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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맛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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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타 - 박재은 2006년 07월 293호
담백한 맛의 기쁨 얼마 전, 모 대학 연극영화과 학생들에게 특강을 해줄 기회가 있었다.
영화나 연극, 오페라와 같은 대중 예술에 있어서 음식의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가, 뭐 그런 내용이 이어졌다.
한때는 아마추어 영화광을 자처했던 나였기에 수업을 위한 예例로 제시할 영화와 장면들은 꽤 있었다. 그런데 수업에 들어가기 전, 자료들을 챙기다보니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바로 내가 선택한 영화의 대부분이 흑백 영화라는 점이었다. 내가 좀 고전적인 것, 앤티크나 중고를 좋아하는데, 이런 나의 취향이 오롯이 영화의 선택에도 반영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자타’는 분명 음식 칼럼인데 시작부터 뭔 영화 얘기냐 하겠지만, 이런 영화에의 취향이 곧 음식으로 반영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다.

단순함의 힘
나의 흑백 영화에 대한 경험은 채플린의‘모던타임즈’로부터 시작된다. 1930년대 유럽과 미주 지역에 불어 닥친 대공황 속에서 주인공이 거대한 기계의 일부처럼 묘사되는 영화. 일용직이라도 건지려면 행운이 따라야 하는 상황에서 공장장에게 간택되는 노동자들이 공장에 콕 박혀서 어깨 한번 펴지 못한 채 나사만 조이는 장면이 이어진다. 한나절을 머리 숙여 나사만 바라보는 주인공에게는 행인의 단추 달린 옷도 나사 못처럼 보인다. 무성영화라서 대사도 없는데, 우스꽝스러운 표정에 허름한 옷을 입은 채플린의 코미디 연기는 보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이처럼 색色과 말(言)이 배제 되었어도 그 감동은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다. 아니, 색과 말이 배제될
수록 그 감동은 배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요소에 신경을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드라마와 주제, 연기 이런 것들에만 집중이 되니까. 흑백 영화가 주는 이런 집중력과 무게감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별별 기술력과 컴퓨터 그래픽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감독들은 흑백으로 필름을만든다.
음식도 똑같다. 포크와 나이프, 식탁보와 의자, 크리스털 물컵과 고급스러운 식기에 정신을 분산시키지 않고 온전히‘맛’에만 집중한 음식이 마음에 남는 경우가 많다. 음식 가운데서도 거창한 소스나 화려한 볶기,깎기가 부각된 요리보다는 혀에 닿는 재료의 맛과 코에 닿는 재료의 향
이 강렬한 요리가 더 오래 기억된다.
바짝 긴장을 하고 먹게 된 유명 레스토랑의 프랑스식 정찬보다는 외할머니 집 평상에 앉아 입이 터져라 먹던 쌈밥이 더 오래 기억되는 것과 같은 얘기다. 상추랑 함께 포개어 먹었던 이름 모를 쌈채의 꺼끌꺼끌한 감촉 과 막상 씹었을 때 느껴졌던 고소함, 소박한 밥에 비벼진 질척한 강된장
의 그 맛! 외할머니의 대사는 몇 줄 안 되었었는데, 그나마도“어여 먹어”나“더 먹어들”과 같은 비슷비슷한 말씀들뿐. 그런데 그 맛이, 그 몇줄 안 되던 대사가 외할머니 돌아가신 한참 후에도 생생하게 떠오르는것이다.

쌈
쌈밥에 어울리는 잎채소는 그 종류가 많은데, 각기 인체에 미치는 효능도 달라서 내 몸에 좋은 채소 몇가지를 알아두고 챙겨 먹으면 더 좋다. 우선 상에 많이 오르는 상추. 상추를 먹으면 흔히들 졸음이 온다고 한다. 상추가 함유한‘락투신’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사람을 진정시키고 기운을 편안하게 해준다. 잘만 먹으면 오히려 이런 점들이 우울증이나 스트레소 해소에 약이 될 수 있다.
철분과 무기질이 많은 깻잎은 완벽한 알칼리 식품이라 여성들이 먹으면 좋고, ‘비타민’이라는 이름의 채소는 말 그대로 비타민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서 피로해소에 그만이다.
한약 냄새가 물씬 나는 당귀는 보혈 작용을 하기 때문에 회복기의 환자나 빈혈이 있는 여학생들에게 좋다.
이렇게 그 맛과 효능이 다양한 쌈채를 텃밭에서 금방 뜯어 올 수만 있다면야 더할 수 없이 멋들어지겠지만, 나는 서울에 살고 있으니 자정까지 문을 여는 대형 할인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다. 야채가 남으면 베트남 식으로도 쌈을 싸서 기분전환을 하곤 하는데, 소면이나 쌀국수를 삶아서 찬물에 헹궈 두었다가 밥 대신 넣고 된장 대신 동남아 칠리소스와 땅콩버터를 조금 묻혀서 쌀가루로 만든‘피’의 일종인 라이스 페이퍼로 말아낸다. 달콤 매콤한 맛이 쫄깃한 면발과 어울려 별미다. 초간장이나 베트남 식으로 피시소스(동남아요리에 주로 쓰이는 액젓)를 톡 찍어 먹어도
좋다.
의욕이 떨어지는 여름, 쌈으로 입맛을 찾다보면 새삼‘생식’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가감 없는 맛의 담백한 기쁨, 많은 이들이 이런 맛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월드컵’이나‘우승’과 같은 축제 거리에만 열광하게 된, ‘소소한 기쁨이 없는 국민들’의 나라가 중심을 찾을 수 있는 길도 예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