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왕경大敎王經」에서는 보시에 대한 정의를 세 가지로 설명하였다. 첫째는 스스로 발심해서 하는 보시(自發布施)요, 둘째는 남이 구결하기 때문에 하는 보시(他乞布施)며 셋째는 가르치고 인도하기 위한보시(敎導布施)이다. 스스로 마음을 내어서 하는 보시란 우리의 본성이 본디 무한함을 관찰하여 스스로 보시하는 것이어서 상相 없는 무주상無住相의 보시-보시를 해도 보시했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것-를 말한다. 남이 구걸하기 때문에 하는 보시란 온갖 중생이 구걸하는 탓에 하는 보시로 상 있는 유주상보시有住相布施를 가리키며, 교도하기 위해서 하는 보시란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되 쉼이 없이 하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보시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교도보시는 절대적이며 청정하기 그지없는 보시이다. 「금강경」에서도 보살은 무량무수무변중생無量無數無邊衆生을 무여열반無餘I涅槃으로 인도하였으나 실제로 한 명의 중생도 멸도威度를 얻은 자가 없다고 한 것도 교도보시에 해당한다.
「구사환俱舍論」에서는 하지 말아야 하는 보시에 대하여 일곱 가지로 경계하고 있다. 첫째, 요구하기에 거절할 수 없어서 마지못해 베푸는 보시(陽至施). 이것은 남이 구절하기 때문에 행하는 보시이다. 곧 타결보시와 상통한다. 둘째, 하지 않으면 나에게 불이익이 올 것 같아서 베푸는 보시(佈畏施). 셋째, 예전에 내가 받은 은혜를 갚고자 하여 베푸는 보시(報恩施). 넷째, 내게 돌아올 보답을 기대하고서 베푸는 보시(求報施). 다섯째, 먼저 보시한 본보기가 있어서 그것에 따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베푸는 보시(習先施). 여섯째. 보시함으로써 내세에는 하늘에 태어나기를 기대하며 베푸는 보시(希天施). 마지막 일곱번째는 자신의 명성을 높이고자 베푸는 보시(要名施) 등이 해서는 안되는 유루칠보시有遍七布施이다. 유루有遍의 루遍는 마음의 오염을 뜻하는 것으로 베푸는 것은 선善이지만 베푸는 마음아 오염되었을 때 유루선有遍善이라고 하며, 일체의 상이 없이 무주상으로 보시하는 것을 무루선無遍善이라고 한다. 「증일아함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따라 보시하지만 아끼거나 탐내는 마음이 없어서 자기가 지은 모든 공덕을 이웃에게 돌린다고 무루선無遍善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또 그러한 보시가 보시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것이며 살아서는 그 복을 받고 죽어서는 천상의 복을 누르게 된다고 하였다.
행복에 이르는 길에는 소유하여 얻는 행복과 벗어남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과 함께, 함으로 얻어지는 행복이 있다. 소유의 행복이란 중생의 행복이며, 벗어나는 행복이란 아라한의 행복이며, 함께 하는 행복이란 바로 보살의 행복이다.
중생의 행복은 소유의 행복이기 때문에 우리는 소유하는 것에 행복의 목적을 두고 살아간다. 곧 생명의 소유, 재산의 소유, 권력의 소유, 명예의 소유, 사랑의 소유 등등 소유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며 최상으로 추구하는 행복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관은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더 많이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므로 소유에 지배당하기 마련이다. 백 살을 살아도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며,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며 극락왕상을 쉼 없이 염불하여도 당장 내일 죽어서 극락으로 함께 가자고 하면 따라 나서지 않는 것이 바로 중생심이다. 재산이나 권력도 얻은 뒤에는 더 많이 갖기를 원하고 더 오래 소유하기 위하여 탐진치 삼독심만 조장하므로 소유의 행복이란 얼핏 행복한 듯하지만 완전한 행복이 될 수 없으며, 이러한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진정한 행복을 바랄 수 없다.
아라한의 행복이란 벗어나는 행복, 버리는 행복으로 소유와 애욕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소유와 애욕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위대한 버림, 완전한 무소유를 실천하는 자만이 해탈의 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아라한의 행복이다. 이러한 아라한의 행복은 소유해서 오는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나,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중생 세계에서는 소유 없이는 베풀 것도 없으므로 아라한과 다른 우리의 관점에서는 완전한 행복이 될 수 없다.
보살의 행복인 함께 하는 행복은 바로 나누는 행복이므로,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고 정당하게 얻어진 소유물들은 나의 노력만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중생과 상의상관 속에서 얻어진 것임을 알아서 나의 소유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또한 모든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영원히 나의 소유가 될 수 없는 무상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중생을 위하여 회향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행복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행복이다.
이러한 보살의 행복은 함께 하는 행복이므로 소유가 많을수록 크면 클수록 소유의 행복도 커지고 벗어나는 행복 또한 커지는 것이다. 온갖 고통의 원인인 집착과 욕망에 얽매이지 않고 자주적이며 주체적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생명의 소유, 재산의 소유, 명예의 소유, 사랑의 소유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자재로 쓰면서 살아가는 행복이다.
그러므로 보살의 행복이란 소유에서 오는 집착이나 버림에서 오는 행복을 벗어나는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파도는 높을수록 급히 내려앉기 마련이고, 바람은 거셀수록 빨리 지나가며 다만 옷깃을 스칠 뿐이다. 1999년 일 년 동안 우리 모두 보살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자. 그리하여 다가오는 21세기를 튼튼하게 준비하자.