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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들아! 이것이 중노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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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자시절 - 현해 2006년 06월 292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내가 출가를 한 것은 불가와의
인연이 지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당
시 교회의 내부 사정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내게, 아는
분이‘월정사가 좋으니 거기 한번 가봐라’라고 한 그 말
이인로왕보살이되어나를출가로이끈셈이다.
복잡함에서 벗어나 쉬고자 들어간 월정사에서 행자처
럼 일을 도와주면서 지내고 있을 때, 내 마음에 들어온
구절이 있었으니, ‘삼일수심은 천재보요 백년탐물은 일
조진이라’는《초발심자경문》의내용이었다.
그 구절을 대하고 월정사의 한 스님께《초발심자경문》
가르쳐달라고 부탁드렸더니 좋아하시면서 가르쳐주셨
고, 나는 그 책을 새기면서 발심, 출가했던 것이다. 내게
‘수심修心’의 의미를 가르쳐주면서 강한 발심을 일으켜
주었던분은희찬스님으로, 나의은사스님이되셨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1958년의 월정사는 가난하기
그지없어 공부를 하는 시간보다는 밭농사를 지어서 대중
들 식량 대기에 바빴다.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예불을 드
리고 아침 공양할 때까지 공부를 잠깐 하고는 해질 때까
지옥수수, 감자밭농사를짓느라하루종일일이었다.
공양을 하고 나면 손발을 씻고 등잔불을 한가운데 놓
고 대중이 모여 앉아 한 시간 가량 떨어진 양말과 옷을
깁고 나서 한 시간쯤 공부를 하고 자리에 누웠는데, 하루
가그렇게고단할수가없었다.
쌀밥을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어쩌다가 신도 분들이
쌀을 가져오면 옥수수 감자밥에 양념처럼 넣어 먹었다.
주로 옥수수밥을 해서 먹었는데, 그 옥수수밥 짓기가 여
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양념처럼 아주 조금 넣은 쌀은
다 퍼지는데 옥수수가 익지 않아 애를 태우곤 했던 기억
이떠오른다.
월정사의 절약생활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중생
활에서 강조되었다. 우리 스님은 당신의 은사이신 한암
스님께서 절약하시던 가풍을 그대로 강조했으니, 심지어
김치를 좀 삼삼하게 담가 놓으면 시주 물건을 아끼지 않
고낭비한다고날벼락을내렸다.
행자시절을 마치고 세월이 좀 지나 월정사에서 원주
소임을 볼 때였다. 뒤주에 쌀을 쏟아 붓고 가마니를 던져
놓는데, 그 과정에서 쌀알이 부엌바닥에 떨어졌다. 굵은
쌀알은 모두 주워 담고 부스러진 싸라기는 일일이 주울
수가 없어 쓸어버리려고 하는데, 우리 스님에게 들키고
말았다. 당장 몽둥이가 날아왔고, 조금도 에누리 없이 그
자리에서 차수를 한 채 1시간 동안 법문을 들었다. 지금
도뇌리에남아있는법문은이랬다.
“옛날 어느 산중의 스님 한 분이, 어느 산중에 큰스님
이 계신다고 하기에 수행하려고 가는데 냇물에 콩나물
대가리 하나가 흘러 내려왔다. 그걸 보고 이 놈의 절에
도인이 없다 생각하고 돌아섰다. 콩나물 대가리 하나에
도 그것이 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땀이 서려
있는지 아는가? 한암 스님께선 이 말씀을 자주 하시면서
대중을경책하셨다.”
그날 우리 스님은 당신이 은사에게서 듣고 배운 이야
기를 그대로 상좌에게 전하면서‘싸라기 한 알에도 얼마
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들어가 있는데 그걸 함부로 버
리느냐’시며 얼마나 야단을 치시는지, 다리에 쥐가 나도
록 서서 절약에 대한 법문을 들어야 했다. 생각해보라,
1시간법문을들었으니얼마나많은이야길들었겠는가.
사람은 배운 대로 실천하게 된다. 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결코 함부로
버릴 수 없다는 가르침을, 나이 칠십이 넘은 지금까지 지
키며살아왔다.
