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기온이 올라가니 다이어트며절밥
나는 프랑스에 살면서 동양 출신
의 프랑스 요리사로 성장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 꿈은 가족들의 반대
에 부딪쳤고, 나는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결국 프랑스로 돌아가는 길은
무산되었고, 그 와중에 강의를 맡게
된 학교에 나가고 잡지나 광고의 푸
드 스타일링을 맡아 뛰게 되면서 서
울에 눌러앉기에 이른다. 당시만 해
도 이름조차 낯설던 와인 강사니, 푸
드스타일리스트니 하면서 다니던 나
를 지인들은 부러워들 했지만 내게
는 불만만 가득할 뿐이었다. 왜? 내
가 진정 원하는 길을 가지 못했다는
막연한 원망이 마음에 있었으니까.
미개척 분야였던 와인이나 미식 방
면에 비교적 어린 나이로 뛰어들 수
있었다는 것이 본인의 노력도 노력
이지만, 기막힌 타이밍과 운이 도왔
던 것을 그땐 몰랐다. 정신없이 일이
늘어나던 중에도 불만은 더 커져갔
고, 다양한 요리를 먹을 곳조차 얼마
없는 서울 생활이 나는 싫었다. 화가
찬 마음으로 만족을 모른 채 정신없
이 살다보니 식생활은 엉망이 되었
고, 밤늦게 일이 끝나면 사람들과 야
식 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2년여가 그렇게 지난 어느 날, 거울
속의 내 모습은 눈빛이 모나고 얼굴
은 퉁퉁 부은 못난이였다. 2002년 월
드컵이 열리던 여름, 한 달간의 스케
줄을 모두 비우고 절에 다녔다. 엿새
씩 들어앉아야 하는‘선 수련회’도
있어보고, 산도 올라보고 그랬다. 돌
이켜보면 집안에 불교 신자가 한 명
도 없이 자란 내가 갑자기 왜 절로
가게 되었는지 의아할 뿐. 아무튼 그
렇게 다니는 동안 대한민국은 16강,
8강, 4강으로 쭉쭉 뻗어가 나라는 온
통 놀자 판이 되어가고 있었고, 나는
양배추두부찜
더 내‘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먹었던 절밥, 즉 공양 시간은
음식으로 먹고 사는 내게 큰 깨달음
을 주었는데. 공양을 위한‘발우’라
는 식기를 처음 본 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큰 원 안에 조금 작은 원
이, 조금 작은 원 안에 조금 더 작은
원이 겹쳐져 있는 형상의‘발우’는
밥과 국과 약간의 찬을 담기에 최적
의 모양이었다. 모든 음식물을 먹은
다음 백김치로 싹 닦아서 내가 먹어
버리고, 발우는 다시 원상태로 만들
어야 한다는 도道는 내게 큰 충격이
었는데. 내가 먹을 만큼만 덜어서 감
사하면서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고,
다 먹은 다음에는 스스로 깨끗이 하
여 원래의 상태로 만든다고 하는 것
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 않나. 그걸
그간 잊고 살았었구나 하는 깨달음
은 지금 입고 먹는 것에 만족하지 못
하고 내게 오지 않은 기회에만 침을
흘리던내모습을돌아보게했다.
만족하는 식사
젊은 부부가 열심히 일하면서 살
고는 있지만 사실, 가계란 것이 늘
넉넉하지는 않다. 관리비가 밀리기
도 하고, 요즘같이 친구 서넛이 줄줄
이 결혼할 때에는 정말 여비가 바닥
이 난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
이 있다. 돈이 없으면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더 많
아진다는 사실. 이것을 알게 된 지는
불과 몇 주 전. 2년간 빠듯이 부어 온
적금을 타던 날의 일이다. 남편과 나
는 이것도 사고 저기도 다녀오자고
약속을 했었건만, 막상 돈이 손에 들
어오니까 물건도 여행도 그다지 탐
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무슨 일일
까? 욕심은, 탐을 내는 마음은‘결
핍’에서 온다는 것이다. 굳이 돈으로
비유하고 돈을 통해 깨달았다는 것
이 좀 뭣하지만, 어쨌든 내 안의 결
핍이 많을수록 내 바깥의 모든 것들
이 탐나고 아쉬운 법이라. 이 결핍이
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는
‘돈’에 관한 문제들이 큰 비중을 차
지하겠지만, 결국에는 역시 마음의
문제다. 마음의 결핍은 욕심을 부르
는데, 사람의 욕심 가운데 가장 단
시간에 손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 바
로‘먹는 행위’이니, 결핍은 곧 과식
과 폭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돈
이 많아도, 명예를 누려도 결핍이란
것은 옷의 실밥이 풀리듯 마음 속 여
기저기서 툭툭 터져 나온다. 외로워
서, 시기가 나서, 만족하는 법을 몰
라서 이런저런 이유로 결핍이 생겨
나고, 결핍을 메우려 먹고 마시다보
면 몸은 병들게 된다. 그래서 선진국
에서는‘비만 치료’의 첫 과정을 식
이요법을동반한‘심리치료’라말한
다. 아무리 좋은 음식으로 저칼로리
의 식사를 한들, 감사하지 못하고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는 내 안의 중심이
없다면 무용하기 때문이다. 으깬 두
부에 버섯을 다져 넣고, 살짝 데친
배춧잎으로 싸서 쪄낸 요리는 차게
먹어도 맛있어서 요즘 날씨에 어울
린다. 으깬 땅콩에 겨자랑 간장을 섞
어서 곁들이면 남녀노소가 좋아 할
별미. 달콤한 찐 배추에 은은한 버섯
과 두부의 맛을 느끼면서, 내 몸에
딱 맞을 만큼만 먹어보자. 이삼 천
원의 재료비에, 칼로리는 과자 한 봉
의십분의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