 않나? 부처님 멱살이라도 한 번 잡아보고 죽
어야하지않겠나? ”
나는‘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거는 마찬가진데,
단 한 번 절을 하다가 죽어도 이 몸뚱이는 부처님께 바치
자. 내 영혼은 성철 스님이 알아서 해주겠지’하는 굳건
한믿음을가지고법당에들어가절을하기시작했다.
아침 8시에 들어가 법당 중앙에서 절을 하는 은사스님
을 따라 절을 하는데, 천장이 땅이 되고 땅이 천장이 되
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아파
서 제발 죽었으면 하고 엎드리면 고개가 들리고, 또 죽어
야지하고엎드리면다시고개가들려지곤했다.
그렇게 천팔십배를 하고 나니까, ‘아, 내가 내 자신한
테 내가 너무 속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너무 속았다는 분한 마음이 하늘 끝까지 올라왔던 것이
다.
‘내가 이 송장덩어리인 나에게 수십 년을 속아서 허송
세월을보냈구나….’
비로소‘왜 이제 왔느냐고’고 꾸짖으셨던 성철 큰스님
의말씀이마음에와닿았다.
‘이렇게 못난 내게 속고 살면서 은사스님은 물론 여러
대중들을괴롭혔다니…나는죽어야한다,’
그런 분한 마음이 생겨 첫날, 도저히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삼천배를 해내고, 삼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
한 채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절을 했다. 몸도 가누지
못하던 내가 첫날 삼천배를 해내고 이틀 연속 삼천배를
하자놀란것은은사스님이었다.
그러나 은사스님께선 반가움을 드러낸 것은 잠깐, ‘이
렇게 멀쩡하게 절을 하는 아이가 십수 년 물러서서 나를
애먹였구나’하는 괘씸한 마음이 들었는지 나를 쳐다보
지도 않고 속도를 더 내서 절을 하셨다. 염불 소리도 더
빨라지는듯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내리신 가피는 단 며칠 뒤에 나타
났다. 죽을 각오를 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절을 하
는데, 사흘되던날아침이었다.
그간 힘이 하나도 없어서 산을 하나 매달아 놓은 것처
럼 엉덩이가 무거웠는데, 그래서 엉덩이 들기가 그렇게
힘이 들었는데 누군가 엉덩이를 들어주는 것처럼 가뿐하
게 올라가는 것이었다. 절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은사스님께서, ‘무슨 절을 그리 빨리 하느냐’고 했다. 속
도를 좀 늦춰주었으면 하고 절을 따라 하던 것이 뒤바뀌
어졌던것이다.
나는 그 동안 자신에게 속은 것이 괘씸해서‘먹던 약을
다 끊고 49일 동안 기도해라. 7일간 절을 하고 나서 7일
동안 쉬고, 49일 동안 절을 해라’하시며 과제를 주셨던
큰스님의 말씀을 어기고, 49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삼천배를했다.
그 동안 무릎이 다 벗겨지고 피가 흘렀지만, 몸은 점점
가벼워졌고정신또한명료해져가고있었다. (계속)□
취재·글 /박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