요즘도 양말을 깁고 떨어진 옷을 기워서 사용하고 있
는 나를 보고 상좌들은‘스님, 왜 그리 궁상을 떨어요?’
라고 묻는다. 그러나, 어른이 한번 말씀하시면 다시는 똑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것이 나의 생활신조이
기에 절약과 검박이 몸에 밴 것이다. 지금은 나이 들어
많이 수그러졌다고들 하지만,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승가대학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던 시절, 잘못된 일
들이 눈에 띄면 사정없이 몽둥이로 내리쳤다. 저 오십여
년전, 내스승이그러셨던것처럼말이다.
오대산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그래서 눈을 치
우는 운력이 많았는데, 조금이라도 스승의 눈을 거스르
면 또 한바탕 벼락이 떨어졌고, 하시는 말씀은 늘 한결
같았다.
“이 놈들, 비싼 시주밥 먹고 눈도 하나 제대로 못 치우
고있느냐?”
행자시절을 추억하자니 맨, 고생한 것만 떠오른다. 그
래도 그 고생하던 때가 내 출가생활 중 가장 바르게 수행
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고된 생활의 연속이었으므로 잡
념이 들 시간도 없었고, 그래서 촌음을 아껴 수행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예불 후의 참선시간과 천수경을 외우
고 기도하는 시간, 그리고 경전과 의식을 배우는 두 시간
이그렇게귀할수가없었다.
월정사 조실이셨던 한암 스님은‘승가오칙僧伽五則’즉
승가가 지녀야 할 다섯 가지 원칙을 강조하셨으니, 참선,
염불, 간경, 의식, 가람수호가 그것이었다. 그것은 곧 오
대산 월정사의 가풍이 되었고, 내가 행자시절을 하던 당
시에도마찬가지였다.
선가禪家에서 자칫, 의식이 경시되는 풍조가 있으나 한
암 스님은 자신이 선승이었지만 의식을 강조하셨다. 스
님께서 봉은사를 떠나 오대산으로 들어오실 때 우리나라
에서 몇 안 되는 분으로 의식에 밝고 어산魚山에 능했던
대하스님을모시고왔다고한다.
나와 동갑이었지만 동진 출가해서 일찍 의식을 익혔던
한 스님이 내 손을 잡고 요령 흔드는 것을 자세히 가르쳐
주던일이가끔생각난다.
나의 은사스님은 당신의 은사이자 나의 노스님이신 한
암 스님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무엇보다 수행에 철저하
셨고 검박한 생활과 한 치 빈틈없이 계율에 철저하셨던
수행가풍을가르치고싶어서였을것이다.
계율을 잘 지키는 일이 귀해지는 요즘, 다음의 일화 하
나가 떠오른다. 상원사 밑에 민가 두 채가 있었는데, 어
느 날 선방 스님 두 분이 그 민가에 내려가 곡주를 마시
고 올라왔다고 한다. 한암 스님께서 조실채에 계시다가
우연히 나왔다가 거나하게 취한 두 스님과 마주쳤다. 두
사람을 큰방으로 불러들인 한암 스님께서 물으셨다고
한다.
“술을마셨느냐?”
무릎을꿇은채그분들은솔직히이실직고했다.
“마셨습니다.”
그 대답이 떨어지자, 평소에 자비롭고 조용하며 화라
고는 결코 내지 않던 조실스님이 그날은 진노하셔서 회
초리 한 다발이 다 부러질 때까지 두 사람을 내리쳤다고
한다.
“이, 나쁜 놈들아! 평생을 공부해도 깨칠까 말까 한데,
이것이중노릇이냐?”
출가한 지 반백 년이 가까워오지만 그 옛날 잡념 하나
없이 촌음을 아꼈던 초발심 시절에 견주어 더 게을러지
고 시간은 많으나 오히려 공부를 덜하고 있는 것 같다.
마음 닦는 일이 마음에 깊숙이 들어와 설렘으로 처음 출
가했던그때보다한걸음도더못나간것같다.
그래서 오늘, 한암 스님의 말씀이 더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이 놈들아! 평생을 공부해도 깨칠까 말까 한데, 이것
이중노릇이냐?”□
취재·글 /박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