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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운문사 일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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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06년 08월 294호
청도 운문사 일진 스님 밤새 퍼붓던 비는 잠시 소강. 청도에 들어 운문사로 가는 길, 이제 막 핏기가 돈 아기 같은 천도복숭아 나무
가 줄지어 섰다. 빗물을 매단 그것들도 폭우를 이겨냈으니 이제 좀 발걸음들 옮겨 보시려는가. 농부들이 하나
둘집밖으로나와논밭을둘러본다.
호거산 자락에 앉은 운문사雲門寺.
낮게 몸 낮춘 구름들이 정말이지 문이 되어 객을 들인다. 구름문 저 안쪽 도량에서 스님들도 이제 좀 발걸
음들 옮기시는지 손수레 끄는 소리, 경운기 모는 소리, 호미 들고 밭으로 가는 소리 요란타. 비구니 절이라더
니 풍경소리보다 일하는 소리가 먼저 들려오고 꽃내음보다 흙냄새가 먼저 온다.
우산을 탁탁 털 땐 햇감자 찌는 냄새가 따끈하다. 영덕 스님이 내어주시는 찐 감자 한 알 입에 넣으니 구름
뭉텅이처럼 보드랍게 녹는다. 학인스님 한 분이 후배를 두둔하다가 꾸지람을 듣고 그에 대한 벌로 감자를 쪘
단다. 그래서구름이부슬부슬한이일요일오후에모두들구름같은찐감자를먹는다. 운문사스님들이함께
심고가꾸고캐고쪄내기까지한감자. 그러니부처님의음식이다.
“능소화가참예쁘지요?”
하도 예뻐서 하늘도 능멸한다던가. 운문사 높은 굴뚝마다 능소화가 늘어져 다솜다솜 피었다. 그 아래를 지
나던 일진 스님이 꽃을 올려다보다가 지그시 눈을 감고 꽃내음을 맡는다. 그리고 다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
다. 흐르는구름도여유가많은삶은아니다.
스님을 따르며 운문사 승가대학의 도서관인‘삼장원’앞을 지난다. 창틈으로 보이는 스님들의 모습이 경건
하다 못해 고즈넉하다. 홀로 오롯이 경전을 보고 있는 학인스님들의 여릿한 모습이 능소화 빛깔처럼 능소화
자태처럼곱다.
“학인스님들이참예쁘지요?”
운문사 승가대학, 이곳에선 현재 250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경학을 수학하고 계율을 수지봉행하고 있다.
이곳의 학감인 일진 스님의 뒤를 따르며‘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청규를 실천하는 운문
사 스님들 이야기를 듣는다. 구름처럼 모여 일하기에 운력雲力이라고도 한다더니 이곳 구름문 안에선 모두들
울력을한다. 그렇지않고선먹을수없다니!
“몸이 변하는 것은 생로병사, 마음이 변하는 것은 생주이멸, 계절이 변하는 것은 춘하추동, 지구가 변하는
것은 성주괴공이라 하지요. 유정지물이든 무정지물이든 변하기 마련. 이것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이해할 때
행복해질 수 있어요. 밭에서 일하면 이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지요. 일은 일이되, 수행자의 마음에선 이것도
수행이지요.”
운문사스님들은밭에서몸소그것을얻는다. 제행은무상하다는것을, 그것이진리라는것을.
선택의여지도없었다. 고등학교를졸업하자마자출가했다. 집안이워낙불교적인분위기다보니위로언니
둘이 출가를 했고 자연스레 막내딸인 일진 스님도 용인 화운사로 들어가 삭발을 하고 행자시절을 보냈다. 그
리고스무살이되어운문사강원에들었다. 그것이운문사와의첫인연이다. 현재학감을맡게되기까지운문
사에서의날들이, 지금의여릿한학인스님들을보면종종떠오른다.
“어린 나이에 강원에서 공부를 했으니, 4년을 공부하고 화엄경을 봐야 할 때가 됐는데 내가 그것을 담을 만
한 그릇이 되었는가 싶었어요. 그래서 동국대에 가서 4년을 더 공부했지요. 그러고는 또 유학을 가야 하는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오대산에 가서 기도를 하다가 적멸보궁으로 오르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떤 비구 스님이
내 앞으로 확확 걸어가면서‘백년을 해봐라’하는 거예요. 여자가 해봤자라는 말이었지요. 그때부터 전혀 관
심이 없던 여성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됐고, ‘여성은 불가에서 열등한가’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써서 그때 당시
엔센세이션을불러일으켰지요. 여성학이나여성불교에대한논의가거의없던때니까.”
처음, 강원에 들었을 때 학장스님이 물으셨다. 뭐가 될래? 두 말 없이 강사가 되겠다고 했다. 은사스님을 처
음뵈었을때부터너는꼭강사가되어야한다고말씀했다. 그것이어려서부터확고한신념이되었다.
78년도 봄, 화엄반 때부터 강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85년도부터 정식으로 강의를 하게 되어 지금까지 어려
서의꿈대로살고있다.
“참선을 해야만 한다는 주의가 강했던 시절이었어요. 그러나 나는 자부심 있는 강사가 되고 싶었어요. 부처
님의 제자로서 강의를 하는 것도 수행의 좋은 방법일 수 있는데, 왜 어른들이 선禪하는 것만을 가장 최고로
여기는가 싶었어요. 선이나 교나 다 같다고 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선을 주장하고 가치를 두었지만, 나는 그
말에 흔들리지 않았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수행은 경전을 대하고 이해하고 또 이해한 만큼 학인스님들을 가르
칠수있는거였죠. 그렇게할수있다는것자체에내가굉장히즐거워했어요. 지금도그마음, 같아요.”
