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장마가 시작되고 있는 모양이다. 월드컵은 4년에 한 번씩 열리지만 장마는 매년 어김없이 찾아온다.
날짜를 받아 놓지는 않았지만 오지 않는 법이 없는 우리 삶의 단골 중에 단골이다. 문득 장마를 한자로 길 장長과 마귀 마魔자를 쓰는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한자가 없다고 한다. 원래 한자로는 임우霖雨라고 해서 농사철에 필요한 고마운 비로 여겼던 것 같다. 또한 옛날 중국 사람들은 미우黴雨라고 해서 곰팡이 미黴자를 쓴 것을 보면 무더운 여름철 장기간의 비로 집 안 구석구석에 곰팡이가 피니‘곰팡이 비’라고 했던 모양이다. 한편 일본사람들은 쯔유(梅雨;つゆ)라고 하는데 이는 매화가 익을 무렵에 오는 비라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매화 매梅자는 나중에 끼워 맞춘 글자이고‘쯔유’라는 음도 이슬 로露의 발음을 따온 것이라 한다. 원래는 중국의 미우黴雨가 일본음으로‘바이우(ばいう)’이고 매화 매梅자가‘바이(ばい)’로도 읽히니까‘매화 비(梅雨;つゆ)’로 부르게 되었다고한다.
이 장마철에 우리 절 신도분 중의 한분은 가족들과 함께 24년 만에 한국 나들이를 떠났다. 미국에 이민 와서 처음으로 한국에 간다고 한다. 모두들 어떻게 24년 동안 한여름의 함성이나 한국에 가지 않았냐고 놀랐지만 의외로 10년이고 20년 동안 한국에 가지 못한 분들이 많다고 한다. 이분들도 가족이 모두 이민을 와서 한국에 연고가 없었고 오랜시간 동안 세탁소를 하다보니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어 이렇듯 긴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어머니의 80세 생일 선물로 어려운 시간들을 가족들이 내어 떠난다고 설레어하는 모습이 남의 일 같지만 않다고 모두들 말했다.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되는 딸 둘에게도 처음으로 한국을 보여준다고 더욱 좋아하셨다. 운좋게 장마를 피해다니면서 모쪼록 좋은 여행이 되기를 바라며, 언제 기회가 있으면 이 분들의 한국 구경담도 다시 한 번 소개하고 싶다.
올해 6월은 그리고 여름은 여기서도 뜨거운 함성 그 자체였다. 2002년 월드컵을 일본에서 보낸 우리는 2006년에는 독일에 가자고 약속하였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대신 로스엔젤레스에서 보게 되었다. 이곳 교민들의 열기는 일본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열렬했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의 승리를 경험하고 그 기쁨을 맛 보았던 교민들은 6월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월드컵 준비로 바빴다. 음식점들은 대형 TV를 설치하고 가게마다 붉은 색 티셔츠와 수건 등의 응원 용품들도 불티나게 팔렸다.
드디어 토고와의 1차전 경기를 시작으로 프랑스, 스위스와의 경기를 치를 때마다 한마음으로 뜨겁게 대한민국을 외쳤다. 특히 프랑스와의 경기는 이곳 시간으로는 일요일 낮 12시였다. 약 3만명을 수용하는 스테이플 센터라는 농구실내체육관 측에서 우리 한인에게 응원을 위하여 무료로 이곳을 빌려주었다. 우리 가족도 물론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로스엔젤레스 인근에서부터 사람
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3만의 관중석이 붉은색으로 가득했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이 많았지만 특이 한 것은 젊은 1.5세와 2세의 아이들이 많았다. 이들이 2시간 내내 가슴 졸이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모습은 축구경기 못지 않게 뜨거운 모습이었다.
3차전의 스위스와의 경기 응원은 코리아 타운의 중심 거리인 올림픽과 놀만디 사이의 도로에서 이루어졌다.
역시 낮 12시 경기임에도 아침부터 마침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느덧 빨간 물결로 가득한 로스엔젤레스의 한복판에는 한국의 응원하는 모습을 취재하기 위하여 ABC, NBC, FOX11 등의 미국 방송 중계차가 와서 현장 중계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비록 아쉽게 경기에 패하여 16강에는 진출하지 못하였지만 그 어느때 보다도 커다란 박수를 보냈다.
세 차례의 대규모 거리 응원전에도 불구하고 불미스러운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거리의 쓰레기는 물론이고 타인종과의 마찰도 없었다. 경기에 이겼을 때도 졌을 때도 우리의 선수들에게 커다란 박수를 보내고 우리끼리 서로 껴안으며 위로를 했다. 독일에서 응원하는 붉은 악마들과 한국의 광화문과 시청에서 응원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이곳 로스엔젤레스에서 응원하는 우리는
2시간내내한마음이었을것이다.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제LA 타임지에 한국 시청 앞에서 응원하는 대규모 빨간 관중의 사진이 1면에 커다랗게 실렸다. 미국에서 보는 월드컵은 생각보다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더욱 뜨겁게 느끼게 해주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우리의 축구가 최고이며 그들을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다른 커뮤니티의 부러운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전에는 한국에 관심없던 아이들이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 축구와 나아가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보이고 이번에는 저희들이 먼저 나서서 어른들을 재촉한다고 좋아하신다.
이번에도 한국에 가지 못하고 먼 이국에서 월드컵을 봤지만 뜨거운 마음은 시공을 초월하여 하나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경기 끝나고 다음날도 우리 아이가 빨간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기에 여동생이 이제 시합도 졌는데 입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의 대답이 걸작이다.
시합은 비록 졌지만 우리의 프라이드는 지지 않았다고 하면서 태연히 붉은 셔츠를 입었다고 우리에게 전한다.
축구 경기보다 더 값진 것을 얻은 것은 우리 아이만이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