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마지막 이데올로기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유마의 방 - 윤시목 2006년 08월 294호
9시 뉴스는 이렇게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CF 같은 거 볼수록 속만 뒤집어진
다. 그 시간에 차라리 초록 들판을 배경으로 아이들과 꽃과 강아지가 함께 뛰어노는 장면만
띄워주는 것이다. 당연히 배경음악이 들어가야 화면이 극적이겠지. 이런 땐 베토벤보다 요한
스트라우스나모짜르트가차라리안정적이다. 물론동요도무방하다.
삐익, 하는시보도아이들의금싸락같은웃음소리로대신한다. 요즘누가티브이를보면서
시계를맞춘다고‘여러분의엘지가, 또는삼성이, 아홉시를알려드리겠습니다’인가?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하이에나와 대비되었을 때 인간의 진짜 얼
굴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가 훤히 그려진다. 성경에도 천국은 아이들에게 출입증을 요구
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유엔 헌장이나 세계 인권선언이 금붙이처럼 빛나도 아무려면 갓난
애의웃음소리만큼눈부시겠는가.
가끔은호젓한숲속을찾아차를세워놓고나만의어둠을즐기다돌아오기도한다.
어둠이란대체무슨맛일까?
시동은물론헤드라이트도꺼져있다.
도심의 불빛들이 미처 따라올 수 없는, 인적은커녕 지나는 차도 없고, 동네와도 한참 떨어
져 빛이라곤 다만 별빛뿐인데 그마저도 숲속에 들었으니 사방은 그야말로 어머니의 카오스,
끝없이빨려드는블랙홀과같다. 어머니의태내가그렇게도광활하던가?
그깜깜한허공에몸뚱이를묻어놓고보면나역시미처태어나지않은아이에불과하다.
태내의아이가꿈꾸는세상이란어떤모습이고어떤모습이어야하는가.
지금 카오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는 프랑스 아이가 부르는 아빠는 엄마를 사랑해(Papa
aime maman - Mimi Hetu), 같다. 제목이 헷갈려서‘엄마는 아빠를 사랑해’라고 바꿔 쓴다 해
도 아이의 노래는 꼬집어뜯고 싶을 만큼 시리고 앙증맞다. 어른들은 그런데 이 노래를 만들
어놓고 또 흥에 겨워하면서 인간을 거짓과 이권의 노예이게 만들었다. 마약과 원조교제라는
해괴한 상품을 풀어놓았고, 가짜 혈압약을 유통시켰다. 엊그제 뉴스를 보니 어떤 어른은 보
어쩌다 시골길을 지날 때 산기슭의 분교 아이들이 부르는 <고향의 봄>을 들으면 나
는 내가 태어나고 묻혀야 할 곳이 바로 시골 분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바로
저곳이 내 고향이다 싶어 가던 길을 멈추고 눈물까지 그렁거리는 것이다. 그 순간의
눈물은 슬픔의 도구라기보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물려주던 젖줄처럼 따뜻하고 순수
한것임에의심의여지가없다.

험금을 타먹기 위해 아내를 골목입구에서 차로 쓰윽 치어죽였다고 한다. 또 어떤 아내는 간
통 현장을 남편에게 사전에 고지하고 현장을 덮치게 하는 수법으로 정부로부터 거금을 털어
먹었단다. 이 무슨 사이비 종교적 작태들인지. 아홉시 종합뉴습니다… 시그널이 줌 아웃 되
면서꼬리에꼬리를물고점멸하는핏빛타이틀들….
보나마나 오늘도 역시 아스팔트의 질펀한 핏자국과 여의도 나으리들이 내지르는 생생한
악다구니를 들어야 할 것이다. 오만한 미국인들과 알라의 종들이 싸지르는 폭음과 거대한 불
기둥을 목격할 것이다. 치솟는 유가와 수세미처럼 짓이겨진 자동차와 자동차, 그리고 녹색이
말끔히 제거된 회색거리의 암울한 풍경에 눈을 뺏길 것이다. 그런데다 월드컵 예선전에서
한국 축구는 스위스에게 2 대 빵으로 졌다. 히딩크마저 나가떨어졌다. 무슨 기막힌 뉴스를 기
대하고일기예보순간까지티브이에서시선을떼지않겠다는것인가.
어쩌다 시골길을 지날 때 산기슭의 분교 아이들이 부르는 <고향의 봄>을 들으면 나는 내가
태어나고 묻혀야 할 곳이 바로 시골 분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바로 저곳이 내 고향이
다 싶어 가던 길을 멈추고 눈물까지 그렁거리는 것이다. 그 순간의 눈물은 슬픔의 도구라기
보다어렸을때어머니가물려주던젖줄처럼따뜻하고순수한것임에의심의여지가없다.
노래를 듣다 보면 문득 낮잠이 그리워지고, 잠은 또 일상의 갈피에 묻혀 있던 향수를 깨우
기 마련, 꿈속의 신작로를 따라 쭈욱 거슬러 올라가면 그 옛날 굴렁쇠를 몰고 내닫던 대전천
뚝방이 나타나고, 그 너머, 메뚜기 따라 온 들길을 휘젓던 돌다리 벌판이 밀레의 <만종>처럼
아늑하다. 옆집 살던 금자가 몰래 밤빨래를 빨았던 또랑물, 판쇠네 양철집, 놀았다 하면 육군
대장이었던 철수네 골목집도 모두 그대로고 그 모습인… 그런데 집주인들은 왜들 보이지 않
는걸까.
차를 몰고 나섰을 때 초록 들판은 도시인에게 동방삭의‘삼년고개’와 같다. 달리면 달릴수
록 젊어지다 못해 결국은 어려져 시골 분교 아이들과 함께 꿈의 오선지 복판에서 뛰어놀고
있는 나를 본다. 그 순간 세상의 모오든 마이크는 꺼지고 들바람에 고향집의 봄 내음만 풀풀
날아들 뿐이다. 마당 가운데 활짝 핀 살구나무가 할머니의 무명치마처럼 눈부시다. 나를 단
지 하나의 점으로 표기한 도시, 언제 내가 저들에게 대통령과 배불뚝이 의원님들의 눈썹이
안녕하시냐고 묻던가. 여의도 광장에 오늘은 전경이 몇 중대나 동원되고, 그들이 휘두르는
곤봉에 아우성이 어떻게 유린되고 슬로건이 어떻게 뭉개졌는가를 묻던가. 그리하여 날더러,
아니당신과함께무엇을어쩌란말인가.
허리띠 풀고 요즘 말로 졸라 노래나 들을 일이다. 9시 뉴스엔 흥분제가 들어 있지만 아이들
의 노래엔 안정제가 들어 있다. 아이들과 꽃과 강아지가 함께 어우러진 초록색 꿈을 꾸고 있
노라면 그것만으로도 지상은 천국이다. 언젠가는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아이들의 눈빛이, 인
간의마지막이데올로기로자리잡는날이, 그런날이오기는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