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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얻고 하나는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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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야기 그림이야기 - 김현정 2006년 07월 293호
조맹부, <사유여구학도> 흐르는 강물에손을 거슬러넣은들 그 강이거꾸로 흐르지는않을 것이요, 산 위에부는 바람을양 팔에 감싸안은들 그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시원한 시냇물 가에 앉으니 장마철 물소리가 천둥소리보다 장하다. 여름철 냇가를 산책하는 즐거움을 무엇에 비기랴. 시원한 냇물에 발을 담그고 부지런히 흐르는 물 속에 손을 넣으니 그 부지런한 물살은 손을 거스르되 쉬지 않고 흐른다. 그 맑은 흐름이 어디 내것이던가.
잠시 발을 멈추고 나무 사이에 앉아 오가는 바람을 잠시 품에 담아 내 지친 이마를 식히지만 그것을 언제까지 내 품에 둘 수 있을 것인가. 푸른 숲에 앉아 산간山間의 맑은 바람과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에 주인이 따로있을리만무인것을두고긴여름날깊은더위에내것이라잠시착각한것들을두고생각에잠겨본다.
천지간의 만물이 이처럼 잠시 오고 가기를 세상이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이다. 우리네 살림살이도 그저오고 갈 뿐 어디를 시작이라또 어디를 종착이라할 수 있겠는가. 시간은다만 가고 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모두에게 차별을 두지 않으니 참으로 묘하고 묘하다. 오는 세월을 막을 수도 없거니와 가는 시간을 잡을 도리는더더욱없다. 참으로세상만물에게공평한것이세월이니이것을어찌사람을두고만할이야기이겠는가.
석가여래 이래로 많은 조사祖師와 현인賢人들이 인생의 무상함을 가르치고자 하였으며, 세상 명리名利로 치장하는것을한없이경계하여왔으나중생의몸은그저세월속에서영원하다생각하며, 화려한옷을입은 처지를 한없이 즐거워했을 따름이다. 한껏 살아 백세百歲의 시간인들 부싯돌의 석화만큼이나 찰나지간이며, 물위에뜬물방울만큼허망한것을강조하신일은정진을강조하신강조법이아니었던가.
이록利祿을좇으며영명榮名을구할수록내모습은마르고초췌할일이요, 재물을모아보화를사들이지만
얻어진 것은 없다. 종국엔 땅에서 얻어진 내 몸도 대지에 돌이킬 일인데, 무엇을 내 것이라 할 수 있으랴. 그저 큰약藥이있다면다만정진으로얻어진그것뿐일 일이다.
청량원淸凉院의 법안(法眼885~958) 화상께서 어느 날 대중이 점심공양을 하기 전 상당 설법을 할 때 일이었다. 조사께서 손으로 가만히 문에 걸쳐 있는 발(簾)을 가리키니 그 때 두 스님이 함께 가서 발을 걷어 올렸다. 스님께선‘하나는얻고, 하나는잃었다(一得一失)’라고말했다.
이에대해무문스님이게송을다음과같이읊었다.

주렴을 걷어 올리면 밝고 밝아 텅 빈 허공이라 卷起明明撤太空
허공 역시 아직 나의 종지와 하나 된 것은 아니리. 太空猶末合吾宗
허공 같은 텅 빈 마음까지 모두 떨져버리면 爭似從空都放下
면밀하고 면밀하여 바람 한 점 통하지 않으리 綜線密密不通風

석가여래 이래로 많은 조사祖師와현인賢人들이 인생의 무상함을 가르치고자 하였으며, 세상 명리
名利로 치장하는 것을 한없이 경계하여 왔으나 중생의 몸은 그저 세월 속에서 영원하다 생각하며, 화려한 옷을 입은 처지를 한없이 즐거워했을 따름이다. 한껏 살아 백세百歲의 시간인들 부싯돌의 석화만큼이나 찰나지간이며, 물 위에 뜬 물방울만큼 허망한 것을 강조하신 일은 정진을 강조하신 강조법이아니었던가.
창에 걸린 발은 걷어 올리기 쉬우나 눈앞을 가로막은 주렴은 뉘에게 걷어 올리라 할 것인가. 이른 아침 창을열며매일매일정진의계기로삼을일이다.
세상의 많은 스승들이 눈앞의 주렴을 탓하고 머리의 갓끈을 가볍게 여겼으나 흐린 창랑滄浪에 이미 발을 담근중생은그저시중市中에서은일隱逸하며조정朝廷에숨어지내는것으로위안을삼을뿐이다.
세상과 이상 사이에 은둔하며 고민하던 서화가를 꼽자면 원나라 때 활동하던 조맹부(趙孟1254~1322)가 있다. 조맹부는송나라왕실의후손으로오흥에정착하여왕족의특권을누렸으며송을망하게한원황실에서 벼슬을 지낸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가 절개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후일 많은 논쟁과 비난을 가져왔으나, 그는 조은(朝隱, 조정에서 은둔함)의 입장을 내세웠다. 세상에서 부득불 살아가는 중생의 입장으로 보자면조맹부의이러한태도는여러생각을오가게한다.
〈사유여구학도謝幼與丘壑圖〉는 이러한 그의 입장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동진東晋의 사대부인 사유여謝幼與는 진 명제明帝가“자신과 유량을 비교한다면 어떻게 이야기하겠는가”하고 물었을 때, “유량이 조정의 관례에서는 제게 선배일지 몰라도 일구일학一丘一壑에 있어서는 제가 한 수 위입니다”하고 대답했다는 일화가있다. 사유여는자신을속세를떠나초야에묻혀사는은둔자로설정한것이었다. 조맹부의형편으로는 비록 몸은조정에 나아갔으나 그 마음은 산과 골짜기에 두고싶었던것이다.
비교적 고법古法으로 섬세하게 그린 이 그림은 미숙함과 서투름으로 그 격을 높이고 있는 그림이다. 대가大家의필법이서투르기란공교함보다어려운일이다. 그래서예로부터이것을고졸古拙이라하여서화를즐기는 이들이 궁극으로 이뤄야 할 경지로 여겼던 것이다. 석청으로 바위에 빛을 낸 그림은 매우 한가롭고 편안하다. 그림 안에는 낮은 구릉 나무 아래 고요히 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선비가 있어, 겉으로는 사유여를 그린것이나내면에는이그림을그린조맹부자신을보여주었으며, 또한그림을 감상하는 이의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것이다. 이처럼옛그림은이들모두의모습과마음을한곳에서만나게하는즐거움이있다.
이미 주렴을 걷어 올렸는데, 그 앉은 자리를 탓하겠는가. 세상을 사는 일에 집착을 두지 않으면 그 뿐. 내 몸이 밑천이듯 중생의 삶은 생활이 또 밑천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미 큰 인연을 만났으면 부지런함을 미덕으로 삼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