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금을 타먹기 위해 아내를 골목입구에서 차로 쓰윽 치어죽였다고 한다. 또 어떤 아내는 간
통 현장을 남편에게 사전에 고지하고 현장을 덮치게 하는 수법으로 정부로부터 거금을 털어
먹었단다. 이 무슨 사이비 종교적 작태들인지. 아홉시 종합뉴습니다… 시그널이 줌 아웃 되
면서꼬리에꼬리를물고점멸하는핏빛타이틀들….
보나마나 오늘도 역시 아스팔트의 질펀한 핏자국과 여의도 나으리들이 내지르는 생생한
악다구니를 들어야 할 것이다. 오만한 미국인들과 알라의 종들이 싸지르는 폭음과 거대한 불
기둥을 목격할 것이다. 치솟는 유가와 수세미처럼 짓이겨진 자동차와 자동차, 그리고 녹색이
말끔히 제거된 회색거리의 암울한 풍경에 눈을 뺏길 것이다. 그런데다 월드컵 예선전에서
한국 축구는 스위스에게 2 대 빵으로 졌다. 히딩크마저 나가떨어졌다. 무슨 기막힌 뉴스를 기
대하고일기예보순간까지티브이에서시선을떼지않겠다는것인가.
어쩌다 시골길을 지날 때 산기슭의 분교 아이들이 부르는 <고향의 봄>을 들으면 나는 내가
태어나고 묻혀야 할 곳이 바로 시골 분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바로 저곳이 내 고향이
다 싶어 가던 길을 멈추고 눈물까지 그렁거리는 것이다. 그 순간의 눈물은 슬픔의 도구라기
보다어렸을때어머니가물려주던젖줄처럼따뜻하고순수한것임에의심의여지가없다.
노래를 듣다 보면 문득 낮잠이 그리워지고, 잠은 또 일상의 갈피에 묻혀 있던 향수를 깨우
기 마련, 꿈속의 신작로를 따라 쭈욱 거슬러 올라가면 그 옛날 굴렁쇠를 몰고 내닫던 대전천
뚝방이 나타나고, 그 너머, 메뚜기 따라 온 들길을 휘젓던 돌다리 벌판이 밀레의 <만종>처럼
아늑하다. 옆집 살던 금자가 몰래 밤빨래를 빨았던 또랑물, 판쇠네 양철집, 놀았다 하면 육군
대장이었던 철수네 골목집도 모두 그대로고 그 모습인… 그런데 집주인들은 왜들 보이지 않
는걸까.
차를 몰고 나섰을 때 초록 들판은 도시인에게 동방삭의‘삼년고개’와 같다. 달리면 달릴수
록 젊어지다 못해 결국은 어려져 시골 분교 아이들과 함께 꿈의 오선지 복판에서 뛰어놀고
있는 나를 본다. 그 순간 세상의 모오든 마이크는 꺼지고 들바람에 고향집의 봄 내음만 풀풀
날아들 뿐이다. 마당 가운데 활짝 핀 살구나무가 할머니의 무명치마처럼 눈부시다. 나를 단
지 하나의 점으로 표기한 도시, 언제 내가 저들에게 대통령과 배불뚝이 의원님들의 눈썹이
안녕하시냐고 묻던가. 여의도 광장에 오늘은 전경이 몇 중대나 동원되고, 그들이 휘두르는
곤봉에 아우성이 어떻게 유린되고 슬로건이 어떻게 뭉개졌는가를 묻던가. 그리하여 날더러,
아니당신과함께무엇을어쩌란말인가.
허리띠 풀고 요즘 말로 졸라 노래나 들을 일이다. 9시 뉴스엔 흥분제가 들어 있지만 아이들
의 노래엔 안정제가 들어 있다. 아이들과 꽃과 강아지가 함께 어우러진 초록색 꿈을 꾸고 있
노라면 그것만으로도 지상은 천국이다. 언젠가는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아이들의 눈빛이, 인
간의마지막이데올로기로자리잡는날이, 그런날이오기는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