88년도부터 십년 정도, 운문사를 떠나 있던 적이 있다. 대만에서 중국 불교를 공부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살았다. 공부도몸도머물기보단앞으로걸어나가고싶었다.
“운문사에서 보호 받으며 십여 년 이상을 살았을 때였어요. 다른 대중이나 다른 수행자들의 삶도 보고 배워
야하는데그렇지못했어요. 혼자였던경험도없었고. 별어려움없이사는것보다는외로워보기도하고산문
밖도경험했던것, 지금생각해보면큰도움이됐어요.”
그때 나이 사십이었으나 적당한 나이였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외로움이나 고생은 지금 생각하면 되레 뿌듯
하게 여겨진다. 그렇기에 만약에 어느 학인스님이 그와 같은 길을 가겠다고 나선다면 장려하고 싶은 마음이
다. 그것이외국이든국내든상관없이그러한뜻을두었다면도와주고싶은마음이더크다.
학감스님이 지녀야 할 면모는 무얼까? 학감, 엄격함이 묻어나는 위치를 정의하는 말. 그러나 일진 스님에게
선 엄격함이나 권위의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꽃 앞에서 서자, 얼굴 전체가 꽃보다 향긋해지고 손
맞잡고수줍게웃는일진스님.
“내자체가뭘무서워하지않으니까. 내자체가어려운걸좋아하지않으니까.”
삼십여 년 전 학인시절의 마음이나 지금 학감의 자리에서의 마음이 다를 바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
으니까,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행복하니까. 그렇기에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학감의 덕목이라 하면 되겠
다.
“내가 스무 살, 학인이었을 때 스승님들은 까마득한 존재였어요. 그때 당시 학장스님에 대한 기억이 오롯해
요. 그분은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말, 잘 하라는 말은 전혀 안 하셨어요.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면 당
신도 좋아서 조용히 들어오셔서는 참선하며 앉아 계셨고, 학인들 글 읽는 소리 들으면서 당신도 곁에서 공부
하고 계셨어요. 그렇게 곁에 계시면 괜히 한 번만 읽고 말 경전도 한 번 더 읽었어요. 귀감이 되셨던 분이지
요.”
말로 인한 가르침보다 본보기가 되는 가르침. 그냥 나는 나일 뿐인 것이다. 느끼고 배우는 것은 바라보는 자
들의 몫인 것이다. 내가 가장 편안하고 가장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그 삶이 누구에게든 안 보이겠는가.
보이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한다면 결국은 내가 없는 것. 일진 스님은 그것이 스승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하나를 손에 쥐어주는 가르침이 아닌 몸소 보여지는 스승. 그리하여 학인들이 하나가 아닌 열 개의
가르침을얻어갈수도있고백개의가르침을얻어갈수도있게하는것이스승이라고.
“옛날에어른스님들을보면서나를한번더챙기고점검을하게되곤했어요. 그분들은그자리에있는것만
으로도충분히제스승이었던거죠. 저도그래야이자리에존재하는이유가되지않겠어요.”
스님의 가장 큰 여가활동은 농사다. 밭에 나가 앉아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농사 짓는 일을 맡고 있는 3학년 사집반과 시간을 보낸다. 농사 짓는 삶이 없었다면 운문사에 이토록 오래 머
무를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할 정도다. 산사에 머물고 있는 것 자체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흐르는 물
과햇빛과바람과함께살고있지만흙에손발묻고있는시간이가장행복하다.
“이더운여름에땀을폭폭흘리면서풀한포기와얘기나누고있으면내가자연그자체인것같아요.”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이내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그저 땀만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이게 진짜 좋구나, 마
음훈련이구나싶다.
“나는고민하지않아요. 한순간열심히, 내가할수있는일을해서기쁘면그만이지.”
오늘은 수업 시간에‘진짜 행복한 게 뭘까?’라고 학인스님들에게 물었다. 여러 답 중에 한 스님은 전공하는
책 말고 문학 책 한권 보는 거라고 했다. 스님의 행복은 무엇이냐고 여쭸다. 밭에 나가 농사 짓고 산에 가서 나
물 뜯는 일이란다. 행복이란 것이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이리라.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라 해도 내가 지금 하고
싶은일, 그것을하는것이그토록덩치큰행복을가져다준다는뜻이다.
“수행도 즐기면서 하면 몇 배의 효과가 있고 즐겁지요. 의무적으로 혹은 체면 위주로 한다면 뜻도 없고 참
피곤한일이지. 자기답지않지. 가장좋아하는일을자기답게하고사는것이행복이지않을까요.”
앞으로 뭘 하고 싶은가 여쭸다. 여지없이 농사다. 풀도 뽑고 감자도 캐고 매실도 따며 그것들이 자라는 걸
흙과함께보는일이다.
“대중에서 참 오래 살았어요. 강의도 참 오래 했어요. 한때는 내가 없으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
는데, 그게 좋게 보면 열정이고 긍정적으로 작용을 하지만 이젠 집착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열심히 살았
지만 이젠 그걸 언제 놓을 수 있을까 싶어요. 끊임없이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것이 나의 공부죠. 책만 보는 게
공부겠어요?”
책을 보든 방석에 앉아 정좌를 하든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공부. 무얼 하든 자기
안에서자유로워질때공부가된다는것이다.
그것을알면서도지금의자리를떠났을때과연홀가분해질수있을까, 이것이오늘일진스님의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