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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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주호영
2006년 07월 293호
“남의 심장에 쉬 스는 것은 몰라도 자기 손톱에 가시 든 것은 안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가
육근六根으로받아들인고통이나경험은비록사소한것일지라도깊고오래각인된다는의미
일것이다.
나는 소위 불자랍시고 좋다고 하는 경전과 불교서적들을 비교적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많고 많은 설법과 명구는 그저 관념의 유희일 뿐 막상 실제의 생활에서 체화
되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던 나는 책 속에서만 쓰여져 있던 순현보順現報
의인과응보를직접체험하는일을겪게되었다.
1998년 3월 고향인 경북 영덕지방법원장을 하고 있을 당시, 나는 중앙선을 넘어온 차에 부
딪쳐 팔과 다리, 두개골이 깨지고 턱뼈와 광대뼈가 부러졌을 뿐만 아니라 왼쪽 눈주위 뼈가
으스러지는중상을입고포항의어느병원중환자실에누워있다가깨어난일이있다.
십여 시간의 혼절 속에서 깨어나기 직전 나는 큰 소 한 마리가 왼쪽 눈 부위에 피를 철철 흘
리면서 마치 영화스크린 같은 화면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것을 선명하게 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의식이 돌아와 병실 침대 옆에서 의사 선생님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뇌수가 흐
르는것이겨우멈추었다고이야기하는것이들렸다.
그와 동시에 수 년 전에 열심히 독송하던 금강경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의“여아석위가리왕
할절신체如我昔爲歌利王割截身體”라는 구절과“아어왕석절절지해시我於往昔節節支解時”라는
구절이바로떠오르면서마음이더없이편안해지고갑자기모든불안과두려움이없어졌다.
그 당시로부터 약 30년 이전에 시골에서 국민학교에 다닐 때 동네 형들과 산에 소를 먹이러
간 일이 있었다. 소를 산에 부쳐놓고 물가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내가 맡아 있던 쪽으로 소
가 자꾸 넘어간다고 몰아넣어라고 하였다. 두 번까지는 소에게 쫓아가서 잘 몰아넣었으나 세
번째에는 매우 짜증이 났다. 그래서 머리만한 돌을 들고 소의 머리 부위에 내리 던졌다. 그리
고는 노는 곳으로 돌아와 형들에게 소를 잘 단속해 놓았으니 다시는 넘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자랑하고는 계속 놀았다. 다음날 아침 소 주인인 이웃집 할아버지가 찾아와서 네가 소 눈에
돌을 던졌느냐고 캐물을 때까지 나는 소가 그렇게 많이 다쳤는 줄을 생각도 못했다. 국민학
나는 의심 없이 그 소가 30년 전 나한테 돌에 맞아 눈을 많이 다쳤던 바로 그 소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비로소 말로만 듣고 관념적으로만 이해한다고
하면서 긴가민가 의심하던 인과응보의 법칙을 새롭게 확신하게 되면서 내가 바로 소
를 다치게 한 과보를 받아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열 군데나 부러질 정도로 많이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걱정이 되지 않고 마음이
아주편안해지면서신심이새롭게굳어지는것을느끼게되었다.
인과응보因果應報
교 3학년의 철부지였던 나는 소 같은 짐승은 큰 돌에 맞아도 아프지 않은 줄로만 알고 있었
다. 그리고 그 일은 자라면서 잊혀져 그 이후 한 번도 그때의 일이 생각난 적이 없었다. 그런
데까마득하게잊고있었던30년전의일이하필교통사고로정신을잃고있다가깨어나는순
간에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선명한 장면이 되어 소가 눈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나타나
다니 이 무슨 조화인가… 그리고 내가 많이 다친 눈 부분이 공교롭게도 소가 많이 다쳤던 눈
부분과일치하다니….
나는 의심 없이 그 소가 30년 전 나한테 돌에 맞아 눈을 많이 다쳤던 바로 그 소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비로소 말로만 듣고 관념적으로만 이해한다고 하면서 긴가민가
의심하던 인과응보의 법칙을 새롭게 확신하게 되면서 내가 바로 소를 다치게 한 과보를 받아
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열 군데나 부러질 정도로 많이 다
쳤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걱정이 되지 않고 마음이 아주 편안해지면서 신심이 새롭게 굳어지
는것을느끼게되었다.
법학에서도 인과관계라는 개념을 매우 중요한 도구로 사용한다. A라는 행위로 말미암아B
라는결과가발생하였을때A라는행위의책임을어느범위까지물어야하느냐의문제이다.
이 인과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관하여는 조건설條件說과 상당인과관계설相當因果關係
說이라는 두 학설이 있다. 먼저, 조건설은A라는 사실과B라는 사실과의 사이에, A라는 사실
이 없었더라면 B라는 사실이 없었으리라는 관계가 있는 모든 경우에 성립하는 것이 인과관
계라고 한다. 사실 이 세상 만사의 인과관계는 조건설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다. 그런데, 이러
한자연법칙상의인과관계는무한히확장될수있다는난점이있다.
상당인과관계설은 이를 수정하여, 원인ㆍ결과의 관계에 서는 무한한 사실 가운데서, 객관
적으로 보아 어떤A라는 사실로부터 보통 일반적으로 초래되는B라는 사실이 있는 때에, 양
자는 상당인과관계에 서며 이것이 바로 인과관계라고 한다. 즉 원인인 조건이 일반적 경우에
있어서 보통 그 결과를 발생케 하는 것이 요구되는 때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하며 이 상당인
과관계설이통설과판례이다.
그런데 법학에서는 조건설은 단지 하나의 이론으로만 존재할 뿐 조금이라도 인정받을 수
있는 인과관계의 학설이 아니다. 따라서 법률가들은 상당인과관계만을 신봉할 뿐 조건설적
인과관계는안중에도없다.
하지만 불법에서의 인과응보는 조건설이 아닌 것이 없는 것 같다. “가사백천겁 소작업불망
인연회우시 과보환자수假使百千劫所作業不亡因緣會遇時果報還自受”, 자기가 지은 모든 업은
가사 백천겁이 지나도 벗어날 수 없으니 말이다. 마치 하늘의 그물이 절대 놓치는 것이 없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그때의 교통사고는 매우 위중하고 불행한 일이었지만 그 불행 중에서도 인과
를 체득하고 신심을 더욱 돈독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
이다. 세상 만사가 언제나 빛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속언처럼, 그렇다고 언제나 그림자만 있
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 사고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통 속에서 세상사의
인과응보원리를 새삼깨달을수있었기때문인지도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