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에손을 거슬러넣은들 그 강이거꾸로 흐르지는않을 것이요, 산 위에부는 바람을양 팔에 감싸안은들 그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주렴을 걷어 올리면 밝고 밝아 텅 빈 허공이라 卷起明明撤太空
허공 역시 아직 나의 종지와 하나 된 것은 아니리. 太空猶末合吾宗
허공 같은 텅 빈 마음까지 모두 떨져버리면 爭似從空都放下
면밀하고 면밀하여 바람 한 점 통하지 않으리 綜線密密不通風
석가여래 이래로 많은 조사祖師와현인賢人들이 인생의 무상함을 가르치고자 하였으며, 세상 명리
名利로 치장하는 것을 한없이 경계하여 왔으나 중생의 몸은 그저 세월 속에서 영원하다 생각하며, 화려한 옷을 입은 처지를 한없이 즐거워했을 따름이다. 한껏 살아 백세百歲의 시간인들 부싯돌의 석화만큼이나 찰나지간이며, 물 위에 뜬 물방울만큼 허망한 것을 강조하신 일은 정진을 강조하신 강조법이아니었던가.
창에 걸린 발은 걷어 올리기 쉬우나 눈앞을 가로막은 주렴은 뉘에게 걷어 올리라 할 것인가. 이른 아침 창을열며매일매일정진의계기로삼을일이다.
세상의 많은 스승들이 눈앞의 주렴을 탓하고 머리의 갓끈을 가볍게 여겼으나 흐린 창랑滄浪에 이미 발을 담근중생은그저시중市中에서은일隱逸하며조정朝廷에숨어지내는것으로위안을삼을뿐이다.
세상과 이상 사이에 은둔하며 고민하던 서화가를 꼽자면 원나라 때 활동하던 조맹부(趙孟1254~1322)가 있다. 조맹부는송나라왕실의후손으로오흥에정착하여왕족의특권을누렸으며송을망하게한원황실에서 벼슬을 지낸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가 절개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후일 많은 논쟁과 비난을 가져왔으나, 그는 조은(朝隱, 조정에서 은둔함)의 입장을 내세웠다. 세상에서 부득불 살아가는 중생의 입장으로 보자면조맹부의이러한태도는여러생각을오가게한다.
〈사유여구학도謝幼與丘壑圖〉는 이러한 그의 입장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동진東晋의 사대부인 사유여謝幼與는 진 명제明帝가“자신과 유량을 비교한다면 어떻게 이야기하겠는가”하고 물었을 때, “유량이 조정의 관례에서는 제게 선배일지 몰라도 일구일학一丘一壑에 있어서는 제가 한 수 위입니다”하고 대답했다는 일화가있다. 사유여는자신을속세를떠나초야에묻혀사는은둔자로설정한것이었다. 조맹부의형편으로는 비록 몸은조정에 나아갔으나 그 마음은 산과 골짜기에 두고싶었던것이다.
비교적 고법古法으로 섬세하게 그린 이 그림은 미숙함과 서투름으로 그 격을 높이고 있는 그림이다. 대가大家의필법이서투르기란공교함보다어려운일이다. 그래서예로부터이것을고졸古拙이라하여서화를즐기는 이들이 궁극으로 이뤄야 할 경지로 여겼던 것이다. 석청으로 바위에 빛을 낸 그림은 매우 한가롭고 편안하다. 그림 안에는 낮은 구릉 나무 아래 고요히 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선비가 있어, 겉으로는 사유여를 그린것이나내면에는이그림을그린조맹부자신을보여주었으며, 또한그림을 감상하는 이의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것이다. 이처럼옛그림은이들모두의모습과마음을한곳에서만나게하는즐거움이있다.
이미 주렴을 걷어 올렸는데, 그 앉은 자리를 탓하겠는가. 세상을 사는 일에 집착을 두지 않으면 그 뿐. 내 몸이 밑천이듯 중생의 삶은 생활이 또 밑천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미 큰 인연을 만났으면 부지런함을 미덕으로 삼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